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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Feb 15. 2024

국민과 인민

우리 언어의 비극

  언어는 생명체이다. 사람이 끊임없이 변하듯이 사회도 그렇고, 사회의 소통수단인 언어도 그렇다. 지역이 다르면 외국어와 방언이 되고, 시대가 지나면 고어, 고문이 된다. 같은 시대에  살면서도 세대 간에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신’은 높임말이었지만 지금은 낮춤말이 되었고, ‘아줌마’도 본래 작은어머니, 당숙의 부인이었지만 지금 낯 모르는 여자한테는 모욕적인 말이 되었다. '아저씨'도 당숙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깔보는 말이 되었다. 흔히 남편을 ‘영감’이라고 하지만 옛날 같으면 관직 사칭이고, 아내를 ‘마누라’라고 하는 것도 망발이다. 이런 일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우리에게는 더 유별난 언어의 비극이 있다. 


  남북 분단이 오래다 보니 언어도 서로 달라지게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한 의미변화나 의사불통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념과 국운이 걸리는 일도 있다. 우리는 ‘국민’이라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인민’이라고 한다. 원래 같은 말이지만 우리는 ‘인민’이라고 하면 졸지에 빨갱이가 되고, 북에서는 ‘국민’이라고 하면 반동분자가 된다. 단순한 용어 차이가 아니라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쓰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소통하자는 것인데 오히려 불통의 옹이가 되고 있으니 멀쩡하던 ‘국민’도 ‘인민’도 슬픈 낱말이 되었다.  


  <詩經>이나 <孟子>에서는 People을 人民이라고 적었고, <禮記>에서는 國民이라고 했지만 당시에 두 말은 동의어에 가까웠던 말이다. 고대에는 지금처럼 국가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고, 국경마저 분명하지 않았다. 부족, 씨족사회는 읍, 성(城) 중심의 사회였다. 지금은 ‘나라 國’자이지만 애초에는 ‘재(城) 國’자였다. 그러니까 國民이란 ‘성 안에 사는 주민’ 정도였다. 옛날에는 ‘백성’이라고 해서 통치세력권 안에 있는 모든 평민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나중에 강력한 국가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국민’은 국가, 사회의 권력체제에 종속되는 피지배계층의 처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국민'이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격하되게 되어서는 국민은 군국(軍國)체제의 하수인일 뿐이었다. 근래에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라고 개칭한 이유도 국민에 숨어있는 일제의 잔재를 없애자는 데에 있었다. 이는 ‘국민’이란 용어에 쓰라린 상처가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해방 이후에도 일제 군국주의에 대한 회한과 국가주의를 경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국민’이란 말에 친근감을 갖을 수 없었다. 民도 ‘백성 민’자이지만 원래는 노예, 죄인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니 옛날에 ‘국민’이라는 말 대신에 百姓, 인민이라고 한 이유를 알 만하다. 지금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주인을 국민-Nation-이라고 해야 할지, 인민-People-이라고 해야 할지를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국민’이라는 이름에 거부감은커녕 ‘인민’에 대한 우월감마저 가지고 있는 듯하니 어의(語義) 변화와 언어에 대한 무감각이 무섭다. 입으로는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북의 동족을 버려둔 채 남한사람들만 ‘국민’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민족분단에 찬동하는 것이 아닐까? 순국선열을 빨갱이로 몰고, 역사를 뒤집은 대통령의 굴욕적인 친일외교를 방관하는 국민은 일제의 '황국국민'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일본의 치욕적인 냉대에도 불구하고 일본관광에 열을 올리는 국민도 설마 그래서일까?

 

 人을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상형자로 말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이는 그럴듯한 허구이고, 원래는 人이 아닌 入이었으며, 이는 ‘강자에 꿇어있는 사람’을 상형한 글자였다. 국민이 ‘城邑 안에 사는 피지배계층’이라면 인민은 ‘통치자의 지배를 받는 주민’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실제로 ‘인민’은 역사적으로 ‘국민’보다는 더 선호되던 단어였다. 일제 강점기에 이념과는 상관없이 의식있는 사람들은 ‘황국국민’이란 말이 싫어 ‘인민’이라는 말을 즐겨 썼고, 이런 현상은 해방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후에 각종 사회, 정치단체가 결성되었는데 공산당이 아니더라도 ‘0 0 인민위원회’라고 이름한 일이 많았었고, '인민'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용어였다. 만약 이념의 대립이 없었더라면 십중팔구 ‘국민’이 아니라 ‘인민’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들이 ‘인민’을 애용하기 시작해서는 그것은 공산주의식 용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좌우대립이 격화되면서 우익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다수의 ‘인민’을 좌익으로 몰았고, 더욱이 6.25와 공산당의 ‘인민군’, ‘인민재판’이 ‘인민트라우마’를 만들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즐겨 쓰던 ‘인민’을 저들에게 넘겨주고, 일제잔재인 ‘국민’을 선택하게 되었으니 비단을 버리고 삼베를 골랐던 것이다. ‘동무’란 좋은 말을 저들에게 빼앗기고, ‘친구’란 어색한 말로 대체한 경우와 닮았다. 이런 까닭으로 해서 ‘인민’이란 이름으로 희생당한 국민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고, 지금까지도 ‘인민’이란 이름을 입에 담기만 하면 속절없이 빨갱이, 간첩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황국신민의 국민’은 우익민주주의로 둔갑하고, ‘인민’은 좌익공산주의로 낙인찍혔으니 ‘언어의 힘’으로 말하기에는 너무 슬픈 반전이다. 단지 용어로 인해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서 서로 용납 못 할 적대국을 삼는다면 실로 어이없는 언어의 비극이다. 이 글을 읽고 벌써 '빨갱이 짓'이라고 단정할 사람도 있겠지만 바라건대 제발 ‘단어 하나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바보짓’은 하지 말자. 물론 민족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악한 정치인들을 탓해야 하겠지만 ‘국민’이라도 현명하다면 이런 비극이 벌어질 리 없다. 어찌 언어에 한정된 말일까? 제발 나이먹은 사람부터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어 저질 정객들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걸핏하면 정치인들을 욕하기 바쁘지만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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