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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Feb 29. 2024

志士 박정훈 대령

그는 시대의 지사(志士)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사에 먼저 이해타산을 따져 행동하기 마련이다. 내 이해에 관련되지 않는 일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손해를 볼 일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설령 이득이 되는 일이라도 내 능력을 계산해서 안 될 일이라면 아예 나서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다른 사람도 많은데 하필 내가 나서야 하는가? 이것이 분수를 아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것이다. 하물며 사회공공의 이익과 나는 상관없는 일이며, 남의 일에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은 분수를 모르는 푼수이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기회주의가 정당화된 사회에서 군자(君子), 지사(志士), 의사(義士)들이 말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 살신성인(殺身成仁) 대의명분(大義名分)따위는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오는 전설이 되어버렸다.  나라의 살림을 맡은 공무원, 국방을 책임진 군대에서 ‘가자미 복지부동(伏地不動)’을 호신부로 삼고 있는 자들이 눈만 내놓고 눈치만을 엿보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우리 시대를 울리는 목탁이다. 그런 시대의 양심이 항명수괴죄로 보직해임되고, 기소를 당하여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뒤로한 채  어지러운 軍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숭고한 의거를 끔찍한 반역죄로 기소하는 패역(悖逆)이 벌어지고 있다. 일개 대령이 감히 막강한 군 카르텔의 기강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군 검찰도, 박 단장도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는 적반하장의 도둑이요, 하나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오지랖이라서 그렇다.  

 

 일찍이 唐 曺松(조송)이 ‘一將功成萬骨枯(일장공성만골고)’라고 일갈했다. 장군이 공을 세우려면 만인의 목숨이 필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장군 어깨에서 빛나는 계급장은 수많은 부하를 희생시켜 얻은 피맺힌 별이다. 전투를 벌이다 보면 병사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해병대 사단장은 전투와는 전혀 관계없는 허황된 과시로 금쪽같은 청춘을 희생시켰다. 채 상병의 죽음은 승진을 위하여 부패한 지휘관이 벌인 보여주기식 위계에서 나온 참상이다. 박 단장은 희생당한 병사의 억울함을 밝히고, 군대의 잘못된 관행과 야비한 지휘관을 응징하기 위하여 부당한 상관의 지시를 거부하였다. 이해타산이나 따지는 약아빠진 속물들은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의거였다. 박 대령 같은 의인이 있어서 우리의 역사는 이어올 수 있었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는 역사의 은인이다. 그런데 존중은커녕 항명수괴죄라니 역사와 국민이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런 박 대령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유명 인사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를 만난 것과는 다른 감동이었다. 잘 생긴 얼굴이나 듬직한 체구에 해병다운 절도 넘치는 동작이라면 호감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수심어린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솟구치는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콧날이 새큰해지고, 목이 메고, 눈물이 솟아올라 말을 잇기 어려웠다. 나이를 먹으면 감정절제도 안 되는가 싶다. 무모한 듯한 그의 행위가 숭고한 의지의 실천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결연한 행위는 출세를 위해서 무고한 부하의 생명을 짓밟아버린 지휘관의 야비한 죄상을 밝히기 위한 정의의 고발이다. 썩은 지휘관으로는 아무리 첨단무기와 전투력을 갖춘다 해도 나라를 지켜낼 수 없다. 충무공을 모함하여 얻은 지위로 막강한 우리 수군을 망쳐버린 원균이 그렇고, 휴전선을 비워 두고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이 그렇다. 원칙을 지키는 곧은 지휘관은 무능한 군인이요, 그런 사람은 장군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가 군에서 터득한 진리이다. 이것이 우리 군의 관행이요, 체질이다. 타락한 지휘관을 비호하는 군 조직이나 검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 단장의 항명은 한 병사의 죽음에 그칠 일이 아니라 구국(救國)의 의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늑대들에게 포위된 양처럼 외롭게 투쟁해 나가는 그 의기로써 군 기강을 일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 투철한 애국충정을 헛되게 하는 것은 소중한 우리 역사의 상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용기와 의지를 실천한 적도 없고, 이런 시대의 지사를 만난 적도 없다. 저 의인이 불의한 세력들에 의해서 항명죄로 불명예제대 당하고, 가정이 파탄된다면 우리 국민은 역사의 죄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군 당국의 기만적인 처사에 동조하고, 나라의 정의를 세우려는 의거를 외면한다면 인정이 아니다. 하기야 친일매국노를 감싸고, 일제강점을 찬양하는 자들이 횡행하는 세상에 정의를 말한다면 시대착오일지도 모른다.  

 

 만약 박 대령이 군의 의도대로 항명죄로 처벌받는다면 우리 사회에 정의와 공정이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것이다. 군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身命을 다한 참 군인을 매장시킨다면 앞으로 누가 또 정의와 양심을 위해서 싸우겠는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먼저 박 대령의 숭고한 의거를 지켜내는 것이 국민의 도리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은 국민을 우습게 알고 국정을 농단하고 독재를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법학박사라고 하지만 세상에 용렬한 박사야 허다하니 '시대의 志士'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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