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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Feb 01. 2024

제주도에서 24

고목송(古木頌)

 

  제주도는 크지 않은 화산섬인지라 물이 질펀하게 흐르는 강도 없고, 그마저 대부분 물 없이 마른 내이다. 바닥이 화산암이라서 빗물이 금세 바위 속으로 스며들고, 폭우라도 쏟아져야 잠시 물이 흐를 뿐, 이내 바짝 말라버린다. 그 대신 빗물이 바위로 서서히 스며들어 지하에 거대한 현무암 물 저장탱크가 만들어진다. 암반층 속에 스며든 빗물은 2십여 년에 걸쳐 서서히 정화되어 청정 암반수인 제주삼다수가 된다. 해안을 중심으로 암반천연수가 솟아오르는 용천수가 1000개도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구태여 생수 없이 안심하고 자연지하수를 마셔도 된다. 삼다수를 무진 공짜로 마시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 물로 샤워도 하고, 변기까지 씻어내자면 미안한 생각도 든다.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는 식수는 물론 마른 내까지 적셔주는 제주도의 보물이다. 그런데 용천수로는 부족하여 함부로 지하수를 뽑아올려 심각한 환경파괴가 진행된다고 한다. 지하수를 이용하는 것은 좋으나 무분별하게 관정을 뚫어대면 지하수의 오염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제2공항까지 들어선다면 지하수는 물론 바닷물, 대기까지 급격히 오염시킬 것이다. 섬의 특성상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되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물 없는 하천에, 먹을 수 없는 지하수에, 오염된 바다가 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끔찍한 제주도가 될 것이다.   

  물은 없어도 마른 냇가를 따라 숲이 모여있다. 거기에는 아름드리 고목들이 용틀임을 하고 있는데 곰솔이나 팽나무, 녹나무는 몇 아름씩이나 되는 거구이다. 나무만 보아도 거기에 건천(乾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육지의 강물에서는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지만 거기에는 보기만 해도 더위를 식혀주는 이런 거목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날이 더우면 제주사람들은 즐겨 그 고목 그늘 밑을 찾는다. 물은 없어도 나무 그늘이 대신 더위를 식혀준다. 고목들은 계곡 깊은 곳에서 우람하게 뻗어올라 하늘로 뻗어 있다. 하늘마저 가리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 서늘한 위압감마저 느낀다. 여기에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필요조차 없이 웃통과 마음까지 열어젖힐 수 있다.

  옛날에는 나무의 시원한 그늘과 바람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그 위세에 속절없이 주눅이 든다. 나무가 비바람에, 짐승에, 나무꾼에 꼼짝없이 온갖 설움을  당하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은인자중(隱忍自重)하는 깊은 덕이 우람하게 뻗어있는 줄 몰랐다. 자주 찾다보니 고목들은 늦게나마 나에게 조금씩 깨달음을 준다. 그래서 나무의 덕을 기리는 고목송(古木頌)을 읊어본다.        

  

    고목은 태어나서

    지금껏 움직여본 적이 없다. 

    그런 까닭으로 아름도 넘는 등치를 헤치고 올라

    우람한 가지를 휘적거리며 하늘도 가린다.

    만약 뿌리를 들어 가벼이 옮겨다녔더라면

    뿌리깊은 나무라 했겠는가?     

  

   나는 걸음마를 배운 뒤로는

   발이 닳도록 바삐 돌아다니는 것이 

   내 본분이요, 능력이라면서 천방지축 나돌아다녔다.

   그리고 늘 땅바닥에 요령없이 붙어있는 나무를 비웃었다. 

   그렇게 사는 것도 사는 것인가?     

  

   그러나 오늘 이 고목을 보니

   수백 년 동안 천지를 채워 있고,

    나는 철 지난 매미처럼 추레해졌다. 

    고목은 서슬이 퍼렇게 버티고 서서 묻는다-

    네가 어디 내 한 가지만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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