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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Jun 06. 2024

고맙습니다 3

고마운 마음은 행복입니다. 

  겸손은 좋은 말이긴 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경지입니다. 글자대로 말하면 겸(謙)은 상대방을 높이는 것이고, 손(遜)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반적인 속성대로 자기중심적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거나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겸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근대 이후 인본주의가 일어나고, 인권의식과 민주주의 시대가 되면서 자아, 실존, 정체성이 인간의 핵심가치가 되어서는 전통적 가치였던 겸손, 상대존중의 미덕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자아실현, 인권, 실존이 현대인의 정체성 확립의 요건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것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흘러서는 인간사회의 한계 또한 분명해졌습니다. 인본주의, 인권사상이 인간의 존엄을 살렸다고는 하지만 그 대신에 도덕적 타락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성 상실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인권이 귀하다 해도 본질적으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필연적으로 겸손이 필요합니다. 겸손해야 인간성을 회복하고,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고, 사회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위기는 겸손을 잃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겸손은커녕 교만과 허세로 뭉쳐진 정치인들까지 곤경에 처할 때마다 겸허(謙虛)를 남발하니 가소로운 일입니다. 겸허야말로 겸손보다 더 이르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겸허란 자신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완전히 비우는 것인데 허세와 위선으로 가득한 인간들이 감히 입에 담을 말이 아닙니다. 

 

 겸손이 이렇게 어려우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우선 ‘고마워하는 마음’이라도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마워하는 마음이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겸손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고마운 감정은 인간을 가장 순수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존재의 한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가상한 일이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상대방에게 존중의 뜻을 전달할 수 있고, 이를 확산시켜 자신은 물론 사회를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소중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바탕에는 유가사상이 깔려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유가에서 이상형으로 삼은 인간은 군자(君子)였고, 군자는 백성을 통치할 수 있는 근엄한 인격과 신중한 언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가에서는 말이 많은 것을 경계하였기 때문에 언어와 의사표현에 소극적이었던 면이 있었습니다. 남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책임의식과 지배계층으로서의 권위의식은 상대방 존중보다는 자기과시가 필요했으니 겸손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한술 더하여 자신의 능력과 소신에 대한 자부심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사십 년을 교단에 서다 보니 남보다 우월해야 했고, 학생들에게 군림하려 했고, 내가 남보다 우위에 있다면 그것은 내 능력과 노력의 결과라고 자부했던 일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는 척, 잘난 척하기를 좋아했고, 가끔은 술 마시고 호기를 부리고, 힘자랑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원래 고마워하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인 결함일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었을 때에 고지식하고, 배타적이고, 권위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정당하다는 교만에 남을 탓하고, 추궁하기 좋아했을 것입니다. 지금 내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야 남보다 우월은커녕 훨씬 못났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니 가슴이 저립니다. 


  다른 것은 그만두더라도 칠십을 넘겨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 알량한 ‘고마워하는 마음’마저 가진 적이 많지 않고, 그나마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도 인색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고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서툴고 어색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익숙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사소한 일이라도 이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에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특히 그동안 나를 용납해 주고,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그래야겠습니다. 언어로 마음을 표현할수록 그 의지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서구인들은 우리보다 감정표현을 잘하는 편입니다. 그들은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아내한테 조항조의 "고맙소"라는 노래가사라도 읊어주는 것이 여생에 도움이 될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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