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수 Jul 04. 2024

제주도에서 27

제주도 길의 함정

 

  제주도에는 유난히 과속단속 지역이 많은 것 같다. 안전을 위해서 과속단속은 당연한 일이라서 불만을 가질 일이 아닐 것이다. 시야확보가 어렵고, 가파른 고갯길 2차선 도로인 516로에서 40, 50Km 속도제한은 고맙기까지 하다. 그러나 교통량이 많은 4차선 전용도로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30Km 제한속도 표지는 운전자를 당황스럽게 한다. 학교, 어린이보호 시설에서 과속단속은 당연한 일이지만 대로변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30Km 표지판은 운전면허시험장의 돌발상황만큼이나 공포스러운 일이다. 나는 고속도로에서도 제한속도를 어겨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안전운행을 하는 편이지만 4차선 도로에서 40Km가 넘었다고 사진 한 방에 600Km를 달릴 수 있는 기름값을 뺏긴다면 속이 편할 리 없다. 오죽하면 단속카메라를 몰래 떼어버린 운전자가 있었을까? 특히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이나 이주민들에게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전통 있는 학교라면 몰라도 소규모의 유아원을 대로변에 마구 허가하고서 30Km를 강요하는 것은 어린이를 위해서도, 운전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심지어는 노인보호를 위해서도 30Km를 요구하기도 한다. 왜 유아원과 경로당이 대로변에 있어야 할까? 별생각 없이 허가했겠지만 이는 운전자는 물론 어린애와 노약자를 위협하는 안이한 행정의 일면이다. 


  제주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유수의 관광지이다. 그런데 고객인 운전자들한테 제주도의 안이한 교통행정은 관광지의 이미지를 흐려놓기 십상이다. 제주도의 소문난 바가지 상술도 그렇지만 즐거운 여행와서 억울한 딱지를 맞고서 제주도에 좋은 인상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운전자에게 과속딱지는 결과적으로 차량운행비를 늘이는 일이다. 딱지 몇 번 맞으면 일 년 자동차 보험금에 육박한다. 고속도로더라도 제한속도를 넘다가 걸리면 반성도 하겠지만 40Km에 딱지를 맞고나면 나같이 수양이 부족한 사람은 수긍하기 쉽지 않다. 반성은커녕 함정에 빠졌다는 생각에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함정은 구덩이를 파놓고서 어리숙한 짐승을 사냥하는 수법이다.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수단이라고 하지만 대로변에 어린이 보호시설을 허가하고 운전자에게 범칙금을 매기는 것은 함정을 파놓고 걸려드는 낯선 운전자를 사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법은 지켜야 하지만 가혹한 법은 사람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흉기이다. 그래서 맹자는 법을 가혹하게 운용하는 군주는 함정을 파고 백성을 사냥하는 자이므로 자리에서 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절대군주 시대에 맹자가 그런 과격한 말을 한 것은 법치주의의 폐해를 신랄하게 탄핵한 웅변이다. 법은 최소한이어야 하지 엄격한 법을 내세우는 통치자는 폭군이기 십상이다. 법은 사람을 잡는 그물이라고 해서 法網(법망)이라고 한다. 걸핏하면 법대로 하자고 목청을 높이지만 법망이 촘촘할수록 인심은 각박해지고, 국민은 범죄자가 되기 쉽다. 그래서 道家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법치’가 아니라 ‘無法’이라고 했다. 법치는 무법이 무너져서 범죄자가 늘어난 결과라고 규정했다.  흔히 ‘무법천지’가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뜻으로 통하지만 원래는 '법이 필요없는 세상’이었다. 법을 내세워 정적과 국민한테는 가혹하고, 자신의 가족이나 그 집단의 범법에 대해서는 눈감는 것은 법치가 아니라 不法이요, 脫法(탈법)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핵심요원들이 대개 검사출신들인데 법치를 내세워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고 있으니 작법국폐(作法國弊)- 법으로 나라를 망친다-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법꾸라지에게는 작법자폐(作法自斃)-법으로 일어난 자, 법으로 망한다-가 더 먼저임을 알아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운전자에게 법망을 피해갈 방도를 알려주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알고보면 그것도 불법, 탈법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내비도 법을 무력화하는 법꾸라지를 양성하는 요물이 아닐까? 불법, 탈법이 일상화되어가도 무감각해지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도심지에서는 저속주행이 당연할지라도 시간을 다투어야 하는 자동차 전용로나 대로변에서는 오히려 교통을 방해한다. 섬이라고 해서 바쁜 일이 없을 수 없다. 원활한 교통질서를 위해서 육지에서는 고속도로가 있고, 외국에는 속도제한 없는 도로도 있다. 저속구간을 지정해서 불편을 주는 것보다는 그것을 해소하는 데 힘써 교통과 운전자의 편의를 보장해 주는 것이 관광제주도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어린이 보호시설은 어린이를 위해서도 당연히 대로변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그런 시설이 적지 않다. 가급적 교통량이 적은 곳으로 옮기도록 했으면 좋겠다. 더구나 지금 고비용 제주관광에 대한 말들이 제주도 관광을 위협하고 있는 형편에 운전자들에게 함정을 파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속도위반 딱지를 맞고서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 돈이 나라살림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이탈리아에서도 지나친 과속단속 시설을 단속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제주도에서 2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