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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치원(老稚院)을 아시나요?

안타까운 노인들

by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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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선이 끝났다. 전례를 볼 수 없을 정도의 亂政昏君(난정혼군)이 시대가 조기마감한 것은 불행중다행이었다. 윤 정권은 통치력의 한계를 극복할 최소한의 능력도 없어 필경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 대통령에 대한 논란도 많았지만 폭력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강변하는 폭거를 국민들이 용납할 리 없다. 그러나 탄핵까지 당했는데도 표차는 300만도 채 되지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국민의 4할이 막가무지 탄핵정권을 지지하였다? 망국적 지역감정과 노인 유권자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우리 민주주의를 자신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아직도 성장과정에 있다는 판단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의 시민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군주시대의 인습과 식민통치시대, 독재정치에 익숙했던 노년층들은 민주시민 의식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 특히 6.25 세대들은 군사독재시대에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들 중에는 아직도 반민주주의적인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나 심지어 시대착오자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흑역사만 기록한 통치자였다는 것이 국민적 상식이라면 그들은 매우 상식적이지 않다.

지금 7080 세대들은 선진대한민국 건설의 주역이었지만 그들은 우리 민주주의 정신의 발로였던 4.19 때에는 아직 어린애였고, 유신독재 때에는 성장과정에 있었고, 6.10 민중항쟁 때에는 민주주의 운동권에서 밀려나 있었다. 게다가 형편이 어려워 교육의 혜택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세대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았으면서도 그 중심에 서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지금 세상 일을 다 아는 듯 말하지만 삶에 부대끼느라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의식이 깊지 못하다. 독재, 정치보복, 무능, 부패를 겪어보고서도 겪어보지도 않은 야당후보자가 독재, 보복정치를 할 거라는 황당한 거짓선전에 속아넘어간다면 수준을 갖춘 민주시민이라할 수 없다.

노년에 들어서면 눈과 귀가 어두워져 사리판단력은 둔해지면서 고집과 편견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입으로는 노쇠를 탄식하지만 정작 그것을 수긍하지 않거니와 오히려 자신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경험과 지혜라고 착각한다. 정보에 어둡고 식견이 짧다보니 현실에 담을 쌓고, 소통 대신에 핸드폰만 부여잡고 유튜브나 어용언론에 현혹되어 왜곡된 세계에 빠져살기 마련이다.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가며 독재와 불의에 항거해도 하라는 공부는 않고 데모만 해댄다고 질타하고, 독재정부에 세뇌되어 반정부세력이라면 무조건 공산주의, 빨갱이들이라고 몰아세우기 일쑤였다. 노인은 젊은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존중하지 않으니 세대의 갈등이 심각하다. 작금의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막무가내 내란세력을 지지하였다. 유권자 40%가 여당후보를 지지한 데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유권자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노인들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2번 후보가 득표한 1,440만 중에는 노인들의 표가 대략 2백만 정도일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의 1/5이 노인들이고, 그중의 70%가 2번 후보를 찍었다고 볼 때 그렇다. 당선자와의 표차가 290만이었다면 노인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정확한 수치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라면 노인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의 장래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칠지 짐작하기에는 충분하다. 앞으로 노인 유권자가 늘어나서 30년 후에 노인이 절반이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선거권과 경로전통은 존중해야겠지만 나라의 장래가 판단력이 흐린 노인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다. 노인들의 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장래와 젊은 세대의 멸시를 받는 그들의 처지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사회의 어른노릇을 해야 할 노인들이 오히려 민주시민사회에 역행하고, 젊은이들이 장래에 걸림돌이 되고있으니 어떻게 젊은이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을까? 젊은이들과 소통되지 않으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건만 오히려 젊은이들만 탓하고 있다. 젊은이가 항상 옳다는 말이 아니라 노인들이 내세우는 경험과 지식은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신만이 옳다고 고집한다면 후손들을 걱정하는 어른이라고 할 수 없잖은가? 오죽하면 노치원이란 새로운 이름이 생겼을까? 어린이가 모여있으니 유치원(幼稚園)이고, 노인이 모여있으니 노치원(老稚院)이란다. 그 공통어인 稚는 유치하고 어리석다는 뜻이니 늙어 서럽다더니 필경 어린애로 내몰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 말고 누구를 탓할 것인가?

우리의 지역감정은 거의 망국적이다. 넓지도 못한 국토가 남북으로도 모자라 다시 동서로 분열되어있는 현실은 처참하다. 다행히 나는 그 당사자 아니니 각설하고, 다만 스스로가 늙은이인지라 노인들에게 충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들은 틀딱충, 꼰대, 보수꼴통을 넘어 이제는 어린애 같은 노치원생이 되었음을 깨달았으면 참 좋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스스로는 떳떳할 수 없고, 젊은이들에게는 존중 받을 수 없다. 그러고서도 여전히 백년장수를 호언한다면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 아닐까? 하고 보니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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