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처녀
贫女
秦韬玉〔唐代〕
蓬門未識绮羅香 오두막집에서 비단내음조차 모르는 살림에
擬托良媒益自傷 매파에 혼인을 맡겨야 하는 신세가 서럽소이다.
誰愛風流高格調 누가 나의 고매한 품격을 알아줄까?
共憐時世儉梳粧 세상의 저속한 몸단장 하라네.
敢將十指誇针巧 나는 비상한 솜씨를 가지고 있지만
不把雙眉鬪畵长 몸 단장 재주를 다투지 않을 것이오.
苦恨年年壓金線 해마다 삯바느질로 시달리며
爲他人作嫁衣裳 남의 혼수품을 만드는 신세라오.
蓬봉門분未미識식绮기羅라香향
蓬門 풀로 엮어 만든 삽작문, 가난한 살림을 비유. 여기에서는 오두막집으로 옮겼습니다. 未識 알지 못하다. 绮羅香 비단향, 냄새. 부유한 살림, 사치품. 보통 한시의 서두는 배경으로 시작하지만 이 시는 시인의 처지를 제시하여 자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는 한시의 상투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풍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소개하는 것입니다.
擬의托탁良량媒매益익自자傷상
擬托 의탁, 의지하다. 良媒 중매인. 매파. 益 더욱. 自傷 자신이 신세를 서러워하다. 매파에 의지하여 혼담을 해야 하는 처지를 슬퍼하는 장면입니다. 그것을 여자의 숙명으로 알았던 시대에 이는 시대의 저항정신이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자부심이 강한 처녀라면 더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誰수愛애風풍流류高고格격調조
誰愛 누가 좋아하랴, 여기에서는 누가 알아주랴?로 해석합니다. 風流 풍류. 멋. 高格調 품격이 높음. 자부심이 강한 처녀의 성격이 나타나 있습니다.
共공憐린時시世세儉검梳소粧장
共憐 모두 좋아하다. 時世 세상의 풍조. 儉 여기에서는 험난한, 사나운으로 풀이합니다. 梳粧 몸 단장. 여기에서는 세태에 맞추는 처세. 사람들은 세상에 맞추어 살라고 하지만 그럴 뜻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敢감將장十십指지誇과针침巧교
敢 감히 내세울 수 있다. 將十指 열 손가락으로. 誇 자랑하다. 针巧 수예, 바느질 솜씨. 敢將을 따로 옮기는 것보다는 ‘가지고 있지만’으로 반영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남다른 솜씨와 능력이 있다는 자부심입니다. 이 처녀를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항변일 것입니다.이름으로 보면 여시인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국의 이름으로는 남녀구분이 잘 안 됩니다. 물론 진도옥은 멀쩡한 남자입니다. 무림고수 방세옥이 남자이고, 유명한 여장 경극배우 매염방도 남자입니다. 왕희지 아들은 왕헌지입니다. 그러고 보면 김정일 아들이 김정은이니 우리 상식하고는 잘 안 맞습니다.
不불把파雙쌍眉미鬪투畵화长장
不 전체를 부정문으로 옮깁니다. 把 -을. 雙眉 두 눈썹. 鬪 다투다, 겨루다. 畵长 잘 그리다.
눈썹화장. 화장을 잘 하다. 얼굴을 꾸미다. 세속의 저속한 풍조를 따르지 않겠다는 자신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苦고恨한年년年년壓압金금線선
苦恨 고통스러운 한. 年年 해마다. 壓 누르다. 여기에서는 수를 ‘놓다.’ 金線 자수. 해마다 자수와 바느질에 시달려왔다니 자신의 불운한 처지를 한탄한 장면입니다.
爲위他타人인作작嫁가衣의裳상
爲他人 다른 사람을 위햐여, 作 만들다. 嫁衣裳 신혼 혼수품. 뛰어난 품격과 솜씨가 있지만 살림이 어려워 시집도 못가고 삯바느질이나 해야 하는 기구한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입니다.
이 시는 가난한 처녀의 심경을 읊은 것입니다。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이지만 사실은 시인이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빈녀에 비유한 흔적을 곳곳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매파는 유력인사를 연결시켜주는 거간꾼이나 유력인사이고, 梳粧과 针巧는 자신의 문장실력을 대유한 것입니다. 鬪畵长은 재주를 다투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삯바느질했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글과 재주를 팔았다는 사실을 비유한 말입니다. 시인은 어렵사리 하위관직에 오르기는 했지만 남의 하수인 노릇이나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지조있는 처녀에 가탁한 작품이라면 또 하나의 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풍자의 수법은 한시에서 즐겨 쓰는 수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