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詞(송사)
지금까지 唐詩를 중심으로 한시를 번역해왔다. 이제는 역시 유수의 중국한시였던 宋詞를 중심으로 한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詞는 노랫말, 즉 노래가사이다. 당을 대표하는 한시를 唐詩라고 한다면 송을 대표하는 한시는 宋詞이다. 당시가 읽는 한시라면 송사는 노래하는 한시이다. 詩는 본래 노래하는 장르이지만 唐詩는 문학에 해당하였으므로 읽었고, 宋詞는 음악이었으므로 노래하였다. 송사는 전후 양 절로 이루어졌는데 전반부를 上闋(상결), 후반부를 下闋(하결)이라고 하였다. 闋은 악절 단위로 송사의 음악적 본질을 알 수 있는 명칭이다. 노래라는 점에서 송사는 시의 본분을 재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시는 원래 노래가사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시경>이 그랬다.
송사는 唐詩와는 품격이 다른 면이 있다. 唐詩는 문인들의 문자표현예술이었으므로 그 내용이나 주제의식이 매우 다양했다. 당시를 보면 唐代의 모든 문화와 시대상, 문학사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송사는 민간에서 불려지는 곡조에 문인들이 노랫말을 붙였기에 상대적으로 통속성이 강했다. 그래서 唐詩는 문인들의 격조가 있었으나 宋詞는 풍류객의 낭만적 연정시(戀情詩)가 많았다. 詩語도 唐詩는 품격 있는 문어체였으나, 송사는 일상어인 백화체가 많이 쓰였다. 그래서 송사는 평이한 시어가 많았으며, 남녀 간의 애정물이 많았고, 애상적이었다. 당 말기부터 5代에 걸친 혼란기에 송사가 성행했는데 어지러운 시대를 반영하여 통속적, 향락적, 퇴영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송사는 애절하고 나약하고 섬세한데 시로서는 더 좋은 조건일 수도 있다.
우리 문인들도 당시를 지었듯이 송사도 지었다. 그러나 우리의 詞는 중국의 곡조를 몰랐기 때문에 읽는 문학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唐詩와는 달리 성행하지 못했는데 그 대신 시조가 노래문학을 대신하였다. 時調라는 말 자체가 곡조, 노래란 뜻이었다. 시조는 일정한 곡조에 가사를 붙여넣었기 때문에 송사와 같이 전사(塡詞)로 불렸다는 점에서도 같다. 그러므로 시조를 이해하는 데 詞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송사의 본질은 문자적인 형식보다는 표현방식에 있다. 詞의 특징 중의 하나는 형식의 자유로움이다. 당시가 5자, 7자, 절구, 율시, 古詩(고시) 등으로 엄정한 형식이 있지만 詞는 그러한 제약이 없어도 좋다. 50자 미만에서부터 백 자가 넘도록 다양하다. 그래서 詞는 唐詩의 형식적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글자 수에 따라 小令, 中調, 長調로 나누기도 하지만 본질은 글자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래의 장단에 따라 가사의 길이가 결정된다. 그래서 사를 長短句라고 하기도 한다. 시조를 평시조, 사설시조로, 혹은 단가, 장가라 나누는 이치와 같다. 흔히 평시조는 45자, 엇시조, 사설시조는 평시조가 늘어난 것으로 배웠겠지만 타당성이 부족한 주장이다.
이에 <송사3백수>에 수록된 작품에서 골라 소개하고자 한다.
木蘭花 애모의 노래
晏殊 991-1055
綠楊芳草長亭路 버들 푸르고 꽃이 핀 머나먼 길을
年少抛人容易去◉ 그이는 날 버리고 훌쩍 떠나갔지요.
樓頭殘夢五更鐘 누대에서 꿈을 깨니 새벽종이 울리고,
花底離愁三月雨◉ 봄비내리는 꽃밭에서 님 그리워 운다오.
無情不似多情苦 사랑의 그리움을 무정한 이 알까?
一寸還成千萬縷◉ 일편단심이 천만 갈래로 찢어진다오.
天涯地角有窮時 세상천지는 끝이 있어도
只有相思無盡處◉ 님 향한 사랑은 끝이 없소이다.
이 시는 외견상 7언율시와 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송사이다. 송사의 요건은 형식, 글자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사라는 데에 있다. 노래가사는 곡에 노랫말을 붙인 것이므로 음악이 문학보다 본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제목인 목란화는 곡조명칭, 즉 사패(詞牌)이고, 내용은 애모의 노래이다. 다만 지금 우리는 음악을 들을 수 없고 노랫말만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사의 제목은 악곡의 이름일 뿐 내용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우리 시조도 제목이 따로 없다. 가집(歌集)에 실린 시조의 제목은 첫구만 따서 적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사와 시조는 문학적 성격과 기능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형식으로 보아 唐詩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양식은 당나라 때에도 있었던 것으로 이는 唐代에는 唐詩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랫말로 지어졌기 때문에 엄연한 詞이다. 내용으로 보아서도 한 편의 율시와 다를 바 없지만 5행부터는 후결(後闋)로 전결와 나누어진 詞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아래에 주석을 붙인다. 이를 바탕으로 필자가 위와 같이 의역한 것이다. 시를 직역하면 시가 아니라 산문이 된다. 흔히 한시번역을 직역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그것은 시라고 할 수 없다. 漢詩를 번역했다면 당연히 韓詩가 되어야 옳다. 漢詩를 읽는 목적은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이지 뜻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綠楊 푸른 버들. 芳草 향그런 꽃. 長亭路 정자에서 내려다본 먼 길. 사랑하는 님이 멀리 떠나간 길.
年少 젊은이, 사랑하는 사람. 抛人 나를 버리고. 容易去 쉽게 가버리다. 매정하게 떠나다. 詞는 唐詩에 비해 일상적인 백화체가 많다. 시인은 남자였으나 애절한 여성의 목소리로 표현되었다.
樓頭 님을 떠나보낸 누각. 돌아오는 님을 기다리는 곳. 殘夢 기다리다 지쳐 선잠이 들다. 五更鐘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 밤새도록 잠 못이루고 간절히 기다리는 심경이다.
花底 꽃잎이 떨어진 바닥. 離愁 이별의 근심, 근심에 빠지다. 三月雨 봄비. 봄비에 꽃잎이 떨어지니 떠난 임이 더욱 간절해진다.
無情 무정한 이, 떠난 님. 不似 같지 않다. 비교. 多情苦 다정의 고통. 사랑의 쓰라림. 매정하게 떠난 임이 내 사랑을 알아줄까?
一寸 일 촌밖에 되지않는 심장, 사랑하는 마음. 還成 되다. 바뀌다. 千萬縷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심정. 번역에서는 원문에 ‘님 그리워를’ 더하였다.
天涯地角 세상 끝. 有窮時 끝이 있다. 세상이 아무리 넓고 커도 내 사랑만 못하다.
只有 다만 있다. 相思 사랑하는 마음. 無盡處 끝이 없다. 時와 處는 번역에서 생략함. 세상은 끝이 있어도 내 사랑은 끝이 없다는 애절한 사랑의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