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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유치라고?

by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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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특검이 시작되면서 이상한 말이 자주 들린다. 일국의 대통령이 북한과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니 외환유치(外患誘致)라는 것이다. 불원 간에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사실이라면 역대 최악의 통치자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의 죄인은 늘 있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그런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이 치욕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국민이 부끄러워할 일이 더 있다. 대부분의 매체가 이 사건을 ‘외환유치’라고 보도하고 있고,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데 ‘외환유치’는 6,70년대를 살았던 내 귀에 매우 익숙했던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이 땅에 달러(外換)를 끌어오는 정책이었다. 유치란 말은 좋은 목적을 위해서 끌어들인다는 뜻으로 보통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외자유치, 올림픽유치, 엑스포유치, 관광객유치 등등- 그런데 정권유지를 위해서 동족인 북한에 전쟁을 도발한 천인공노할 짓을 외환유치라고 한다면 전쟁을 즐기자는 말인가? 하기야 윤석열로는 계엄령을 선포할 명분이 되니까 그렇겠지만 국민으로서야 끔찍한 일이다. 동족끼리의 전쟁은 져도, 이겨도 지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모두들 외환유치라고 하고 있으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전을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실제로 일부의 사전에 외화유치죄(外患誘致罪)라는 단어가 있었다. 깜짝 놀라 중국사전을 보았더니 역시 유치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고 나와있었다. 사전에 그렇게 나와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쩌면 법률에 그런 용어가 있으니 사전이 그렇게 따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동안 유치란 말을 잘못 써왔단 말인가? 아니면 사전이 잘못되었을까? 법조문이 틀렸을까? 어떤 경우도 수긍하기 어렵다.


그러니 유치란 말을 두고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致는 이르다, 지극하다, 부르다 등 다양한 뜻이 있지만 부정적인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더구나 <大學>에는 格物致知(격물치지)란 말도 있다. 간단히 말하면 ‘사물의 이치를 살펴 참다운 知에 이르게 한다.’ 여기서의 致는 그야말로 이상적이고, 지극한 경지를 극찬한 말미다. <중용>에서도 致中和(치중화)라고 했으니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좋았던 誘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부정적인 의미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유치와 유사한 말이지만 부정적인 의미로는 誘發(유발)이 있다. 어떠한 사태, 상황을 일으킨다는 의미이다. 도발(挑發), 오발(誤發), 고발(告發), 징발(徵發) 등이 그런 경우이다. 外患은 전쟁의 근심 걱정이므로 당연히 유발이라고 해야 맞다. 그런데도 이런 이상한 말이 유통되고 있으니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우기거나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언어유희를 하는 기막힌 우리 사회가 우연이 아니지 싶다. 사전도 그렇고, 언론매체도 그런 형편이라면 언중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기초한자만 알더라도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자는 한글의 적이 아니라, 국어의 일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한자를 모르고 쓰는 한자어는 결국 불통의 문자이다. 한글이 위대하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한글만 써도 충분히 소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도 못한 가운데에서 막무가내 한자교육을 폐지한다면 아무리 위대한 한글도 제 기능을 할 수 없고, 소통도 되지 못한다. 외환유치와 외환유발을 구분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漢字를 몰라서이다. ‘유발’과 ‘유치’도 한글로는 유사하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자를 아는 사람은 이런 혼란이 있을 수 없다. 사전은 물론 고급두뇌인 언론인들조차 이런 잘못을 모르고 있으니 한자깜깜이 세대가 이미 우리 사회의 주력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모든 국민이 이런 당달봉사가 될 것이다. 이때에 벌어지는 의사불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엄중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한자를 가르치는 동시에 한자어를 점진적으로 우리 언어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세대에 걸치는 노력도 짧다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글이 우리 언어의 주역이 되었던 것은 불과 백 년 남짓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자는 이천 년 동안 우리 언어의 중심이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어교육에서 우선 기초적인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 한글전용론은 게으르고, 감상적인 국수주의에 가깝다. 효율을 내세워 가르치지 않으면 非교육적이요, 反문화적이다. 어려운 과제도 수행해 낼 수 있어야 문화는 발전할 수 있다. 그것이 교육이다. 한자를 없애려면 한자를 쓰지 않아도 소통이 될 수 있도록 한자어를 없애야 한다. 한자어가 남아있는 한 한자를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한자어가 생겨나고 있다. 한글만 쓰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신조어는 고유어로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한자어도 서둘러서 고유어로 대체해야 한다. 외환유발을 불편하더라도 ‘다른 나라와 싸움을 일으키는 짓’이라고 말을 하든가, 그게 번거롭다면 잠정적이라도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얼마 안 가 우리의 한글은 발음기호로 전락할 것이다. 한자는 한글의 적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필요악(必要惡)이라는 사실을 제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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