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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댕이 이야기 7

도토리가 늙었다.

by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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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도토리가 눈에 띄게 늙어가고 있다. 놀아달라고 인형을 물고 와서 던지면 잽싸게 뛰어가더니 요새는 억지로 운동시키려고 인형을 던져도 시큰둥하다. 밖에 나가는 눈치만 보이면 좋아서 뺑뺑돌면서 목줄에 머리를 디밀더니 나가자고 해도 멀뚱거리며 반응이 없다. 저를 집에 남겨두고 사람만 나가면 기를 쓰고 짖어대서 속임수로 먹을 것 던져줘야 하더니 지금은 주인이 나가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늘더니 요새는 아예 바닥에 누워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요놈이 안 움직일 때는 보통 앞다리는 세운 채 뒷다리로만 앉았었다. 그러더니 요새는 앞다리는 물론 아예 네 다리를 포기한 채 턱을 바닥에 괴고 퍼져버린다. 주인이 움직여도 머리는 꼼짝도 않고 기껏 눈알만 굴리고 있다. 억지로 산책길에 끌고가도 얼마 안 가 돌아올 궁리만 한다.


자주 머리를 디밀어 쓰다듬어주면 눈을 지그시 감고 무아지경에 빠지더니 얼마 전부터 아예 제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 목욕은 물론 쓰다듬어주려고 해도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며 완강히 거부한다. 코는 말라있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털을 깎아주지 못해서 긴 털에는 눈물이 말라붙어 꺼칠꺼칠하다. 가끔 네다리를 뻗어 스트레칭도 곧잘 하더니 그것도 없어졌다.


점점 무기력해져 가길래 억지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이제 늙었으니 먹을 것이나 원하는 대로 주라고 한다. 병을 만들어 돈 버는 의사가 치료를 포기할 때가 되었다는 눈치이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제 11년밖에 안 되었다고 하니 그만하면 살 만큼 살았다고 한다. 20년도 산다고 들었다고 하니, 그렇게까지 살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과 같이 개도 늙으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애견가가 들으면 야만인이라고 하겠지만 솔직히 늙은 개 병 수발하고 싶지는 않다. 의사의 말대로 이 녀석 수명이 반으로 줄었다고 생각하니 한편 측은하기도 하다. 마음이 여린 아내는 벌써 눈물을 훌쩍인다.


원래 강아지 수명이 20년이라고 했을 때는 이 녀석이 선의의 경쟁자로 보였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내가 이 녀석을 보내야 할 판이다. 우선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이놈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녀석과 살면서 비록 짐승이지만 그 존재가치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녀석을 보면 내 인생을 5배속 비디오로 보는 듯하다. 얘 일생을 15년으로 잡고, 나를 75년으로 잡으면 그렇다. 나도 65까지는 하고싶은 일 다 해가며 살았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쇠약한 늙은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도토리도 열 살까지는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팔팔했었다. 얘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대개 나와 비슷한 노화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녀석이 내 인생의 축소판이지 않은가? 큰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의사 말대로라면 별 소용없는 일이다. 내가 큰 병원에 가봐야 별 수 없는 것처럼- 그러니 지금 도토리 모습이 남 같지 않다.


생각하면 이 녀석 키우느라고 드는 품이 보통이 아니다. 한시도 주인을 떨어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집에 두고 밖에 나갈라치면 짖어대면서 난리를 쳐대니 마음놓고 나들이하기도 어렵다. 육지라도 나가려면 개 호텔에 맡겨야 하는데 사람보다 숙박비가 더 비싸기도 하거니와 덩치도 작고, 겁이 많아서 안심할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데리고 가야 하는데 비행기 요금이 사람보다 더 비쌀 때도 있고, 차를 탈 때마다 운전수 눈치보아야 하고, 종일 모시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마음놓고 일을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양을 하려고 해보았지만 적응을 하지 못해 되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 안에서 댕댕이를 키운다는 건 고역이니 이런 애물단지가 없다. 마음 여린 아내가 아니었다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 녀석한테 배우는 것이 많다. 세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고 했는데 댕댕이 혼자서도 충분히 내 스승이 될 만하다. 이 녀석을 보면 人生과 犬生을 비교할 수 있다. 얘처럼 나도 같은 창조물로 별 수 없이 생로병사하는데 댕댕이는 죽어 사라지고, 인간만 존엄하고, 죽어서도 영생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인간은 좀더 겸손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댕댕이와 다른 점에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이 얘 같아서는 ‘개 같은 인간’을 면할 수 없지 않은가? 무언가 댕댕이와는 달라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이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노고야 감내할 가치가 있다. 도토리를 늙었다고 함부로 하면 배은망덕일 것이니 멀지 않은 도토리의 노후를 잘 보살펴 주어야겠다는 인정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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