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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39

깻잎의 편견

by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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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주에서는 들깨농사가 시원치 않다. 여기에서 들깨는 씨를 따로 뿌리지 않아도 여기저기 잡초처럼 흔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열매가 부실하여 기름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들깨를 심는 이유는 깻잎채소를 먹자는 것이 고작이다. 얼마 전만 해도 들기름은 참기름보다 대접을 받지 못했었다. 들깨는 그냥 씨만 뿌리면 잘 자라고, 농약도 필요 없이 수확도 많고, 짐승들도 먹지 않아서 재배하기도 수월하다. 이름부터 참기름과 달리 들기름이다. 들은 흔하고, 거칠다는 접두사이다. 중국인들은 들기름은 물론 깻잎조차 먹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들기름의 인기가 참기름을 압도한다. 불포화지방산이고, 오메가3도 풍부하다는 말에 값도 비싸거니와 들깻잎은 식품으로 인기가 많아 잎농사용 재배도 적지 않다. 닭이 꿩이 된 것이다. 그래도 제주에서는 여전히 참깨를 많이 심는다. 그래야 식용기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깨 심은 것을 보니 그 잎이 둥글넓적하고, 잎이 갈라져 있어 내가 어릴 때 보던 모습하고 많이 다르다. 처음에는 참깨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내에게 물어보니 참깨가 맞다는 것이다. 무슨 참깻잎이 저러냐고 했더니 본래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느냐고 또 나이를 들먹인다. 그러니 또 내가 틀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습관적으로 들었다. 마누라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몇 년 전만 해도 아내와 견해차가 나면 내 생각과 기억을 밀어부쳤지만 요즈음은 영 자신이 없다. 매사가 역시 나이탓이려니- 단단히 주눅이 든 것이다.


그래도 오기가 발동하여 몇 주를 두고 참깨가 자라는 모양을 참을성 있게 관찰해 보았다. 그랬더니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 시작하더니 참깻잎이 점점 내가 원래 기억했던 그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밑에는 처음 시작되었던 대로 여전히 둥글넓적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잎이 가늘어지고 버들잎처럼 뾰족해져간다. 그 모습이 반갑기 짝이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 기억이 틀릴 리가 없잖은가? 요새 기억도 아니고 총기 좋던 옛날의 기억인데- 반가움에 아내더러 깻잎을 들이댔더니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길가에서 한참 티격태격했지만 결론은 서로 옳았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깨가 어렸을 때 본 기억만 남아있고, 나는 깨가 익어갈 때만 본 기억이었다. 결국 둘 다 한 때의 기억을 사실로 믿었던 것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른바 편견이다.


이런 일이 어디 깻잎만 그럴 것인가? 세상만사가 다 그럴 것이다. 사람은 사물의 한쪽 면만을 보고 쉽게 전체라고 단정한다. 알고보면 ‘눈 감고 코끼리 만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편견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깻잎이 둥그냐 가느냐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기름만 잘 나오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불통의 편견을 가지고 서로 옳다고 싸우는 것이다. 나도 편견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었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완고한 편견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답시고 평생을 살아왔으니 그 죄가 얼마나 큰지 이제야 깨닫는다. 억울해서 울고부는 애들을 다그치던 옛날 일이 잊히지 않는다. 나의 당치않은 편견으로 가족은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원한을 샀을까? 가족, 친지한테는 사죄할 기회나 있지만 제자들한테는 그럴 기회마저 없으니 가슴이 저려온다. 그러고서도 결국 죽을 때까지 편견 속에서 살고, 끝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편견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내가 편견이 아니라고 믿으면 곧 편견이 아닐까? 위대한 성현들,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에는 편견이 없을까? 누구나 인정하는 지금의 진리도 후세에는 편견으로 판정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편견이라고 낙인찍힌 사실이 후세에는 진리로 판명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상대방을 편견이라고 단정하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견해는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인가? 편견(偏見)과 정견(正見)은 깻잎 한 장 차이일까? 아니면 용납하지 못할 평행선일까? 결국 인생이란 편견을 줄여가는 과정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으니 아직은 더 살아보아야 할 핑계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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