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완성자 荀子

억울한 後聖 순자를 위하여-

by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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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전국 말기시대의 유학자로서 공자 맹자와 더불어 유학의 기반을 완성한 3代 祖宗이다. 齊나라 국립학술기관인 직하(稷下)에서 학술원장격인 祭主(좨주)를 3차례나 지낸 석학이었다. (祭主를 제주로 읽으면 제사장이지만 좨주로 읽으면 학술기관의 首長이다.) 순자는 맹자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순자>를 저술함으로 해서 선진(先秦)유학의 기반을 완성하였다. 선진유학이란 진나라 이전까지의 유학을 일컫는데 유학의 본질에 충실했던 정통유학이라 할 수 있다. 宋대에 이르러 현실주의 유학을 이념적 관념적 학풍으로 이끈 것이 성리학인데 이를 선진유학에 대해서 新유학이라고도 한다. 신유학이라 했지만 본질에서 멀어진 ‘변형유학’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둘은 매우 다른데 우리의 유학은 이를 구분하지 못해서 많은 과오를 면치 못했다.


맹자는 공자의 유학을 계승발전시켰지만 유학의 본질인 공자의 현실주의철학을 이상주의로 변질시킨 혐의가 있었는데 순자는 이를 다시 유학 본래의 현실주의로 되돌려 놓은 공이 있다. 공맹의 유학은 소극적인 仁義였는데 순자는 보다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禮法을 내세웠다. 공자는 예를 예의(禮儀)라는 형식윤리로 접근했지만 순자는 예를 禮法(예법)이라는 실천윤리로 제시하였다. 맹자는 禮를 辭讓之心(사양지심)으로 말했지만 순자는 ‘욕망과 다툼’으로 보았으니 그 관점의 차이가 크다. 이는 이상주의에 흐른 맹자의 통치철학을 현실주의로 대처한 것이지만 성리학자들은 이를 反유가적이라 해서 순자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우리가 荀子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성리학의 주장을 맹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학에서 순자의 위치는 맹자를 능가한다는 평가가 있으니 우리의 유학은 중요한 부분을 잃은 것이다.


<논어> <맹자>는 직접저술이 아니라 후대에 제자들에 의해서 재구성된 어록집이다. 체제가 산만하고, 어록에 대한 가치적 설명이 없으니 그것으로는 유학의 체계를 세울 수 없었다. 그에 반하여 <순자>는 순자가 생전에 자신의 사상을 직접 체계화해서 문서화한 것이라서 최초로 완성된 유학경전이라 할 수 있다. 靑出於藍(청출어람)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名句이다. 先代 스승의 행적을 따라하기에 급급했던 유학의 관행에 제자가 스승을 능가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혁신적인 교육사상이고, 순자는 학술적으로 맹자를 능가함으로써 스스로 그것을 입증해 보였다. 그 밖에도 歲寒後彫(세한후조- 날이 추워야 비로소 소나무의 기상을 안다.) 駑馬十駕(노마십가-둔한 말은 자주 채찍질을 해야 한다.) 麻中之蓬(마중지봉-삼베 속에 있는 쑥대는 곧다) 등도 교육과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名言이다. 순자는 말년에 초의 난능(蘭陵)에 칩거하며 한비, 이사와 같은 유수한 제자를 길러냈다. 君舟民水(군주민수-임금은 배요, 백성은 배를 띄우는 물이다) 載舟覆舟(재주복주-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등에는 군주는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정치사상이 배어있다. 순자는 선진(先秦)유학을 발전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諸子학파들을 수용, 융화하여 유가의 역량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集大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諸子, 군왕들과 다툼을 벌였던 맹자와는 다른 면모였다.


이러한 공로로 순자는 유가의 祖宗으로 존중받았지만 宋의 성리학자들에 의하여 <맹자>는 유가경전 四書로 추존되고, 반대로 <순자>는 유학의 이단자로 매몰되었으니 순자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순자가 성리학자들에게 미움을 받았던 이유는 맹자의 성선설에 맞서 성악설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순자는 그에 그치지 않고 맹자를 지목하여 유가의 죄인이라고 매도하고, 맹자의 성선설을 조목조목 꼬집어서 비판하였다. 논리적으로 허점이 많고, 현실과도 동떨어진 맹자의 仁義론을 비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순자를 이단으로 격하시킨 주희의 처사는 유학을 위하여 불행한 일이었다. 성리학자들이 순자를 매장한 또 다른 이유는 순자가 맹자의 이상주의와 배치되는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주의는 맹자의 이상주의보다 공자의 정신에 더 충실하였으니 성리학자들의 처사는 부당한 것이었다.


<순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性惡說이다. 사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므로 일률적으로 성선이니, 성악이니 규정하는 자체가 무리한 처사이다. 사자가 이기느니 호랑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느 놈이건 힘센 놈이 이기는 것이다. 짐승이건 사람이건 모두 개인차를 인정해야 한다. 다만 맹자의 성선설은 이상론이었던 반면에 성악설은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인성론이라 할 것이다. 순자는 사람은 본래 악하다(人性本惡), 선은 교육의 결과이므로(善者僞也) 인간을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인 교화와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유지하게 한다면 선에 머무를 수 있다는 주장에 비하여 훨씬 적극적인 교육관이었다. 성선설이 인간을 긍정적으로 본 것은 좋았지만 그렇기에 맹자의 교육론은 적극적이지 못했던 면이 있었다. 그래서 고작 ‘잃어버린 선한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求其放心而已矣)’,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라(無欲其所不欲而已矣)’등의 소극적 방법에 그쳤다. 그러나 순자는 人性을 부정적으로 보고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순자는 法度를 내세워 엄정한 논리와 강력한 방법론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맹자는 비유를 들어가며 장황하게 性善을 강변했지만 순자는 간결명쾌하게 인간의 악한 본질을 논파하였다. ‘사람의 욕심은 무한하고, 얻을 것은 유한하다(欲無限資有限)’ ‘사람은 본래 이익을 탐한다(生而好利)’라 하여 세상은 경쟁을 피할 수 없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악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였다. ‘禮는 바른 절차이고, 법은 바르다.(禮序法正)’라고 하여 예와 법을 동질화하여 禮法으로 통치해야 한다고 했으니 결과적으로 법치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었다. ‘사람이 결정하면 하늘도 이긴다(人定勝天)’는 공맹의 ‘天命을 따라야 한다’는 순천(順天)사상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는 순자의 무신론, 인본주의, 유물론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옛것은 지금보다 훌륭하다(今不如古)는 유학의 철칙이지만 순자는 반대로 法後王(법후왕-후왕을 따름)론을 내세워 전통보다는 현실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은 획기적인 개혁이었다. 그래서 순자를 後聖이라고도 불렀다.


순자의 현실주의는 실용주의와도 상통한다. 전국시대의 사회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적인 치세론이 요구되었고, 그래서 당대 諸子들과의 통합이 필요했던 것이다. 막연한 仁者無敵(인자무적) 정도의 구호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리하여 법을 통치의 근본으로(法者治之端也)삼았다. 그래서 禮法兼治(예법겸치-예와 법을 병행한다)라고도 하였으니 순자의 제자들이 진시황의 냉혹한 法治를 주도한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다.


순자는 공맹의 유학을 절충하고 諸子와 융합하여 유학을 선양한 공로가 있다. 그래서 맹자와 순자를 공자를 계승한 새의 양 날개(鳥之兩翼), 수레의 두 바퀴(車之兩輪)로 비유하기도 한다. 순자는 공맹의 뒤를 이은 후배였기 때문에 선배들이 장단점을 효과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으니 과연 氷寒於水(빙한어수-얼음은 물에서 왔지만 물보다 더 차다.)를 실현하였다고 할 것이다. 만약 순자의 적극적인 현실주의, 실용주의, 개혁정신이 아니었다면 <순자>와 같은 유학의 결정판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순자>는 <맹자>처럼 유려한 문장은 아니지만 명징하게 유학을 체계화하였으니 이것이 순자를 재평가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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