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123

지키지 못 한 사랑의 약속

by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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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秋歲引

王安石 1021-1086


별관에 들리는 다듬이소리 차갑고

別館寒砧

성 위에서는 피리소리 외로운데

孤城畫角

한 줄기 가을소리되어 허공을 가른다.

一派秋聲入寥廓◉

동으로 돌아가는 제비는 바다로 날아가고

東歸燕從海上去

남에서 오는 기러기는 모래톱에 깃든다.

南來雁向沙頭落◉

초왕 놀던 곳에 불던 바람도

楚臺風

진왕 놀던 곳에 뜨던 달도

庾樓月

어제 모습 그대로일세.

宛如昨◉


어쩔 수 없이 명리에 매어살고

無奈被些名利縛

어쩔 수 없이 세파에 얽혀사느라

無奈被他情擔閣

아쉽게도 풍류를 잊고 살았구나.

可惜風流總閒卻 ◉

화표에는 부질없는 맹세만 남아있고

當初漫留華表語

진루에서 맺은 약속 어그러겼구나.

而今誤我秦樓約◉

꿈 속에서도

夢闌時

술이 깼어도

酒醒後

그대를 잊지 못하엤네.

思量著◉


別館 숙소, 여관, 객관. 우리로 말하면 주막집. 寒砧 가을밤 차가운 다듬이 소리. 가을임을 나타낸다.

孤城 외로운 성. 畫角 악기. 피리, 軍號(군호). 군사통신. 원문에는 孤城이라 했으나 나그네로서는 피리소리가 더 외로웠을 것이다.

一派 한 줄기. 秋聲 가을의 소리, 기운이 되어. 가을소리는 여러가지이겠으나 앞에 나온 '피리소리'로 옮겼음.入寥廓 허공에 퍼지다. 북쪽 변방의 공허한 하늘.

東歸燕 동쪽으로 가는 제비. 사실은 남쪽으로 돌아가는 제비. 大雁南飛-기러기는 남으로 날아가고, 燕子東歸- 제비는 동으로 날아간다. 이는 한시에서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자주 쓰는 문구임. 從 좇아서. 따라서. 海上去 바다로 날아가다. 우리 감각으로는 제비는 남으로 날아간다고 해야 좋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면 원작을 지나치게 손상시킬 것이다.

南來雁 남으로 오는 기러기. 그러나 시인의 위치로 보아서는 남으로 가는 기러기여야 좋을 것 같다. 아마도 앞구 歸와 대우를 이루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沙頭 백사장, 모래톱. 向沙頭落 모래톱에 내려앉다. 앞구와 대구를 이루고 있음. 唐詩에서는 대구가 필수이지만 송사에서는 유동적이었다.

楚臺 초왕이 양대에서 선녀와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風 그때 불던 바람. 宋玉의 風賦를 일컬음. 풍부는 초왕이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읊은 賦. 부는 운문과 산문을 겸비한 장르. 우리의 가사와 유사함.

庾樓 진왕 유량이 노닐던 누각. 月 그때에 보던 달. 앞구와 대구임.

宛如 흡사하다. 매우 닮다. 昨 어제. 지난 날. 여기까지 前闋(전결), 앞 악장이므로 일단 마무리를 해야 한다.

無奈 어쩔 수 없다. 被 매이다. 些 자질구레한, 사소한. 名利 명예와 이익. 縛 묶이다, 얽히다.

他情 다른 사정, 번거로운 세상사. 擔閣 차질, 번거로움. 앞 구와 대구임. 그동안 세파에 시달렸던 사정을 말하고 있음.

可惜 아쉽다, 아깝다. 風流 풍류, 멋. 總 모두. 閒卻 버리다. 잊다. 그동안 관료생활에 시달려 풍류와 멋을 잊고 살았던 세월을 아쉬워하고 있다.

當初 처음, 원래. 번역에서 생략함. 漫留 헛되이 남아있다. 華表 표지석. 鶴唳華表(학려화표) 고향을 떠난 사람이 신선술을 연마하여 학이 되어 천 년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화표에 앉아 울었다는 고사. 세파에 시달리느라고 풍류를 잃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비유함. 語 화표에 적혀있는 말. 화표에 새겨놓은 '사랑의 맹세.'라고 옮겼다.

而今 그러나 지금은. 誤 착오. 我 나. 秦樓 술집. 기방. 約 약속. 기방의 약속이라면 기녀와의 사랑의 약속. 왕안석은 당대의 명망높은 정치가요 문장가, 시인이었지만 詞에서는 남녀의 애정도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만큼 송사에는 남녀간의 애정시가 많았다. 근엄한 우리 한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

夢闌時 꿈속에서도. 酒醒後 술이 깨어서도

思量 생각, 그리워함. 우리말 ‘사랑’의 어원으로 생각 됨. 著 행동의 지속을 나타내는 어미. -하고 있다. 자나깨나 그대를 잊지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랑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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