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운이 좋아 부자가 된 사람을 졸부猝富라고 하고, 졸렬하고 못난 사내를 졸부拙夫라고 한다. 猝과 拙은 한자는 다르지만 우리 음과 뜻으로는 다르지 않으니 우연이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비상한 노력과 능력으로 자수성가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나라의 재벌양성 정책의 특혜를 받아 졸지에 부자가 된 猝富졸부, 拙夫졸부들이다. 그들이 하는 말이 ‘내 돈 가지고 기업하면 바보’ 라니 재벌들은 나라 돈, 국민 세금으로 돈을 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재벌 형성기를 보면 대부분 정부의 금융특혜와 부채탕감이라는 불공정 봐주기로 기반을 다졌고, 그것은 대부분 국민의 피땀 어린 혈세와 저축이었다. 그러므로 재벌들은 원천적으로 국민에게 빚이 있는 셈인데 재벌은 물론 국민들까지도 이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새 정부 들어서 잘못된 재벌의 체질개선을 다짐했으나 녹녹한 일이 아니다. 진영의 중심에 서있는 막강한 재벌이 지나가는 일개 정권에 쉽게 항복할 리 없다. 섣불리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땡벌들에 되잡히기 십상이니 재벌개혁은 실로 난제 중의 난제이다. 더구나 작금의 세계적인 경제불황은 재벌개혁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정권은 선거에 따라 피고 지지만 재벌은 애국가의 동해물과 백두산처럼 대를 이어 만세를 이어갈 판이다. 재벌들이 나라의 재산을 차지하고 있으니 국부(國富)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사회주의 국가는 나라가 국부를 가지고 있어 국고(國庫)가 튼튼한 법이고, 민주주의의 국부는 당연히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갖고 있어야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졸부들이 국부를 차지하고 있으면 나라의 국고는 허약해지고, 국민의 지갑은 얇아질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서민의 지갑이 비어있는데 소비가 살아날 리 없다. 우리의 경제구조는 재벌의 기업이윤이 넘쳐흘러야 국민이 얻어먹는 구조여서 재벌의 덩치가 클수록 기업이윤이 넘치기를 더 기다려야 한다. 당연히 서민의 지갑부터 채우는 것이 경제 민주주의의 기본이지만 우리나라의 國富국부는 국민도, 정부도 아닌 재벌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재벌금고가 넘쳐나지 않으면 국가경제가 막혀버린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재벌공화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건만 지금도 재벌위주 경제정책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전혀 틀리는 말은 아니지만 과거의 정책이 옳았으니 지금도 그래야 된다는 생각은 관행과 정체에 빠진 것이다. 정책은 시대와 형편에 따라 바뀌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재벌경제 체제는 경제기반과 자본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60년대 철저한 계획경제 시대의 유물이다. 지금 우리의 경제수준은 자유경쟁 경제체제로 성장하여 소득의 재분배와 국민복지를 추구할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책을 일부 보수권에서는 정치적인 포퓰리즘이나 사회주의 발상이라고 매도하고 있지만국민이 못 사는데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무엇이며, 국민이 잘 살 수 있다는데 사회주의면 어떻고, 포퓰리즘이면 어떤가? 國富국부와 局部국부가 발음이 같은 것은 우연이 아닌 성싶다. 재벌은 막대한 비자금, 정치자금으로 정부와 정치인들의 급소인 局部를 움켜쥐고 있다. 중소기업 육성이 공염불에 그치는 것도 ‘가난한 다수’인 중소기업을 상대해서는 부정한 돈과 정치자금을 거두어들이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들은 통 큰 재벌들을 통 크게 봐주고, 통 큰 떡고물을 챙기는 것이 통 큰 정치라고 생각한다. 소시민이나 중소기업들을 상대하는 것은 치사한 동전 정치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국민은 재벌들의 잔돈 취급에 고맙고 만족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부를 쌓았다면 자신의 소유로 삼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정부나 국민의 도움이 있었다면 갚아야 할 빚으로 인식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은 좌경 빨갱이의 나눠먹기식 논리가 아니라 성숙한 자본주의 기업의 기본 윤리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그런 성숙한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럽다. 사회 환원은커녕 기업을 송두리째 풋내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알고 있다. 이는 명백한 편법이요, 비리요, 도덕불감증이다. 유능한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도 주주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건만 하물며 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애송이 아들에게 불법으로 국부를 물려준다면 국민과 주주를 상대로 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업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윤리 도덕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반사회적 행위이다.
탐욕스런 재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러한 반사회적인 불공정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해 주는 국가는 재벌의 편이 분명하고, 이에 무감각한 국민은 지각없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적어도 선진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런 만행이 없다. 정부 관리들이야 그 불공정 행위 과정에서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지만 국민들이야 당달봉사이니 재벌들이 빼내간 국부를 주머니를 털어서 채워 넣어야 한다. 힘없는 국민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낙담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희한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피 같은 세금을 졸부들이- 누가 낸 세금인데 제멋대로– 이런 지각을 갖고 사는 것은 좌경이 아니라 민주시민 의식이다.
재벌들만이 졸부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한 모습이지만 정당한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불법이나 요행으로 갑자기 부자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불법이야 위법이지만 요행이야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니 탓할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졸부들은 이미 사회의 상위층에 있으니 그에 맞는 도덕 윤리의식이 요구된다. 그렇지 못하여 재벌들과 같은 짓을 한다면 역시 拙夫졸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재벌들이야 사회적인 위치에서 체면 정도는 차릴 줄 알지만 이 졸부들은 체면도 차릴 줄 모르기 때문에 더 치졸하다. 그래도 재벌들은 최소한의 세금이나 기부금은 내는 시늉을 하지만 졸부들은 그런 체면도 차릴 염치도 모른다. 그들의 치부수단이란 대개 부동산 투기이다. 한탕 투기로 성실한 노동으로는 평생 만질 수도 없는 떼돈을 벌고 나면 세상의 모든 진실, 성실, 정직, 양심은 아무 쓸모없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노동이나 땀은 인간의 의무나 권리가 아니라 딱하고 어리석은 짓이 되고 만다.
물론 모든 부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졸부들에게는 인생이란 것은 그저 행운, 요행이 있을 뿐 다른 어떤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어떤 가치도 돈으로 다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의 어떤 가치도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철저한 황금만능주의자요, 물신주의자요, 이기주의자들이다. 이들에게 도덕 윤리란 사치품이요, 국가, 민족, 이웃이란 나의 행복을 위한 하찮은 조직이요, 디딤돌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이런 반사회적, 비윤리적, 무감각적인 졸부들이 적지 않으니 이미 사회의 병폐가 된 지 오래이다. 졸부들이 그토록 좌경, 빨갱이를 증오하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그 이유는 육이오의 비극을 겪어보아서, 공산주의 이념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부당한 이기주의와 물신주의로 얻어낸 졸부와 기득권을 하찮은 것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이다. 자칭 보수들이 지켜내자는 것은 입에 발린 국가의 안보와 나라의 장래라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과 투기재산이 아니던가?‘가치 있는 것을 지켜내는 것’이 보수의 본질이건만 그들은 ‘기득권을 지켜내는 탐욕’이 보수라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졸부들이 늘어가고, 국민들도 그들이 하는 짓을 따라간다면 우리 사회는 아무리 경제가 풍족하게 되더라도 도덕 윤리가 무너져 정상적인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재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경제를 독점하기는 하지만 기업의 강력한 대외 경쟁력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국가의 재정에 이바지하고,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 노동의 가치를 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졸부들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부를 차지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본주의의 정당한 권리요, 경쟁력이라고 호언한다. 졸부들의 폐해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고, 타락한 자본주의를 만연시켜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데에 있다. 정작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좌경, 사회주의가 아니라 타락한 자본주의와 졸부근성에 젖어있는 자신들이다.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유발한 것이 타락한 자본주의였다면 우리의 주적은 빨갱이, 좌경이 아니라 노랭이 졸부근성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졸부들이 판을 치는 사회, 그들의 타락한 근성이 보편적 가치를 좀먹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바로 보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국민의 사명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부도덕한 졸부들이 보수의 탈을 쓰고 있다면 이 땅의 보수는 자칫 부도덕한 자들의 집단이 될 공산이 크다. 졸부들이 보수라는 귀면탈을 쓰고, 좌경과 귀족노조가 진보를 빙자한다면 이제는 보수, 진보 타령은 그만 두고 당장 허물어져 가는 보편적 가치관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판을 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허울 좋은 보수, 진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정의와 건전한 경제구조 구축이다.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요,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참된 진보이다. 여의도 기생충과 이 拙夫(졸부), 猝富(졸부)들이 횡행하게 내버려 두어서야 우리의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도전을 받을 것이고, 민주주의는 요원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