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재벌들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의 재벌들은 역대 정부의 절대적인 지지와 보호를 받아왔기 때문에 지금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그 지위를 자연스럽게 공인받은 거대 조직이다. 정부도, 국민도 아닌 재벌들이 나라의 國富국부를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 한국의 재벌은 나라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위력은 시대와 역사를 넘어 강력한 세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을 하수인으로 알고, 대통령은 물러나도 재벌은 세습으로 이어지고, 대통령은 감옥에 가도 끄떡없는 재벌 총수- 대한민국이 재벌공화국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정경유착이란 말로 대변되듯이 그들은 정치권력과 바짝 붙어 철두철미 공생한다. 정객들은 수출과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재벌에게 세제혜택과 각종 이권과 특혜를 몰아주고, 재벌의 부실과 손실을 보전해 준다. 그 대가로 재벌은 정객들에게 부당한 비자금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한다. 재벌은 정객들의 축재와 통치자금 공급자이다. 물론 그 비자금은 그들의 사재가 아니라 수많은 주주들에게 돌아갈 몫이다. 이러한 짬짜미 가운데에서 국민은 재벌을 떠받치면서도 정당한 기회와 이익과 인권을 그들에게 빼앗기게 된다. 국민만 그런 게 아니라 국가도 재벌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처지를 면치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없는 이유도 재벌이 이권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재벌이 국부를 독점하고 있다면 정부는 물론 국민과 근로자는 그 하수인일 수밖에 없다. 정권이 국민이나 중소기업을 무시하고 홀대하는 이유는 거기에서는 거액의 비자금과 뇌물을 기대할 수 없는 잔챙이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노동력 착취가 여전히 성행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득분배의 편중이 심각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대한민국 재벌 중에서 기업의 이익을 국민과 공유하겠다는 정상적인 기업윤리를 가진 재벌이 얼미니 될까 싶다.
세습이란 말은 민주주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중에서도 재벌 세습은 우리나라가 아니면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반역사적, 반윤리적인 적폐이다.탐욕스러운 자본주의라서 재벌 창업주가 주식회사를 사유화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더라도 그것을 대대로 세습까지 하는 것은 민주주의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횡포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이재용이 없으면 삼성과 나라가 흔들릴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차라리 이재용을 종신, 세습 대통령으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국의 정치와 경제가 재벌 총수에 의해서 좌우된다면 어차피 위험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삼성이 무너지면 국민은 굶어 죽을 것이고, 나라가 위험할 것이라고 염려한다면 우리 스스로를 자학하는 것이며, 아직도 왕정시대의 노예근성에 젖어있는 것이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총수 부재에서 ’17년 삼성전자 영업실적이 창사 이래 최고였다는 사실은 그러한 염려가 어리석었다는 것과 삼성의 저력을 입증하는 낭보이다. 이것이 어찌 이재용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제 삼성은 총수 세습이 아니더라도 굳건한 바탕을 가지고 있음이 입증되었고, 이러한 사실은 다른 재벌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 준 것이 아닐까? 설령 이번 판결로 삼성이 경영이 흔들려 국가경제가 어려움에 처한다 하더라고 그 대가로 그동안의 모순과 적폐에서 벗어나 정의사회를 이룰 수 있다면 기꺼이 감수할 가치가 있다.
일부 국민과 재벌들은 국가경쟁력을 앞세우지만 재벌중심 구조를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국가경제 기조를 튼튼히 하는 길이다. 세습재벌에서 능력본위 경영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재벌개혁이고, 주식회사의 기업정신을 살리는 길이다. 주식회사를 세습경영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풍토는 아직도 우리사회가 봉건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모처럼 내린 사법부의 용단을 기업의 건전한 발전과 사회정의와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삼성 판결이 일개 재벌에 대한 단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벌개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금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삼성은 세계적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철옹성 재벌이다. 그동안 여러 재벌들이 사법의 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삼성은 모든 위기를 교묘하게 빠져나갔던 것은 또 하나의 삼성신화이다. 그 신화가 이재용의 유죄판결로 처음으로 깨졌다. 그것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고, 재벌공화국도 난공불락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희망을 준 역사적 사건이다. 이 땅에 이제 법의 정의가 섰다는 긍지를 준 것이고, 국민도 재벌을 이길 수 있다는 기대를 준 쾌거이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해왔던 정의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어그러진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물론 양심적인 사법부를 칭찬해야 되겠지만 과거의 정부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현 정부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지금 현실을 보면 재벌들에 대한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정부의 의지가 의심된다. 개혁은 더디어지고 대통령이 재벌들을 찾아다니기에 바쁘다. 그들을 무조건 감옥에 가두라는 말이 아니라 재벌들의 비리를 밝히고, 재발방지 조치를 확실히 하라는 말이다. 죄에 대한 판결은 엄정히 하되 '정무적 판단'이라는 좋은 구실이 있잖은가? 죄에 대한 물질적 보상을 요구한다면 유전무죄라는 질책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도 특별사면하는데 재벌공화국에서 재벌 총수 한 사람 사면하지 못할까? 세습은 재벌의 불공정을 방치하고,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불법의 상속과 세금포탈은 국가 재정과 국민의 가계를 어렵게 한다. 설익은 세습 기업주의 경영실패로 기업이 붕괴된다면 그 피해는 나라와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재벌이 차지하고 있었던 재산은 원래 그들의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것이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친일파가 매국의 대가로 차지한 재산는 원래 누구 것이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재벌의 개혁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재벌은 일개 정권을 능가할 정도여서 잡초 뽑으려다 곡식 뿌리가 먼저 뽑힐 정도로 뿌리가 견고하다. 개혁을 하려면 정부가 강력한 의지와 추진력, 고도의 책략이 필요한데 보수진영의 핵심인 재벌을 순진하고, 서투른 진보정권의 힘으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근년의 세계경제 형편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고, 이에 민감한 우리 경제 체질로 해서 우리의 형편은 더욱 어렵다. 당장 일자리를 만드는 데에는 재벌들의 힘이 필요하고, 세계경제가 어려운데 재벌들을 위축시키기 조심스럽고, 미중 무역충돌과 일본의 무역제재까지 더해 재벌 개혁이 난관에 부딪쳐 있다.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의 재벌개혁 정책이 멈춰져서는 안 된다. 이른바 개혁은 개혁대로, 경제 활성화는 그대로 추진되어야 한다. 정부가 확고한 의지와 추진력으로 밀고 나간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삼성의 경우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재벌 세습자에 대한 처결에 융통성을 갖더라도 그 비리, 탈법을 그냥 눈감아서는 안 된다. 그럴 수 있어야 나라의 기강과 정의를 세울 수 있다.
검찰개혁과 함께 재벌개혁은 건국 이래의 난제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사회윤리 정의는 바로 세울 수 없게 된다. 정부가 아무리 비상한 노력으로 재벌개혁을 하고자 해도 국민의 각성과 적극적인 지지가 없으면 막강한 재벌의 힘과 기득권과 재벌 세력들의 횡포를 막을 수 없다. 이러한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장담할 수 없다. 어둡다. 과거의 전근대적인 타성에서 벗어나서 시대의 요청에 부합하는 성숙한 민주 시민의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