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자는 水에 去의 뜻이 모인 글자로서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대자연의 원리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法이란 바르고 어김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엄정하고 평등한 刑法형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법치주의요, 인간의 다양성을 법의 일률성으로 통제하자는 획일주의이다. 제자백가 중의 법가가 그런 사상이다. 그러나 물은 흐르는 것이 본성이지만 물이 낙차가 없을 때는 흐름을 멈출 때도 있는데 그것이 정체이고, 물이 멈추다 보면 거꾸로 흐를 때도 있는데 그것이 역류이다. 그것이 물의 원리는 아니지만 자연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면 역시 法일 수도 있다. 자연의 규칙도 그러한데 인간의 법은 그 유동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법치주의가 능사가 아닌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오히려 법치주의가 인간 세계를 더 비인간적으로 만들었고, 법에 의존했던 국가와 집단이 더 단명하였다.
‘법대로 하자’는 말이 옳은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사회는 고등사고체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불변의 법은 없고, 예외 없는 법도 없다’. 법의 형성과정을 보면, 법은 원래 약자를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강자와 통치자를 위한 통치규정이라서 국민들에게는 처음부터 가혹한 멍에였다. 그러므로 힘없는 국민이 법에 의지하여 보호받으려는 기대는 애초부터 큰 오해였다.그래서 법이 엄연히 존재하건만 그마저도 위법, 불법, 탈법천지가 되기 십상이다. 無法은 법이 없어도 되지만 위법, 불법, 탈법은 있는 법도 지키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탈법은 법을 알고 이를 악용하는 지능범이라 죄가 가장 무겁다. 그리고 탈법은 법을 잘 아는 법의 전문가가 저지르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해서 法遠拳近법원권근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법은 멀고 권력은 가까운 法遠權近법원권근의 시대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세에 눌려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법을 운용하는 우리의 사법부는 법보다는 권력에 집착하여 스스로 청와대, 집권당의 시녀를 자청해 왔다. 그 중에서도 검사들이 가장 권력 지향적이다. 그들은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독점하고 법의 칼날을 제일 먼저 들이대는 집행자이다. 마법의 칼을 다듬어 그 살상력을 높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 검사의 생리요, 본분이다. 수사도 받기 전에 피의자가 지레 겁을 먹고 자살하는 일이 적지 않다. 오죽하면 법률가였던 대통령까지 그랬을까? 설령 범법자가 아니더라도 주눅이 들 정도이니 당사자에게는 저승사자나 마귀처럼 보일 것이다. 법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법이 없는 검사가 무서워서이다. 무림고수와 같은 그 檢事검사의 劍法검법에 대해서 변호사가 허겁지겁 방패를 마련하고, 판사는 검사의 눈치를 보아가며 판결을 한다. 檢事와 劍士가 우리 음으로는 같은 ‘검사’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무서운 마법의 칼을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과 출세를 위해서 낭인검객처럼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정권을 쥐고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검사 중에서도 가장 센 公安검사 출신들이 당과 정부와 청와대 요직을 점령하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국가의 기강확립이 아니라 권력과 부귀이고, 법은 그 수단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영달을 위해서 法을 모독하고 어지럽혔다. 이들이 횡행하는 한 우리에게 법에 의한 민주주의, 정의사회, 선진국이란 용어는 요원한 이야기이다.
요즈음 검찰은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다른 행보를 하고 있어 주목된다. 검찰은 그 막강한 힘을 특검을 통하여 박근혜와 최순실, 이 명박의 국정문란과 비리를 파헤쳐 오랜만에 명예와 본분을 세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검찰로서의 자발적 각성이라기보다는 새 정부의 지원과 함께 검찰 특유의 근성과 권력의지에 의한 생존전략의 성과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관행으로 보아 검찰은 늘 정치적인 권세와 같이 움직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검찰은 과거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과는 달리 여당과 정부에 당당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 기세가 하도 등등하여 포청천을 이 땅에서 보는 것 같아 통쾌하기까지 하다. 진작 이랬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갑작스러운 변화는 또 다른 생각도 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진영논리라는 것이 회자되고 있다. 우리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일시적인 정권이 아니라 양쪽으로 나누어진 진영이라는 것이다. 정부를 관장하는 것은 정권이지만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도세력은 진영이다. 정부는 대통령의 임기에 의해 수명이 결정되지만 진영은 대통령을 생산하는 거대세력이다. 대통령은 수없이 바뀌어왔지만 진영의 핵심에 서 있던 검찰의 검법은 줄기차게 전수되어 왔다는 사실에서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 틀림 없다. 검찰개혁을 내걸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 죽음에 이르기까지 함으로써 검찰이 정권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진영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이 사태를 절감한 현 정부에서는 출발부터 검찰개혁을 지상의 과제로 삼았다. 현 정부에서 표방한 경찰역할 증대, 검찰기능 축소, 공수처 신설 등은 진영의 핵심을 누려왔던 검찰공화국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대통령까지 단칼에 보냈던 검찰이 또 다른 대통령이 자신들의 목을 조여오는데 전가의 검무를 멈출 리 없다. 그들은 엄정한 법 집행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키려는 것은 헌법과 국가의 질서보다는 검찰공화국의 위엄일 것이다. 지나치게 악의적인 해석이라고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검찰 행적이 이들을 합리적으로 의심하게 한다. 다만 이전의 검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살아있는 권력에 굴종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도전하는 용기와 뱃장이다. 현 정부의 검찰개혁에 지면 어차피 검찰공화국은 끝장이라는 강박관념이 불퇴전의 용기를 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투지와 용기는 진영 잔류에 대한 절실한 욕구에서 나왔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 야당과 여론의 일각에서는 그들의 용기와 뱃장에 든든한 찬사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정권이야 5년이면 그만이고, 진영은 영원하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더구나 정권이라는 것이야 우습게 주물러 왔었고, 그 진영이라는 것도 그때그때 줄을 잘 서기만 하면 검찰공화국은 굳건한 아성을 지켜낼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조 법무 파동’이 개혁의 위기를 벗어날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지만 정부의 검찰개혁은 난관에 부딪쳐 있다. 검찰개혁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만사를 제쳐놓더라도 집권 초기에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그때는 검찰에 박 정권의 적폐청산을 맡겨두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손을 댈 수 없었다. 전 정부를 처리할 말미를 주다 보니 검찰개혁이 늦어지게 되었고, 날이 선 칼로 이번에는 검찰을 개혁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영악한 검객에게 할복자살을 하라고 한 셈이니 애초부터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실책이었다. 낭인검객들에게는 대통령도 한 때를 거쳐가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어떤 정객도 법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털면 먼지 안 나는 놈 없을 것이고, 통치자인 대통령도 조작된 논두렁 시계 하나로 보낼 수 있었다. 장사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뒤에는 든든한 우군 진영이 뒷배를 보장해 주고 있지 않은가?
지금 검찰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지만 그동안의 검찰의 행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꼬리 3년 묵어도 황모 못 된다’라는 속담도 있지만 개꼬리에 홀려 황모를 버리는 어리석은 국민은 되지 말아야 한다. 검찰총장이 아무리 대쪽검사요, 헌법수호자를 자처하더라도 검사들은 결국 뒤에 숨긴 개꼬리는 감출 수 없다.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스스로 꼬리를 자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의 전횡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아무리 법무부장관의 결격사유가 많더라도 검찰개혁을 멈출 수는 없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검찰개혁을 이루어 내는 것이 핵심이지, 그 방법, 과정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정국은 본질은 젖혀두고 불확실한 부분에만 매몰되어 있고, 일부 여론과 국민은 이에 현혹되고 있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흘려보내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믿고 흥분하여 도둑과 피해자를 혼동하고 있다. 검찰은 이렇게 '아니면 말고' 식의 혼빼기 작전으로 너끈이 자신들의 목을 조이려는 장관을 고사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판단은 옳을 수 있지만 결격사유가 많은 조 장관만이 개혁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이야 조 장관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고 믿고 있겠지만 개혁이란 본래 약점이 많은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고, 개인의 인정에 얽매이지 않는 독종이 아니어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오판은 자신들의 정권을 위험하게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검찰개혁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물거품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은 내우외환에 휩싸인 나라의 운명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진영논리에서 비롯된 검찰개혁 파동에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야당에서는 마치 그것으로 열세를 만회하고 재집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이 터지게 국회에서 확인하고 있잖은가? 온 나라를 뒤집을 듯한 이 파동도 잘 생각해 보면 국정의 일부분일 뿐이다. 조법무가 검찰개혁의 전부가 아니며, 검찰개혁이 국정의 전부가 아니다. 비록 이번에 정부의 무능으로 검찰개혁은 실패하더라도 쉽게 정부를 불신임해서는 안 될 것이고, 비록 검찰의 활약이 뛰어나더라도 진영에 숨어있는 검찰의 본색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 검찰이 올바른 헌법정신을 수행한다면 더 좋을 것이 없지만 기존의 검찰이 정국을 틀어쥐고, 국회마저 점령하고, 정권마저 위협한다면 민주주의, 인권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을 편향된 시각이라고 비판할 것이 두렵지만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과거 군부, 국정원, 검찰이 저질렀던 암흑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또 다시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漢詩 대신에 읽는 고사성어.
作法自弊작법자폐
스스로 만든 법에 스스로 걸려들다. 제가 판 함정에 제가 빠지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다. 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는 스스로도 법망을 빠져나갈 수 없는 법이다. 秦진나라 商鞅상앙은 法家의 이상대로 엄격하고 가혹한 법률을 제정하여 강력한 법치국가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秦진을 戰國(전국)의 霸者패자로 만드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失勢실세하여 쫓기는 신세가 되어 도망가다가 자신이 만든 엄격한 법률 때문에 체포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남에게 가혹하게 하면 나도 그렇게 당하는 법이다.
與虎謀皮여호모피
‘호랑이에게 네 가죽을 어떻게 벗기면 좋으냐’고 묻는다면 호랑이가 뭐라고 할까? 그 말에 순순히 대답해 줄 어리석은 호랑이는 없다. 말도 붙여보기 전에 호랑이에게 물려죽을 것이다. 문대통령은 전 대통령들을 처리한 검찰총장을 내편으로 믿고 검찰개혁을 맡기려고 했지만 호랑이는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맹수이다. 그 호랑이는 분명히 말했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이 말은 충견이 아닌 맹수가 하는 말이다. 군자는 맹수를 기르지 않는 법이다.
鷄鳴起舞계명기무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검무를 추다. 晋代에 祖狄조적과 劉琨유곤이라는 열혈애국지사가 있었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닭이 울면 일어나 무예를 연마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舞는 검무. 우리나라의 위대한 檢事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검무 추는 劍士와 같은 ‘검사’이니 검무도 잘 출 수 있지 않을까? 법률의 기강은 아랑곳없이 검사들이 무시무시한 ‘검은 춤’이나 추고 있으면 국민들이 위험하다. 검사들이 추는 검은 춤을 舞文弄法무문농법춤이라고 한다. 그것은 법률, 법조문을 마음대로 해석 적용해서 죄를 뒤집어 씌우거나 무혐의, 기소유예로 면죄부를 주어 법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막춤이다. 검사실에서 저 혼자 춘다면 상관할 바 아니지만, 신성한 법정에서 벌이는 막춤이기에 법의 기강은 무너지고, 억울하게 죽고 다치는 국민이 많다. 옛날 참수를 집행하는 칼잡이를 휘광이라고 했다. 사형집행할 때에는 사람의 목을 쳐내기가 괴로워서 막걸리를 취하도록 마셨다는데, 지금의 검사들은 폭탄주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이들은 하는 일도 비슷하지만 휘광이가 마시는 막걸리와 검사가 마시는 폭탄주는 제 돈으로는 마시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