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의 나라

부동산 투기는 나라를 병들게 한다.

by 김성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투기 없는 나라는 없겠지만 우리나라처럼 투기가 성행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투기 중에서도 가장 손쉽게 돈을 버는 수단이 땅 투기이다. 아무리 평생을 피땀 흘려 일을 한들 영악한 복부인 하나 따라가질 못한다. 오죽하면 기업들도 생산시설 투자보다는 땅 투기를 먼저 할까. 땅 투기는 터무니없이 땅값을 올려놓아 철면피 졸부들을 낳았지만 돈 없는 서민들은 이 대지에 발 디딜 한 치의 땅도 없게 만들었으니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비극이 그대로 재현되는 현장이다.


자본을 정당하게 운용했을 때 투자라고 하고, 우리는 거기까지 자본주의의 원리로 존중한다. 그러나 투기는 정당한 자본의 운용 원리를 벗어나 요행이나 우연으로 정당한 노동, 노력과는 상관없는 이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더구나 땅 투기는 땅에 돈을 묻어두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유통을 저해하는 반경제행위여서 더 질이 나쁘다. 요행이나 우연이 들어맞기를 바라는 것을 사행심이라고 하는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투기나 도박을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보지 않아 일정한 제재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투기를 정당화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고, 이 부조리를 막을 적절한 장치가 마땅치 않아서 고민이다. 걸핏하면 시장경제 원리를 내세워 투기를 정당화하거나 애써 마련한 투기방지 대책을 사회주의 발상으로 몰아붙이기 십상이다. 자유경쟁이나 시장주의 이론으로 투기를 정당화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시비가 어쨌든 투기와 도박이 성행하는 사회는 건전하지 못한 위험한 사회이다. 경제적인 위험이야 단기간의 노력으로도 극복이 가능하지만 윤리적인 타락은 돌이키기 어렵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조물주는 하늘 다음으로 땅을 만들어서 사람이 생존하는 바탕으로 삼았다. 이 땅을 모든 사람이 공유하도록 한 것이 조물주의 뜻이었다. 그러한 땅을 일개인이 독점하여 농단하는 것은 하늘의 뜻을 어기는 반윤리적인 행위이다. 농단(壟斷)이란 말도 땅을 독점한다는 뜻에서 유래했으니 중국의 땅 투기 역사도 오래인 셈이다. 토지 점유를 자본주의의 당연한 권리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토지 점유를 방만하게 허용하는 자본주의 국가도 드물 것이다. 심지어는 친일 매국노들이 일제로부터 매국의 대가로 하사 받은 토지를 지금까지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나라에서 흉악한 매국노의 장물을 합법적으로 보장해 주고 있는 꼴이다.


문제는 투기와 도박에 성공한 사람은 노동과 성실의 가치를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투기와 도박에서 ‘얻은 것은 재산과 부이지만 잃은 것은 그보다 더 소중한 인간성과 가치관’이다. 땅 투기가 성행하는 사회에서는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보람은커녕 상대적인 허탈감에 빠져 삶의 의욕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결국 투기꾼도, 성실한 사람도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질 수 없으니 그 사회는 위험이 코앞에 닥친 사회이다. 성실 정직하지 못한 인간이 큰소리치고, 행세하는 사회는 경제가 어려운 사회보다 더 위험하다. 경제 부진은 노력으로 극복이 되지만 무너진 정신 가치는 당대의 노력으로 회복이 어렵다. 투기는 건전한 자본주의마저 병들게 하여 타락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주범이다. 타락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공정한 사회,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우선 땅 투기부터 근절해야 한다. 공정한 사회, 정의사회는 자본주의, 자유경쟁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인 가치이다. 투기와 도박을 자본주의 특권이요, 시장경제의 원리라고 강변하지 말고, 망국의 병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국력을 모아 근절해야 한다.


아파트 투기는 땅 투기와 함께 부동산 투기의 쌍두마차이다. 아파트는 조물주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공유할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땅과 닮은 공간이다. 그런데 이것도 땅과 같이 투기꾼이 몰려들어 아파트 숲 속에서도 집이 없어 세 들어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 가진 자가 전국을 뒤져 매점매석하여 수백 채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젖먹이도 아파트 열쇠를 입에 물고 잔다고 하니 서민들은 평생 일해도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집 없는 서민들이 불우한 이웃이라면 아파트 투기자들은 도덕적, 윤리적 불구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딱하고 불쌍하게 보일 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노력과 성실을 바탕으로 사회의 부를 창출하였지만 투기꾼들은 약삭빠르게 그 부를 빼앗아 독점한다. 이러한 자들의 위세가 클수록 그 사회는 위험한 사회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계층 간의 분열과 갈등의 요인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 보수, 진보 탈놀음도 알고 보면 기득권 부자들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주범이다. 인류 역사의 근간이 되는 보수 이론을 기껏 기득권을 지켜내는 구실로 삼고, 사회 개혁의 바탕이 되는 진보이론을 극단적 투쟁의 방패로 삼고 있으니 이들에게 보수와 진보란 핑계요, 허구의 가면에 불과하다. 강남 부자들은 강북으로 가서 태극기를 흔들고, 강북 서민들은 강남으로 가서 개혁을 부르짖는 희한한 일도 이런 사회구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투기 다음으로 위험한 것이 도박이다. 도박은 부동산 투기에 비해서 그 행위의 영역이나 규모가 비교적 적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그 파장은 덜한 편이다.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일이 적지 않지만 부동산 투기처럼 사회와 국가를 흔들 정도는 아니다. 도박은 인간의 본능과 같은 사행심리가 발동하는 것으로 인류와 공존해 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양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박이 건전한 생활자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니 합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하고, 용인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국가에서 앞장서서 도박행위를 부추기고 있다. 경마장, 카지노, 로토복권은 정부가 아예 공식적으로 허가한 도박이다. 국민의 건전한 오락, 스포츠 취미활동, 여가선용, 복지사업 등 갖가지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러한 효과가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고, 국가가 마련한 합법적인 도박판에서 패가망신하는 국민은 많다. 불법 도박이라 하여 단속하지만 정부에서 인정하는 합법 도박의 규모에 비하면 오히려 작을 것이다. 도박은 분명히 비윤리, 비도덕적인 악습 악행으로 이를 단속해야 할 정부에서 합법적으로 보장한다는 것은 이유야 어쨌든 비도덕적인 행위이다. 더구나 도박인 경마를 스포츠처럼 대우하는 것은 대놓고 국민을 도박판으로 끌어들이는 짓이다. 카지노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고서는 내국인의 사행심을 조장하여 개인의 경제파탄과 폐인을 양산하는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최근 가상화폐라는 신종 투기가 성행하고 있다. 그것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젊은이, 학생들 사이에게 성행하고 있다니 국가적 위기로 인식해야 한다. 투기도, 도박도 자본주의의 경제적 행위라고 정당화한다면 그 사회는 잘못된 사회이다. ‘투기에서 돈을 땄다면 인간을 잃은 것이고, 잃었다면 재산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투기해서 돈을 번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스러워하고 부러워하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다. 이러한 기득권자들이 이 사회의 상위계층과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이 사회가 정상일 리 없다. 이런 도덕적 해체가 신세대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요, 나라의 위기가 틀림없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정부에서 개선해 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기득권의 저항과 혼란이 거세어 지지부진이다. 수도권의 집값 하나 다잡기도 어려운 판이니 우리의 투기 망국병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 수 있다. 투기도 도박도, 가상화폐도 자본주의 경제의 한 수단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걸 쉽게 용인한다면 타락한 자본주의를 면하기 어렵다.


걸핏하면 사회주의를 좌경이라 매도하기에 앞서 타락한 자본주의를 먼저 수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길이다. 서구에서는 자본주의 모순을 수정한 것이 언제인데 우리는 아직도 모순투성이의 원색 자본주의를 틀켜쥐고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가? 투기와 도박은 건전한 국민정신을 망치는 망국의 병이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보수건 진보건 우리의 장래를 위험하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야말로 투기와 전쟁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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