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거리의 나라

허깨비 패거리들에게 속지 말자.

by 김성수

인간이 모여 이루는 사회에서 집단을 이루려는 의지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에도 이미 집단의식이 배어있다. 그런데 인간이 무리 지어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자들을 우리는 패거리라고 한다. ‘패’는 한자 ‘派(파)’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派자의 뜻은 ‘큰 줄기 본류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물줄기’이고, ‘파’의 본음을 ‘패’로 우리말처럼 바꾸어 발음한 것은 언중들의 부정적 의식이 작용한 음의 변화이다. 옛날에는 왈패, 지금은 깡패, 패싸움이라고 하는 걸 보면 ‘패’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거리’라는 접사를 붙여 ‘패거리’라고 한 것에도 역시 ‘너저분하고 잡다한 무리들’이라는 뜻이 숨어있다. 결국 패거리란 ‘정당하지 못한 무리’이다. 이를 다시 한자로 돌리면 派黨이고, 파당을 뒤집어 읽으면 당파이고, 당파끼리 벌인 싸움이 유명한 조선의 당파싸움이다.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의 전통이 있어서인지 우리 사회에는 패거리 문화가 매우 성행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 정당정치의 산물인 정파와 조폭이 같이 패거리라고 불리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조폭이야 원래 사악한 범죄 집단이지만 政派는 ‘올바른 정치이념을 가진 무리’이기 때문이다. 政治란 본래 ‘올바른 통치’이건만 거꾸로 ‘정당치 못한 짓’이 되어버렸고, 끝내는 조폭과 같은 ‘패거리’가 다를 바 없게 되어버렸다. 오늘날의 정당 패거리들을 올바른 무리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을 만큼 저질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 저질들에게 나라의 살림을 통째로 맡기고 태연스럽게 투표하면서 민주시민이라고 자처하고 있으니 민주시민답지 않은 일이다.


패거리는 사회 전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존의 조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약자의 심리가 작용한 결과이다. 그리고 그 약자의 패거리를 극복하고자 다시 패거리를 꾸리게 되어 있다. 패거리는 일종의 자기보호 수단이므로 탓할 일은 아니지만 일단 패거리에 속하면 사회성을 잃고 맹목적 인간이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설령 내가 원치 않는 일이라도 패거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니 정상적인 민주시민이 될 수 없다. 당연히 스스로 민주시민이라고 자부하고 있겠지만 나는 정말 민주시민으로서 패거리에서 자유로운가를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정치를 자처하는 '정당'이란 가장 큰 패거리이고, 정당이 집권을 하니 사실 패거리가 나라를 움직이는 것이다. 특정 이념과 정치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야 정당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특정지역 패거리가 정권을 독점하는 일이 잦은 것이 문제이다. 특정지역에서 정권을 쥐고 있으니 특정지역 출신들이 특권을 쥐기 마련이고, 나머지 출신들은 소외되기 십상이다. 특권과 소외의식이 심각하게 대립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패거리는 지역감정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고, 이로 인하여 좁은 땅덩어리는 더욱 좁아지고, 국력은 더욱 분산되고 있다.


패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조직의 응집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워낙 집단이 광대하여 단순비교는 어렵더라도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의 패거리 현상은 유별나다. 일본의 패거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처럼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짐작은 일본인 특유의 응집력, 집단문화에서 할 수 있다. 저들이 조선의 당쟁사를 헤집어 낸 것을 식민지사관의 음모로 규정하기도 하지만 패거리 다툼으로 인하여 임진난을 자초하고, 필경은 나라를 망하게 만든 치욕의 역사는 저들의 날조 역사가 아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도 역사에 대한 반성도 없이 옛날보다 더 심각한 패거리 다툼을 벌이는 대한민국은 선조들의 당파싸움을 무색하게 한다. 일본의 절반도 안 되는 땅과 인구를 가지고 남북, 좌우, 동서도 모자라 보수진보, 여당야당, 노사(勞使), 빈부, 도농(都農), 노소, 검경(檢警), 남녀, 세대, 무슨 향우회, 우리가 남이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패거리로 나누어져 싸우고 있으니 힘을 쓸 수 있겠는가? 요즈음은 진영논리가 정당화되기도 하고, 서초동과 광화문에서는 수백 만의 무리들이 길을 막고, 서로가 민심이라고 맞서고 있다. 민중의 정당한 의사표현이라고 합리화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형편을 생각할 때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민중은 민주주의의 원리이지만 광장에 모인 민중의 심리라는 것은 군중심리로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일종의 패거리 심리이고,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이기 쉽다. 이러한 패거리 문화로 우리의 역사가 긍정적으로 발전할 리 없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입증했다. 좁은 한반도가 똘똘 뭉쳐도 버거운 형편에 이렇게 패거리 싸움을 벌여서야 나라가 성할 리 없다.


옛날에는 건전한 모임을 朋(붕)이라 했고, 그렇지 못한 모임을 黨(당)이라 했고, 못된 짓을 하는 모임을 派黨(파당)이라 했으니 오늘날의 우리 政黨(정당)들은 어디에 속할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입으로는 국론 통일을 외치면서도 늘 국민을 편 가르기하여 국민의 힘을 약화시킬 궁리나 했던 것이 과거 우리의 통치술이었다. 끊임없이 세대, 지역, 계층 간의 갈등을 부채질해서 비판세력을 무력화시켰다. 국민이 단결하면 힘이 세어지고, 그렇게 되면 쉽게 다루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독재 전제정치의 우민통치술의 원리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서는 저항하는 한쪽을 늘 불순분자, 국론분열자라고 몰아세우니 국민의 절반을 내팽개침으로써 정권유지를 하자는 교활하고 가증스러운 짓이었다. 국민의 수준을 올려 나라 수준을 높일 생각이 아니라 수준을 낮춰 부려먹기 편리하게 하자는 愚民우민통치술이다. 통치자가 떳떳하고 자신 있다면 구태여 편 가르기를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걸핏하면 국론통일을 내세우지만 정당한 정권만이 국론통일을 이룰 수 있다.편가르기를 좋아하는 정권은 능력이 없거나 정당치 못하다는 증거이다. 국론분열은 국민의 책임이 아니라 통치자의 책임이 분명한데도 상습적으로 야당과 비판세력에 그 책임을 돌렸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패거리는 이른바 보수와 진보이다. 서로가 자칭 보수, 진보를 내세우면서 나라를 뒤흔들고 있지만 알고 보면 사이비 보수, 진보라서 허깨비 패거리들이다. 만약에 국민들이 이들을 따라서 줄을 선다면 허깨비들에게 속아 나라를 위험하게 할 것이다. 설령 정당한 보수와 진보를 인정하더라도 보수라고 해서 능사가 아닐 것이요, 진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장래를 위해서는 구시대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진보세력과 외교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보수가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보수만이 옳고, 진보는 그르다는 식의 패거리 사고가 옳지 않다는 말이다. 나아가서 현대 정치사는 보수정권이 주도하였으니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수만이 애국이고, 스스로 보수를 자임하고 있으니 이 땅의 보수는 염치가 모자라는 사람들이다. 보수는 지켜야 할 전통적 가치인 '민족'을 포기하고 있고, 진보는 과거에 얽매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어떠한 사상, 이념, 가치관도 인류 행복 증진이나 역사발전이라는 대의명제를 벗어날 수 없다.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대척관계가 아니라 순환관계, 상승관계라야 옳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요구되는 공존, 상승적 역사의 순환이어야 한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경쟁, 승부의 관계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절충과 상생의 관계라야 한다. 보수와 진보는 끊임없이 相生하는 正, 反, 合이라는 변증법의 양대 축이다. 우리가 국기로 모시고 있는 태극의 원리가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보수정권과 진보정권도 태극의 원리와 같아서 서로 절충 타협하여 일정한 주기로 순환적으로 교체되게 되어있고, 그로 인해서 역사는 상승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판에서는 태극기를 길바닥에 천덕꾸러기로 내몰고서는 감히 애국을 부르짖고 있으니 엄중한 국기모독이 아닐 수 없다. 보수는 타락한 자본주의에 빠져있고, 진보는 종북 좌경 사회주의라고 서로가 극단적으로 몰아부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고 옳은 것만도 아니고, 사회주의라고 나쁜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질을 떠나서 패거리를 지어 정권을 탈취하는 수단으로만 이를 악용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권, 권력을 위해서서는 나라의 발전, 정의, 민생, 민족 등은 안중에도 없다. 국민들은 더 이상 치졸한 허깨비 패거리 놀음에 놀아나지 말고, 눈을 부릅뜨고 저들을 엄중히 감시해야 한다. 그래야 저들의 전횡을 막고, 민주시민의 권위를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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