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사회를 위하여

민주주의는 정의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다.

by 김성수

우리는 쉽게 민주주의, 민주사회란 말을 하지만 정작 말처럼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란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국민이 다 주인이 된다면 주인이 못 되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말대로 모든 국민이 다 주인이 되더라도 객이 없는 주인이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란 애초부터 이상의 세계일 뿐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산다는 공산주의와 다를 바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 정권도 나라 이름만은 ‘무슨무슨 민주공화국’이라고 천연덕스럽게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무슨 강아지 이름처럼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고 있다. 그것들이 어차피 실상이 아닌 바에야 우리 사회처럼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쁘고, 민주주의는 언제나 좋다는 생각도 옳은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실제로는 존재하기 어려운 것을 현대사가 증명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극단적인 양도(兩刀)논리를 강요하고 있으니 우격다짐에 가깝다.


해방 전후에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여 편가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좌익이라 해서 공산주의로 몰고, 우익이라고 해서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6.25의 트라우마를 이용하여 벌이는 빨갱이 놀음에 지금도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하여 타락한 자본주의가 정당한 민주주의로 둔갑해서 정의사회 추구를 매도한다든지, 독재적 공산주의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왕정시대의 관행에 젖어있던 우리로서는 아직 서구의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구호도 있었지만 민주주의를 내세운 절대권력에 시달려야 했었고, 지금도 민주주의를 빙자한 천박한 자본주의에 빠져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자처하고 있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서구와 같은 성숙한 민주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시행착오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수백 년의 피와 시련을 거친 서구선진국의 민주주의와 수십 년의 경험밖에 안 되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이다. 위정자건 국민이건 민주사회를 이루는 데에 아직 미숙한 점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4.19, 5,18, 6.29, 촛불혁명 등의 값비싼 시민의식이 있었기에 이 정도의 민주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던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한 민주, 민권운동을 통하여 우리의 민주주의는 성장할 수 있었으며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설익은 민주주의로는 안정되고 수준 있는 시민사회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설익은 민주사회보다는 ‘정의사회’라는 구호가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정의사회란 정의로운 시민사회이다. 正義를 글자대로 풀이하면 ‘바르고 옳다’이다. 그리고 바르고 옳은 기준은 원래 개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었다. ‘인간’이란 말 자체가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말이다. 人間이란 글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유지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民主라는 말은 君主라는 말보다 훨씬 후대에 생긴 말이다. 민주사회가 개인적인 입장을 중시한다면 정의사회는 사회적인 의식과 이익을 중시한다는 데에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사회 추구는 개인적인 이익과 행복이 침해를 당할 우려가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왕권주의 문화였기 때문에 민주사회보다는 정의사회를 추구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근대에 서구의 민주주의가 급격하게 들어옴에 따라 정의보다는 자유가 강조되어 지금은 개인주의, 이기주의, 자본주의가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사회의 정의’가 ‘개인의 자유’에 밀려난 것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도취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막연한 이념적 저항감도 한몫했다. 우리는 지금도 극단적인 양도논리에 빠져 있다. 그러나 정의와 자유는 서로 다른 동전의 양면 같아서 공존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개인의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정의는 닳아 없어져버렸다. 동전의 한쪽이 닳아 없어지면 화폐의 가치가 없듯이 사회의 정의가 없다면 개인의 자유도 유지될 수 없다. 개인의 행복이 곧 사회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일 경우가 더 많다.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이 되는 일보다는 너의 불행이 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적어도 옳고 그름이 객관적으로 구분되어야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옳음’이란 사회의 발전과 다수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특권층, 금수저, 부익부빈익빈은 ‘옳음’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해방 후 민주주의를 자신하는 정부수립 이래 우리 사회에서 언제 정의가 제대로 구현된 일이 있었는지 자신할 수가 없다. 때로는 물질적, 경제적 발전이 있기도 했지만 과연 우리 사회는 행복하고 신뢰할 수 있었는가? 행복은 소수의 특권층과 기득권들이 독점하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의 사회구조는 모든 국민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점들이 오히려 점점 커져가고 있고, 그 의문들이 해소될 조짐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이다. 민주사회를 이상세계로 삼는 것은 좋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를 민주사회로 자처하는 것은 착각이다. 경제부진, 국가안보가 외면적 위기라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구조의 모순은 내면적 위기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외면에 치우쳐 그보다 더 중요한 내면의 위기에 무감각해 있지 않은가 염려된다.


이상에 가까운 민주주의는 그만두고서라도 지금의 우리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하는데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마땅히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데 온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정의를 저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우선 공정한 사회구조가 아니고서는 정의사회는 기대할 수 없다. 자본주의, 개인의 자유, 무한경쟁, 경제성장, 국가안보 등의 명분 아래 우리 사회는 불공정이 만연되어 있다. 그 밖에도 일일이 지적할 수 없지만 정치인들의 부정, 부패, 비리, 갑질, 특권주의를 없애지 않고는 정의사회가 될 수 없다. 오로지 기업주의 이익 독점에만 골몰하는 거대재벌의 횡포를 놓아두고서는 정의사회가 될 수 없다. 나라와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진 주식회사를 세습하는 재벌의 행태를 당연시하는 사회풍토에서는 정의경제를 실현할 수 없다. 국가기강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에만 탐닉하는 권력기관, 법조인들이 횡행하는 한 우리에게 정의사회는 멀다. 사회를 깨우치고 이끌어야 할 언론들이 권력에 야합하여 국론과 민심을 오도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 정의는 발붙일 수 없다. 정체불명의 보수, 진보가 그럴듯한 명분을 들고 늘 국민을 속이려고 한다면 정의사회는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감시하고 선택해야 할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정의사회는 요원하다.


우리는 흔히 지도층에게 국정의 책임을 묻고, 자주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들의 행태는 국민들의 수준을 보아가며 벌이는 정치놀음이다. 민주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받아들인 결과로 우리는 의무는 잊고 권리만 주장하며, 개인의 행복보다 우선되어야 할 사회의 행복을 망각하고 있다. 사회란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행복이 모이면 사회의 행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럴듯한 이상일 뿐이다. 실제로는 개인의 이익이 있으면 사회의 이익은 제한이 따르고, 사회의 행복은 개인의 손해를 바탕으로 마련된 것이기 쉽다. ‘나부터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그 사랑이 정신적 사랑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만약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었다면 이기주의를 면치 못한다. 경제적으로 나아진 우리 사회가 어렵게 살았던 과거에 비해서 행복한 사회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신장된 지금의 사회가 그렇지 못했던 과거의 사회보다 행복한가? 우수한 교육적 환경에서 자라난 신세대는 열악한 조건에서 자란 구세대에 비해서 더 유능하고 행복한가? 말로는 민주주의가 날로 발전해왔다고 하면서 불행한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면 민주주의는 과연 좋은 것인가? 아니면 우리한테는 민주주의란 맞지 않는 옷인가?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누릴 수준이 못되는가?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국회, 지방의회에 득실거리는 기생충만 없더라도 우리의 행복은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무모한 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행복증진을 위해서는 설익은 민주주의를 팔기보다는 정의사회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어려움에 처하고, 나라가 시련을 겪는 이유는 정의가 없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가 살아나고, 핵무장을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정의가 없는 사회는 허우대만 멀쩡한 중환자와 다름이 없다. 걸핏하면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부정, 비리, 불공정, 특권, 독점, 소득불균형, 신분세습 등 반민주적인 풍조가 횡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익, 공정, 사회윤리, 복지사회, 소득성장, 소득재분배― 이런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지 못하거나 이상하게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보장하는 公적인 일들을 공산주의, 사회주의, 빨갱이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특권층, 기득권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다수의 서민층들이 짬도 모르고 그들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그들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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