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은 공정의 무지개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은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면 신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니 인간은 애초부터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는 없는 운명이다. 창조설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人間이란 말 자체에 자유라는 의미는 별로 없다. 인간이란 字義자의를 풀어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고,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려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므로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自由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면 인간사회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과 사회는 상극적인 면이 많다.
人자는 원래 ‘사람이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이다. 사람이 바로 서 있지 않고 허리를 굽히고 있는 모습은 힘이나 권위에 대한 굴종을 드러낸 것이다. 한문에서 ‘人’은 ‘나’가 아니라 ‘나’에 대한 상대 개념이요, 모든 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범칭, 복수의 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개념에서 출발하였다. 사회구조로 말하면 人은 피지배계층이요, 하위 구조층이다. 그러므로 원시시대에는 인권이라는 의식이 없었다. 백성은 오로지 군주와 사회체제를 떠받치는 하부구조에 지나지 않았다. 인류학적으로 보아도 역시 사람은 자유와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인간의 부단한 노력으로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사람 사이를 원만하게 유지해야 하는 존재'임은 변함이 없다. 이를 위해서 평등과 공정이란 말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서 인간의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 것이라기보다는 악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 것 같다. 설령 개인적으로는 선하다 해도 집단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인간의 성악(性惡)을 억제할 수밖에 없고, 자유를 구속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법이나 사회적 규율이 무시된다면 개인의 자유도 보장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개인주의, 이기주의는 사회의 행복을 파괴하고, 결국 개인의 행복마저 해치게 될 것이다. 자유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조건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 平等은 골고루 똑같아야 한다는 말이지만 똑같은 사람이 둘도 없는 사람이 모든 일에 평등해야 한다는 말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다. 더구나 사람의 신체조건, 성격, 개성, 취향, 능력 등이 모두 다른데 평등이란 사회주의자들의 허울 좋은 구호이거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평등 대신에 公正이란 말을 사용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조건에 맞추어 평등하게 기회를 주자는 말이다. 공정이란 ‘모든 사람의 노력의 결과가 같아야 한다’가 아니라 ‘능력과 노력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가 평등해야 한다’는 말이다. 각기 다른 성격과 능력에 맞추어 대하자면 不平等이 오히려 좋을지 모른다. 각기 다른 그 개성에 맞게 기회와 대처방법이 달라야 오히려 平等일 것이다. 노약자 보호석이 따로 있는 것은 불평등이 아니라 오히려 평등이다.
그렇다고 사회의 불평등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과 정책을 국민의 사정을 생각해서 거기에 맞게 처리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公正이라고 하고 싶은데 사실은 평등보다 더 어려운 것이 공정이다. 평등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不平等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공정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사회주의를 극복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완하는 길이다. 개인차를 배려한 平等이 公正이다. 기회가 공정했다면 결과는 각자의 책임이다. 금수저, 흙수저론은 기회가 불공정한 데 대한 허탈한 국민의 절규이다. 그것을 자유경쟁이나 무한경쟁이라고 합리화하거나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호도하지 말고,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을 버려야 한다. 자본주의의 최대 약점 중의 하나가 불평등이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공정이다. 자본주의가 이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성립했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유가 아니라 공정이었고,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은 실체가 없는 평등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가 인권의 뒷전에 밀려나 있고, 공정이 자유와 평등에 가려져 있는 듯하다. 인권과 자유가 싫어서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같아서 문제이다. 더구나 정의와 공정을 내세우면 사회주의나 진보로 매도하는 경우도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수학적 통계의 개념으로 여러 수치를 더하여 그 중간의 수치를 뽑은 것이 평균이다. 여러 가지 현상을 똑같이 하나로 규격화한 것이 균일이다. 여러 가지 사물을 비슷한 수준, 개념으로 맞춘 것이 균등이다. 여러 가지 형편, 상황을 고려하여 치우침이 없도록 하는 것이 균형이다. 이들은 얼핏 비슷한 뜻으로 들리지만 생각해 보면 차이가 있다. 평균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수학 통계의 개념이라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균일은 경직된 객관적, 물리적 가치관이다. 균등은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객관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균형은 인간의 주관적 판단이 개재된 가치관이다. 인간의 일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것인지, 물리적으로 처리할 것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것인지, 주관적으로 배려할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전자로 갈수록 물리적이요, 후자로 올수록 인간적이다. 평등은 물리적인 발상이요, 공정은 인간성에 바탕하고 있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인간의 자유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은 공정이라는 인간적 노력의 대가로 얻어질 수 있는 성과이다. 만약 우리 사회에 공정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자유와 평등은 아름다운 무지개에 불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