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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jamin Coffee Jan 04. 2021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1.4

우윤은 어렸을 때 아팠고, 건강을 되찾고 나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젊음 같은 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함께 아팠던 친구들을 보면 곧 죽어도 후회 없을 만큼 용감해지거나, 언제나 죽음을 의식하며 조심스레 살아가는 듯했는데 자신은 역시 후자에 속한다는 점이 내심 못마땅했다. 그래서 와이키키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든 서핑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로 서핑에 끌렸다기보다는 우윤이 생각하기에 가장 무모하고 위험한 운동인 것 같아서였다. 죽음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끔은 마주해야 했다. 나는 특별히 용감하지도 않지만 겁쟁이도 아니야,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쓰는 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 거야."




얘기할 수 있는 화제들은 여럿 있지만, 중층적이면서도 치밀한 구조야말로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다.


그리고 이건 '소설'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인, 접점이 결코 적지 않은 <82년생 김지영>과의 결정적인 변별점이기도 하다.



기록의 힘을 다시금 생각하면서도, 그 기록들이 허구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세랑의 표현을 빌려) 아득해진다.


기록을 만들어낼 줄 아단단함은 어디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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