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니 전이나 먹자”던 K의 MBTI는 분명 ‘J’로 끝날 것이다. 오늘 비가 온다고 내일 전을 먹자는 것은 (오늘의 꿀꿀한 분위기가 내일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바탕으로 할 텐데 그렇다면 그건 좀) 섣부른 판단이 아니냐, 는 나의 물음에 K는 내일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 고 받아친다.
아무렇지 않게. 마치 모든 사람이 내일의 날씨를 궁금해하기라도 하듯.
여의도 전집 하면 아무래도 청석골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니다. 네이버에 검색해도 포스팅을 찾기 어렵다. 이곳을 애정하는 모씨의 부름으로 처음 알게 됐다.
번잡하고 화려한 여의도 한복판에서 한가롭게 막걸리 한 잔 하기 좋다. 민속 주점의 컨셉을 잘 살렸다. 주막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한 켠에 마련된 마루에 자리를 잡아야 하지만, 신발을 벗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좌식 식탁에 앉기라도 하면 백이면 백 다리가 저려오기 마련이다.
메뉴판에는 특정 음식들이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강조돼있다. 빨간색으로는 삼합, 모듬전, 해물순두부탕이, 파란색으로는 보쌈, 과메기세트, 두부김치, 해물파전, 굴탕 등이 적혀있다. 두 색의 차이는 물어보려 했는데 까먹고 말았다. 아마 추천 메뉴와 잘 팔리는 메뉴를 나눈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말고.
모듬전을 우선 시키고 골뱅이 소면을 추가했다. 마무리는 해물순두부탕. 모듬전은 말 그대로 이것저것을 부친 것이다. 버섯, 햄, 두부, 꽁치(생선인데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다) 등등. 이 꽁치 전이 참 독특한데, 안에 알이 가득 차있어 씹는 맛이 있다. 약간의 비린내만 견딘다면. 골뱅이 소면은 그냥 골뱅이 소면이었고, 해물순두부탕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적당히 매콤하면서 아주 감칠맛이 폭발한다.
주종은 역시 막걸리. 주전자에 담겨 나온다. 장수막걸리가 있냐는 물음에 서울막걸리뿐이라는 답이 왔다. 맛있다, 는 부연은 덤으로. 앞에 앉은 L은 동동주가 혹시 있냐고 물었지만 역시 ‘맛있는’ 서울막걸리뿐.
동동주와 막걸리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자 L은 “그런 게 있다”고 어물슬쩍 넘어간다. 검색하려고 폰을 꺼내드니 그제야 아는 지식을 총동원한다.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동동주는 술의 윗부분을 따로 뜬 것이고, 막걸리는 그리고 남은 침전물(지게미)에 물을 배합해 만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동동주랍시고 먹은 기억이 아주 오래 전이다.
술기운이 적당히 오른 김에 L에게 감상을 써보라 권유했다. L은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청석골은 협소했다. 협소해서 주인장과 가까웠다. 주인장은 손님처럼 자리를 잡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새로운 주문을 시키려 할 때면 매복 후 급습이라도 하는 듯 나타나 주문을 받아갔다. 다소 그 절차가 느긋해 보였지만 음식 맛이 썩 좋아 아쉽게 할 말도 없었다. 그냥 좋게 돌아가는 모양새가 너무나 안정적이었다. 마주 앉은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