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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jamin Coffee Sep 19. 2019

New York 14

13.8

아침 일찍 퀸즈스퀘어 역에서 사우스페리 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스태튼아일랜드로 향하는 페리를 타고 자유의여신상을 보기 위해서다. 물론 지하철 가는 길에 델리에서 아침거리도 샀다. 이번에는 살라미앤치즈를 골랐다. L은 BLT. 2리터짜리 음료도 하나 사서 총 10달러가 나왔다. 오늘도 5000원의 행복.


사우스페리 역은 종점이었다. 꽤 오랜 시간 지하철을 타고서야 도착했다.





사우스페리 역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무리를 따라갔다. 바로 배터리파크가 나왔다. 앞선 사람들은 공원을 둘러보지도 않고 서둘러 움직였다. 페리 출항 시간이 임박한 듯했다. 우리도 걸음을 빨리했다. 점차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큰 무리를 이뤘다.


이들이 향한 곳은 우리가 타려던 출퇴근용 무료 페리가 아니라, 돈을 받고 자유의여신상 근처까지 가는 관광용 페리였다. 아마 20달러가 넘는 거로 알고 있는데 굳이 공짜 페리를 마다하고 저걸 타려는 이유가 뭘까, 하며 여유롭게 공원을 산책했다.





공원을 돌아다니다가 적당히 그늘진 벤치에 앉아 살라미앤치즈를 먹었다. 역시 짜고 기름졌다. 어쨌든 한 끼로는 충분한 포만감을 줬다. 이제 페리항구로 가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알고보니 우리가 아까 내린 지하철역 건물이 바로 목적지였다. 모르고 따라다가다 생뚱맞은 데로 간 거다. 무조건 따라가다 보면 이런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가는 길에 카메라맨을 비롯한 촬영 스태프들과, 그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 인도춤을 추는 것 같았다. 인도 전통복장을 입은 여자도 몇 명 보였다. 단체로 춤을 추는 모양새에서 인도 영화의 특징이 보였다. 관계자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일단 규모가 작았고, 춤추는 모양새도 다소 조악해 UCC정도 찍고 있는 거라고 판단했다.


그들도 뒤로 한 채 드디어 스태튼아일랜드 페리 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굉장히 컸다. 배가 오려면 아직 10분 정도가 남았는데 벌써 역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반쯤은 스테튼아일랜드로, 나머지 반은 다시 맨해튼으로 올 사람들처럼 보였다. 머지않아 배가 항구에 도착했다.





배는 선상까지 4층이었다. 여느 유람선에 비해 훨씬 컸다. 내 경험으로 비추면 울릉도에 갈 때 탔던 배정도의 규모였다. 일상적으로 페리를 타는 사람들은 배 내부에 도란도란 앉아있었다. 우리를 포함해 관람용으로 페리를 타는 사람들은 배 외부에서 두리번거리고 사진을 찍었다.


출항하고 얼마 있지 않아 멀리서 자유의여신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배 왼쪽 편에 있었는데, 배는 자유의여신상을 오른편으로 한 채 항해를 했다. 오른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카메라나 핸드폰을 들고 난간에서 자유의여신상이 가까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앞에 두 줄 정도로 있던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자유의여신상을 찍어내기 위한 지라를 마련했다. 어느새 가려져있던 자유의여신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계속해서 멀어지는 자유의여신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때만큼 한 대상을 여러 번 사진에 담은 적은 없었다. 고정돼있고, (물론 나의 시각에서) 동적이지 않은 대상들은 언제고 다시 찍을 수 있디는 안도와 자만. 한 번 찍고 말지만,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이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 대상에게는 왠지 모를 애틋함과 불안,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확신이라는 건 대상과 나의 교감에서의 확신, 내가 대상을 보고 있고 동시에 그 대상도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확신이다. 나는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도무지 만족할 수 없었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았다. 끈질기게 바라보고 카메라 속 동상의 모습을 보며 없어질 모습 또한 상상했다. 꼭 그만큼의 부재 속에 확실히 자유의여신상은 나의 불안과 공명하며 빽빽이 들어찼다.


바닷바람을 조금 더 쐬고 있자니 스태튼아일랜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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