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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jamin Coffee Sep 21. 2019

New York 15

13.8

오전이라 그런지 스태튼아일랜드는 한적했다. 건물들도 소박하고 아담딱히 눈에 띄는 것도 없었다. 곳곳에 호텔인지 민박인지가 많았다. 여기서 묵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얘기를 나눴다. 만날 배를 타고 맨해튼으로 출근하듯 간다면 현지인의 일상생활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연안가를 잠시 산책한 뒤 페리 시간에 맞춰 다시 항구로.





다음 목적지 월스트릿을 향해 북쪽으로 올라갔다. 금융의 중심지인 만큼 다들 분주할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두리번두리번 느릿느릿 걸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금융권 사람들은 아침 일찍 바쁘게 돌아다니려나. 사실 출근시간은 진작에 지 때였다.


거리를 올라가다 보니 한 곳에 인파가 몰려있었다. 뭔가 봤더니 그 유명한 월스트릿 황소상이었다. 다들 황소 앞에서 밑에서 옆에서 뒤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아우성들이었다. 어떤 여자는 황소의 불알을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주위 남자들이 건전하지 않은 웃음을 뱉어냈다. 여자도 약간 민망했던지 사진을 찍자마자 이내 자리를 떴다.


말 그대로의 '월스트릿'은 황소상에서 두세 블록 더 올라가야 있었다. 본격적인 월스트릿을 알리려는 듯 초입부터 차량은 통제되고 있었고 불규칙한 돌출물들이 튀어나와있었다. L은 테러범들의 도망을 막기 위한 장애물의 일환이라고 했다. 그렇게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상징적인 의미로서 받아들였다.


뉴욕권거래소에서 시작해 페더럴홀, 연방준비은행 등을 따라 주욱 걸었다. 건물들은 한결같이 예스러웠는데 굳이 자기를 뽐내지 않아도 찾아드는 사람이 줄지 않는다는 듯 별다른 특색 없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려는 듯 , 라캉의 외밀성을 구현하고 있는 듯했다.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한 건물들도 많았다. 인파나 세심한 지도나 현판이 없었다면.


생각보다 무덤덤한 금융의 중심가를 돌고 돌아 최종 목적지 그라운드제로로.





그라운드제로가는 도중에 세인트폴스채플에 들렀다. 역사적 의미도 깊었고 무엇보다 건물 내부가 온통 9.11 테러에 대한 추모의 기억들로 꽉 들어찼다. 수없이 다양한 인종, 국적, 종교를 가진 관광객들을 염두에 둔 건지, 교회의 특성상 그런 건지 분노, 복수보단 애탄과 비통의 감정으로 가득했다. 루쉰이 봤으면 비난했을까. 순직한 소방관, 사고로 죽은 사람들. 그들을 보내는 흔적들이 엄숙한 교회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한껏 들뜬 기분가라앉다.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같이 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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