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다음 목적지로 올라가던 중 랜드마크 같은 건물들이 밀집해있는 곳을 지났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알고보니 시빅센터였다. 대법원, 고등법원 등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 차도도 넓고 거리 자체가 한국으로 따지면 시청 앞 광장마냥 넓은데도 굉장히 잠잠했다. 건물이 건물이니만큼 그런 걸까.
차이나타운 이후 기분이 계속 좋지 않았다. 아까 양조장 사건에 더해 날씨는 또 유달리 더운데다, 이날따라 유독 많이 걸었다. 거기다 차이나타운의 명소인 아이스림팩토리에 가보자 했더니 L이 핀잔을주는게 아닌가. 마치 너는 그런 먹는 거나 찾으러 여행왔냐, 는 듯 빨리 위치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먹겠다, 고. 마치 자기는 고상하게 문명을 보고 느끼러 왔지 저급하게 먹거리따위에는 관심 없다는듯 말이다.
빨리 뭐 먹을지 안 정하면 난 핫도그 먹을거야, 이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선심 써서 나의 그런 저급한 취향을 함께 해주기라도 하듯. 그래놓고 맛있네 하며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얄밉던지. 하필 그날 여러모로 짜증이 났던 상태라 성질이 돋았다. 신경질을 내며 안 먹는다, 고 했다. L도 약간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날은 그 이후로 제대로 한 마디 섞지 않았다. 이후 관람들도 마침 그저 여러 거리를 걷는 게 다였으므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표정은 있는 힘껏 찌푸린 채 걷기만 했다. 별로 기억에 남는 모습도 없다.
소호의 마지막 일정. 진흙으로 만든 예술 갤러리로 갔다 겨우 찾았다. 웬 창고스러운 지하실이다. 갤러리 표지판도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있는데다 쪼끄매가지고 도저히 이걸 전시한답시고 붙여놓았는지. 어쨌든 갤러리로 들어가봤는데 아뿔사, 게이들의 성행위를 묘사한, 그것도 사실화로 그려낸 그림들이 아닌가. 한 바퀴 서둘러 돌아본 뒤 튀어나오 듯 갤러리를 빠져나왔다. 한 커플이 우리를 뒤이어 들어가려길래 상황을 설명할까도 했지만, 저것도 또한 경험이므로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그들이 채 나오기 전에 우리는 그곳을 떴다.
저녁은 맛집 리스트에서 찾은 Smile to go로. 그날따라 밥맛도 없고 양도 적었고 거격도 싸지도 않고 맛도 그저 그래서 실망 한 가득 안고 숙소로 Frown to go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