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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Apr 14. 2023

노스트라다무스의 시선

스페인 바르셀로나


한국 나이 26살에 처음 입사한 이후에 생겨난 버릇이 있다. 새로운 회사를 가거나 팀을 옮기게 되면 종종 하는 행동인데, 가끔씩 바쁜 업무 중에도 사무실 한구석에 멈춰 서서 가만히 사무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이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 것이 시작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잠시 멈춰 서서 사무실을 바라보곤 한다.


회사마다 사무실 내부의 인테리어와 레이아웃이 다르다. 파티션 칸막이를 높이 세워서 직원이 자리에 있는지 모르는 구조도 있고, 도서관같이 넓은 자리에 칸막이가 없어서 멀리서도 상대방이 무슨 업무를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구조도 있다. 이러한 구조의 경우, 사비를 들여서라도 모니터 보안 필름을 구매해서 부착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요즘에는 지정 좌석이 아닌 자율 좌석제로 운영하는 회사가 많을뿐더러, 재택근무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사무실 내부의 분위기도 많이 변하고 있다.


이렇게 사무실의 전경을 바라보고 분위기를 느끼는 습관은 점차 사무실 내부에 있는 직원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처음에는 과장님은 어떤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차장님은 무슨 이슈가 가장 당면 과제인지 등에 대한 호기심이 주를 이루었다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 내가 5년 뒤에 저 자리에 앉아있겠구나, 내가 10년 뒤에 저 업무를 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고과정에서, 미래가 구체적으로 그려짐으로 해서 안정감을 얻는 긍정적인 효과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정도 미리 정해져 버린 미래를 알게 된다는 불쾌감이 수반되는 부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마치 아껴두고 보고 싶은 영화의 결말을 시작과 동시에 알게 돼버린 기분과 비슷하다.


아마도 첫 직장에서 이직을 결심하게 된 가장 강력한 동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현 직장에서 근무를 계속하면서 앞으로 맞이하게 될 나의 미래들을 직접 눈으로 현실감 있게 바라보면서 정말 이게 내가 원하는 미래일까라고 속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되뇌었다. 답을 얻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고, 답은 명쾌했다. 다만 그 답을 받아들이고 현실로 실천하는 것이 오래 걸렸을 뿐이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경우 조금 더 까다롭다. 근속연수와 나이에 따라서 직급이 정해지지도 않을뿐더러, 본인의 희망에 따라 한 직급을 오래 유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인 커리어의 성장보다는 삶의 균형에 더 가치를 두는 직원이라면 10년 동안 동일 직급에 머무를 수도 있다. 모든 건 본인의 선택이다. 다만 개인의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오래간만에 사무실의 전경과 직원들의 표정을 바라보지만, 이제는 시선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려서 내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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