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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Jul 09. 2020

[최종합격] 포스코 건설 신입사원 공개채용 (2)

남자 최후의 자존심, 구렛나루를 포기하다



면접 전에 용모를 단정히 하기 위해서 이발을 하러 갔는 데, 이때 참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깔끔하고 착실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구렛나루를 미느냐, 아니면 이것만은 최후의 자존심으로 지키느냐 내적 갈등이 심했는 데, 결국 '그래, 머리는 어차피 또 자라겠지..' 하면서 고등학생의 스포츠 머리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후 면접을 가보니 필자만 그런 머리를 하고 있어서 다들 전역장교 채용으로 온 줄 알았다는 후문이 있더군요. 이 후의 면접부터는 그런 과도한 열정은 속으로만 간직하고 괜한 머리에 표출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1차 면접은 지원자들을 버스에 태우고 연수원 같은 곳으로 이동해서 하루 종일 면접을 진행하였습니다. 인성 검사도 보고, 다수의 인원이 함께 토론 면접도 하였습니다. 좁은 회의장에서 신입사원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열 댓명의 젊은 청년들이 치열하게 노력하는 1시간이라는 시간은 전원의 역량을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찬반토론 면접의 경우 주어진 안건에 대한 찬성파와 반대파, 그리고 사회자 역할의 중재자, 서로가 각자의 포지셔닝을 전략적으로 구사하면서, 실제 현업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상대방에 대한 깊은 존중과 형식적인 의견 합의 도출 등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면접을 여러 회사에서 다양하게 경험하다 보니, 아는 얼굴들도 생기면서 나중에는 회의 들어가기 전에 미리 찬성파와 반대파, 중재자 역할을 정하고 '최종 결론은 종료 몇 분전에 이런걸로 도출하기로 합시다'하고 사전에 미리 합을 맞추고 들어가기도 합니다. 덕분에 토론 면접이 티비에 나오는 100분 토론의 진행보다 훨씬 매끄럽게 진행되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하루 종일 연속된 대기와 긴장된 상태의 면접 진행으로 일정이 모두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 쯤에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답변을 잘 했는지도 기억이 안나고 당장 씻고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Boston의 겨울은 참으로 춥고,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MIT에서 재난 메일을 발송해주기도 합니다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고 1차 면접 합격 소식을 접하고, 곧 최종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3명의 면접관 분들과 필자 혼자의 대결이었습니다. 사실 필자는 면접을 보기 직전에는 긴장도 많이 되고 마음이 불안한데, 막상 면접을 진행하면 어느 순간 흥분이 되고 활기차게 면접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자기소개를 할 당시 긴장을 너무 많이 했던 지, 그렇게 숱하게 준비한 1분 자기 소개를 버벅 거렸습니다. 아차 싶었지만, '제가 미녀들 앞에서도 이렇게 떨지 않는 데, 처음으로 미남분들 앞에 서서 그런지 조금 긴장이 되네요.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너스레를 떨며 잽싸게 정신을 차리고 성공적으로 자기 소개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후의 질문들은 생각보다 평이했고, 한분이 압박 면접을 진행했지만 이미 압박 면접을 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적절한 대답들로 자신감 있게 응수해 나갔습니다.


필자의 인터뷰 핵심 전략 중 하나는 가장 가운데 앉은 면접관, 즉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 (hiring manager)를 웃기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채용 권한이 가장 높은 담당자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 채용 확률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필자는 면접 중 어떻게든 한번은 최고 직급의 담당자에게 눈에 띄게 끔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요.


보통 면접을 끝내기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혹은 질문사항이 있는 지 확인하곤 합니다. 필자의 경우 항상 이 마지막 순간의 임팩트를 어떻게 줄 것인가를 고민하곤 하는데, 먼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라도 '마지막으로 1분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고 정중하게 요청하면 대부분의 경우는 수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Milano, Italy



최종 면접 전에 필자는 컬러 프린터로 자체적으로 회사 명함을 제작해서 가지고 갔습니다. 진짜 회사에서 사용하는 명함과 디자인이 얼마나 비슷했는지는 몰라도 나름 회사 로고도 넣고, 지원한 부서의 팀명과 '신입사원(예)' 라는 포지션 타이틀과 필자의 이름을 넣고 양면으로 출력후 붙여서 나름 명함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마지막 발언 기회가 주어진 순간, 필자는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면접관님들께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입사 전이라도 혹시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시멘트 포대라도 나르겠습니다!" 라고 유머스럽지만 자신감있는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 순간, 가운데 앉은 면접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먹혔다!'


그렇게 면접을 마무리하고 하루 하루 초조한 나날들이 지나가고 불안정한 마음이 최고조에 이를 때 즈음, 학교 수업을 가는 길에 같이 면접을 진행했던 형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최종 합격 발표가 나왔는 데 본인은 잘 안됬다고요. 마음이 초조해지고, 발걸음이 빨라 졌습니다.


2009년도 당시 국내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라 핸드폰으로 인터넷 채용결과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단과대학의 컴퓨터 실로 직행하였습니다. 하필 그날따라 컴퓨터 실에 사람이 꽉 찼습니다. 부리나케 필자의 단과대학 건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4학년 졸업 논문을 위한 작업실 한 켠의 필자 자리에 재빨리 앉고 바로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클릭합니다.

컴퓨터의 속도가 필자의 마음을 따라 오지 못합니다.

채용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로그인을 합니다.

최종 결과 확인이 팝업창으로 뜹니다.

'확인하기'라는 버튼위에서 마우스 클릭을 곧바로 하기가 쉽지 않아 손이 멈춥니다.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깊게 심호흡을 합니다.

심장의 쿵쾅 거리는 소리가 귀에 까지 들려옵니다.

10초 정도 짧은 순간에 이 세상 모든 복합적인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 왔다가 물러갑니다.

천천히 눈을 뜹니다.



 신입사원 공채 최종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긴장이 너무 한번에 풀렸던지 힘이 빠져 크게 소리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작업실을 같이 사용하는 동기들에게 합격소식을 알렸고, 오히려 그들의 축하인사가 훨씬 큰 소리였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께도 합격 사실을 알리고 함께 기뻐했었습니다.






지금도 필자가 취업을 할 당시와 마찬가지거나, 혹은 상황이 더 안좋을 것 같습니다만, 필자가 입사할 시점에도 마찬가지로 취업난은 상당히 심각한 편이었고, 더욱이 필자의 학부에서는 대기업 취업하는 사례가 많지 않았던 터라, 필자의 최종 합격은 주변 사람들의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특별한 것이 필자를 졸업도 하기 전에 그것도 상반기에 취업을 합격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역시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다리를 젓고 있는 백조의 발은 본인만이 알 수 있고, 수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고 유유히 떠다니는 여유로운 모습만 보이는가 봅니다.


결과적으로 포스코 건설을 가장 먼저 지원하고 합격하게 되고, 여름 인턴 때는 대림산업을 지원 및 합격하고, 하반기에는 필자의 리스트중에 몇 남지 않은 회사 중 개인적으로 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회사를 추려내다 보니, 최종적으로 건설회사 중에서는 현대건설만을 추가로 지원 및 합격하여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됩니다.



독일 한 노부부


[원글: https://blog.naver.com/kimstar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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