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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Aug 21. 2020

넌 왜 그렇게 방어적이니?

그런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닌데


필자가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교과서에 실려 읽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나는 수필 작품이 있습니다. 1977년에 출판된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윤오영의 수필인데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야기는 작가가 40여 년 전의 일을 회고하면서 시작된다. 방망이를 깎던 노인과 방망이를 사려고 했던 ‘나’의 심적 갈등이 주를 이루며, 두 사람의 개성이 뚜렷이 대조되어 묘사된다. 갓 분가하여 의정부에 살던 나는 서울을 다녀가는 길에 차를 갈아타기 위해 동대문에서 전차를 내린다. 우연히 방망이 깎는 노인을 보게 된 나는 그에게 방망이 한 벌을 깎아달라고 주문한다. 노인은 에누리도 해주지 않고 무뚝뚝할 뿐만 아니라 주문자가 차 시간에 늦었으니 빨리해달라고 재촉해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묵묵히 다 된 것 같은 방망이를 다듬고 또 다듬는다. 나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자기 마음에 드는 방망이로 다듬어질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한다. 손님의 사정은 아랑곳없는 노인의 태도에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아내로부터 보기 드물게 잘 깎인 방망이를 사 왔다고 칭찬을 듣는다. 비로소 나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노인의 고귀한 장인 정신을 깨닫고, 그를 증오하고 멸시했던 자신의 경박함을 뉘우치게 된다. 나는 추어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려고 다음 일요일에 노인을 다시 찾아간다. 그러나 노인은 만나지 못하고 지난번 방망이를 다 깎고 난 노인이 허리를 펴고 무심히 바라보던 동대문의 추녀를 바라보게 된다. 거기에는 푸른 하늘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무릇 장인이란 허술한 물건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이라도 하듯이 유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일종의 거룩함마저 느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당시 이야기의 초점은  방망이를 깎는 노인의 여유 있는 자세와 이기적인 작가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특히, 화자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장인 정신이 깃든 노인의 태도가 인상적이었고, 그와 같은 성실한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교훈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해당 수필이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장인 정신이나 삶에 대한 성실함이 아닙니다. 우연히도 필자는 최근 주변에서 새로운 시도 혹은 변화에 대해 주저하는 지인들을 자주 목격하곤 했습니다. 아이러니 할 수도 있지만, 조금 서툴러도 혹은 미완성일지라도 그냥 그대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완벽한 방망이를 만들기 위해 이미 충분히 완성된지도 모른 채 같은 방망이만 계속 다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우리는 많은 경우에 업무적으로 부탁하는 말을 꺼내거나 혹은 본인을 어필하는 것에 있어서 상당히 주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포지션에 자리가 나서 그곳에 가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유관부서에 어필을 해본다거나, 입학을 희망하는 학교의 안면부지 졸업생 동문에게 뜬금없이 연락을 하여 해당 학교를 입학하고 싶은데 도움을 요청하거나 하는 등의 일입니다. 혹은 해외 취업의 경우를 예로 들면 cold email을 보내거나 coffee chat을 요청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무언가를 주저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기 방어 기제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즉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잘 안 되는 경우, 그 실패감, 패배감을 맛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혹은, 상대방으로부터의 거절에 대해 본인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도전하거나 시도하지 않으면, 최소한 실패 혹은 거절당하는 것은 아니니 자존심은 지킬 수 있으리라는 기본 전제가 밑바탕이 될 수도 있고요. 





현대건설을 처음 입사하면서 한 달여간의 그룹 교육 과정에서 접했던 기업 가치 중에서 고 정주영 회장의 어록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필자에게 가장 와 닿던 말은 "이봐, 해봤어?"였습니다. 얼핏 들으면 다소 공격적이고 감정적일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본질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감이 되는 부분입니다.

필자 역시도 '할 수 있다'와 '해봤다'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새삼 느끼곤 합니다. 그렇기에' 해봤다'가 더욱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하고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생각에만 그친다면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8마일>이라는 영화를 좋아하는 데,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래퍼의 길로 나아가는 한 젊은이의 과정을 그린 영화로 백인 래퍼 에미넴이 열연한 것으로 국내에서도 나름 흥행에 성공한 영화입니다. 영화 속 젊은이(지미)는 낮에는 폐차 공장에서 일을 하지만 그의 친구들과 함께 언젠가는 성공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디트로이트 최고의 래퍼들이 모이는 힙합클럽의 랩 배틀에 참가를 합니다.

필자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지미의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더불어 현실에 대한 인식입니다. 지미는  비록 현실은 힘들더라도 늘 꿈을 가지고 친구들과 그 꿈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지미가 그 친구들과 다른 점은 친구들은 늘 나중에 난 어떠한 일을 할 거야, 우린 성공할 거야 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꿈을 이야기하는 그 자체에서 자기 위안을 삼을 때, 실제로 랩 배틀에 참여하고 흑인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는 것은 지미 혼자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수모를 겪고도 지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고 끝내 우승자로 등극합니다. 

필자 개인적으로 영화의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인데, 처음 지미가 배틀랩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과 마지막에 우승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똑같습니다. 우승에 기뻐하며 우리는 이제 유명 가수가 되어 부자가 될 거라고 허상에 젖어 있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지미는 내일도 공장으로 출근해야 한다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생각만 하는 것은 공상일 뿐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큰 고민이고 큰 실패이고 큰 두려움인 일 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나 또 의도한 대로 안되면 어떻습니까? 두 번, 세 번 다시 시도할 수도 있고, 끝끝내 안되더라도  최소한 시도는 해봤으니 그때야말로 아무런 후회 없이 물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세한 것에 너무 고민하지 말고 '안되면 말고'의 정신으로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고 있던 그것을 오늘은 꼭 시도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원글: https://blog.naver.com/kimstarha/22205913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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