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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철 May 05. 2019

제국에 동원된 개, 하치
& 나가사키반점으로 타임슬립

고독한 미식가가 걷던 레트로 시부야

도쿄, 2018년 11월

여덟번째 이야기

도쿄도 시부야구 도겐자카





시부야의 별을 찾아


 여행자는 미식탐방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의 애청자다. 최근에는 유사한 일인 드라마들을 보면서 주연배우 마츠시게 유타카(松重豊)의 대단함을 새삼 깨닫는 중이다.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의 주연인 오노에 마츠야도 대단했지만, 드라마의 개그코드 자체가 좀 지저분했다.)


 아무튼 언젠가 도쿄에 가게 되면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의 발자취를 따라 미식탐방을 하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이번 도쿄여행 준비 중 상당한 시간은 지도에 이노가시라의 밥집들을 표시하는 데에 할애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쿄……. 저녁 여섯 시가 가까운 시각, 여행자는 손바닥만 한 도쿄 지도 위에 밤하늘의 별만큼 수없이 뿌려진 별들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





 그곳은 바로 《고독한 미식가》 시즌6 제7화 〈도쿄도 시부야구 도겐자카의 사라우동과 춘권〉편에 등장하는 ‘나가사키 반점(長崎飯店)’이라는 이름의 중식당이었다. 성지순례의 첫걸음이었다. 이노가시라 상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국회의사당 앞 역, 도쿄메트로 치요다선 요요기우에하라행.



 오모테산도 역의 혼잡 속에서 긴자선 승강장을 찾아 헤매다가 웬 여성분한테 붙잡혔다. 처음엔 한국에서 흔히 보던 도통한 사람인가 의심스러웠으나 그저 도쿄메트로에서 하는 설문조사였다. 설문조사의 대가로 펜을 받았다. 펜을 받고 기분 좋게 몇 걸음 가다가 다시 재패니즈 웨이브 속에 표류했다. 설문조사원에게 길을 물어 겨우 긴자선에 탈 수 있었다.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일본제국 신민의 모범이 된 하치




 시부야 역에 도착해 충견 하치공 동상을 구경했다. 하치는 세계 에이즈의 날을 앞두고 붉은 리본을 두르고 있었다. 하치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치처럼 지인을 기다리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행선지를 정하고 있었다.



만년의 하치. 쳐진 귀는 들개에게 물린 후유증로 인한 것이다. 하치는 순한 개였지만 들개들 사이에서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 Wikipedia)



 1923년에 태어난 아키타견 하치는 도쿄제국대학(지금의 도쿄대학) 교수 우에노 히데사부로(上野英三郎)가 기르던 개이다. 우에노 교수는 대단한 애견가였다. 아오모리(青森)에서 일하는 제자가 아오모리의 명물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자 그러면 아키타견을 보내라고 할 정도였다고. 그렇게 우에노 교수의 집에 오게 된 것이 하치였다. 우에노 교수는 하치를 대단히 아껴서 한 이불 속에서 자기도 했다.


 하치 또한 우에노 교수를 잘 따랐다. 출근하는 교수를 따라 도쿄제대 정문까지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교수의 퇴근 시간에 맞춰 도쿄제대 정문까지 마중을 나갔다. 교수가 출장을 갔을 때는 시부야 역에서 교수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던 1925년, 우에노 교수는 교수회의가 끝난 후 뇌일혈로 급사하고 말았다. 이후 하치는 교수의 지인 집에서 살며, 1935년 3월 8일 죽을 때까지 시부야 역에 나가 교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교수가 오랜 출장을 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치의 우에노 교수에 대한 사랑이 유명해진 것은, 길에서 사람들에게 학대당하곤 하던 하치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하치의 이야기를 신문에 실었기 때문이다. 신문기사 덕에 하치는 일본 전국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1934년에는 조각가 안도 테루(安藤照)의 충견 하치공 동상이 시부야 역에 설치되었다.


1936년 3월 8일, 시부야 역. 하치공 1주기.  (사진출처 : Wikipedia)



 그런데 우에노 교수에 대한 하치의 마음은 과연 충(忠)이었을까. 일본의 충이란 유교적이면서도 무사적인 개념이다. 또한 하치의 시대에는 군국주의적인 개념이기도 했다. 소(小)가 대(大)에 대해, 종(從)이 주(主)에 대해, 그리고 신민이 덴노(天皇)에 대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바치는 의무가 충이었다. 당시의 충은 하나의 모범 · 도덕이었다. 하치의 이야기는 심상소학교(초등학교에 해당)의 국정교과서에 충군애국의 상징으로서 실렸다. 하치의 마음이 그러한 충이었을지 개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은 짐작도 할 수 없겠지만, 그런 폭력적인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장해본다.


 지금의 충견 하치공 동상은 2대째로 일본제국이 패망하고 미군정을 받던 1948년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2대 하치공은 미군의 도쿄대공습으로 사망한 안도 테루를 대신해 그의 아들 안도 타케시(安藤士)가 아버지의 다른 유작을 녹여 만들었다.



1944년 10월 12일, 시부야역. 하치공 출진식. (사진출처 : Sakamichi.tokyo)



 안도 테루의 초대 하치공은 1944년 10월 12일, 당시 군에 징병된 일본의 청년들이 그러했듯 일장기를 어깨에 두르고 ‘출진식’을 했다. ‘금속 공출’이었다. 일본제국이 항복하기 하루 전인 1945년 8월 14일, 하치공은 용광로에 던져졌다. 무의미한 죽음이었다. 2대째 하치공 동상이 세워질 때, 군국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충견’이라는 말 대신 ‘애견’이라는 말을 쓰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치는 여전히 충견이라는 말을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과거사 청산을 끝내지 못한 전후 일본사회에 대한 하나의 상징처럼.



나가사키 반점으로 타임슬립




 하치공 광장은 그 유명한 시부야109,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와 이어져 있다. 그야말로 재패니즈 웨이브. 장관이었다. 도겐자카(道玄坂)는 이곳 시부야역의 서편에서 메구로(目黑)로 향하는 언덕과 그 일대를 말한다. 《고독한 미식가》 나가사키 반점 편에서 이노가시라는 클럽 리모델링 의뢰를 받고 도겐자카를 찾는다. 과연 도겐자카는 젊은이들의 유흥가로 골목마다 클럽이 들어서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나가사키 반점은 사진에서 좌측 길로 세 블록 정도 들어간 골목에 있었다.





중년의 이노가시라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부야. 그는 좀처럼 밥집을 찾지 못한다. 순간 그의 눈에 우연히 들어온 골목. 주변과 동떨어져 홀로 이십세기의 분위기―이노가시라가 걷던 옛 시부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가게가 있었으니…….





 오랜 세월동안 가게를 지켰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다소 잡다하게 벽에 붙은 메뉴와 포스터, 선반에 늘어선 술병들과 낡은 장식들.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뉴스. 나가사키 반점은 종로의 오래된 중국집과 닮았다.


 여행자는 이십세기에 좌도 우도 모르는 꼬맹이였지만, 그 시대의 감각에서 ‘상상의 노스탤지어’를 느끼곤 한다.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이지만, 어쩐지 그 시대에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충동에 휩싸인다. 《고독한 미식가》를 즐겨보는 것도 바로 그 상상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잘 왔다!’ 생각하며 사라우동 카타멘을 시켰다. 우리 식으로 옮기자면 쟁반우동 튀긴 면 정도일까. 극중에서 이노가시라는 사라우동 야와멘(볶음면)을 시켰지만 튀긴 면 위에 국물을 얹는다는 발상 자체가 참을 수 없이 궁금해서 카타멘으로 했다. 바삭바삭하게 튀긴 가는 면 위에 나가사키 우동을 졸인 것 같은 국물이 올라갔다. 면의 식감과 국물이 생각 외로 잘 어울렸다. 새로운 면요리의 가능성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춘권 추가요! 춘권은 바삭함도 바삭함이었지만 속의 식감이 좋았다. 사라우동은 끝까지 다 먹기에는 국물맛이 좀 질리는 감이 있긴 했다. 이노가시라처럼 겨자나 소스, 식초를 가미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번 도쿄여행 중 손에 꼽을만한 맛이었다. 이노가시라 상,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옳군요! 다음에 도쿄에 올 때에도 같은 자리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맥주를 한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 그럼 내일은 마루노우치구나.
무엇을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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