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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철 May 01. 2019

도쿄의 나가타엔 돈이 있고……
일본 국회의사당

외국인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단일민족국가, 일본

도쿄, 2018년 11월

일곱번째 이야기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





도쿄의 나가타엔 돈이 있다


 도쿄(東京). 동쪽 도읍의 일몰은 빠르다. 여행자가 손에 익지 않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던 십 분 남짓한 동안에, 거리는 밤의 어둠 속에 푹 잠겨버렸다. 이왕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곳까지 왔으니 나가타초(永田町)를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도쿄의 나가타(永田)엔 돈이 있고
고베의 나가타(長田)엔 노래가 있다

Soul Flower Mononoke Summit ― 〈復興節〉(부흥가)


 고베 대지진의 위문공연을 다니던 이 밴드의 노랫말 속에서는 인정이 넘치는 고베의 나가타에 대비하여, 권력의 상징으로 도쿄의 나가타가 등장한다. 국회의사당과 총리대신관저, 자민당 본부를 비롯한 정당 본부들이 들어선 나가타는 일본정치의 중심지로서 한국으로 치면 여의도와 같은 곳이다. 때문에 위의 노랫말처럼 ‘나가타초’라는 단어 자체가 중앙정계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의 정치인에 대한 인상이 그러하듯, ‘나가타초’라는 단어도 다소 부정적인 맥락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차만 쌩쌩 달리는 한적한 길을 십 분쯤 걸어 도착한 국회의사당. 어쩌다보니 사진이 무슨 소굴처럼 나왔다.



외국인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단일민족국가





 국회의사당 앞에선 일장기를 든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출입국관리법 개정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다. 단상에서 누군가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연설문을 읽고 있었다. 1970년, 미시마 유키오는 자위대 동부방면 총감을 인질로 잡고 평화헌법을 폐기하기 위해 자위대가 쿠데타를 일으켜야 한다고 선동하며 할복자살했다. 그 당시의 연설문을 읽고 있는 것인지.


 11월 말은 일본은 국회에 상정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으로 한창 소란스러운 때였다. 아베 정권이 산업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개정안은 요양, 건설 등의 인력부족이 심각한 업종을 중심으로 일본어와 직무 시험을 통과한 외국인에게 장기간 재류자격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몇 년간 일본의 거리를 오가며 본 식당과 상점들 중 상당수가 가게 바깥에 구인공고를 붙이고 있었다. 대체로 지금 직원이 그만둬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일손이 부족하다는 느낌의 공고였다. 스쳐지나가는 여행자가 보기에도 일본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이 사람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일본사회에 손을 보태,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는 존재가 외국인들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만도 몇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았나. 카미야마쵸 역 출구 공사현장에서 안전모를 쓰고 일하던 흑인. 긴자의 돈가스 집에서 관광객들과 수다를 떨던 동남아계 아주머니. 심지어 신바시의 어느 규동 집은 동남아계의 여자가 홀을, 중동(?) 쪽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주방을 맡고 있었다. 이미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는 유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경제성장도 마이너스 추세니, 보수층을 상대로 장사하는 자민당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리버럴 진영 쪽에서도 이들 외국인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착취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존의 ‘기능실습생’이라는 명목으로 들어온 외국인들도 월급이 10만엔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발판으로 경제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이 자민당의 계산일 것이다. 문제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은 여행자가 한국에 돌아온 2018년 12월 8일, 국회에서의 몸싸움 끝에 가결되어 2019년 4월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외통수



도쿄메트로 국회의사당 앞 역. 일본 정부에서 운영하는 ‘영토 · 주권전시관’의 광고.
 좌측 포스터는 한국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독도의 모습을 그려놓고 ‘다케시마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다. 우측은 중국과 영토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尖閣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钓鱼岛 및 부속도서) 관련 포스터. 
‘영토 · 주권전시관’은 독도와 센카쿠열도가 일본 영토라 주장하며 그 근거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어디까지나 외부인의 인상이지만, 일본의 지배층은 더 이상 낼만한 패가 없는 도박사처럼 보인다. 한 해에 며칠 일본에 소비자로 머물다 가는 여행자의 눈에도, 선진국이라는 비단장막 사이로 삐걱거리는 그들 사회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친다. 일본의 지배층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모순으로부터 시민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고 국가와 민족을 강조해왔다. (어느 이웃나라와 비슷하다.) 그러나 사회모순이 한계선을 넘게 되면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념도 대중들에게 침투하지 못한다. 게다가 사회의 유지 자체가 절박하니 지배층도 그 이념에 어긋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아무튼 여행자는 시위대가 서있는 국회기자회관을 총리대신관저로 착각하는 바람에, 아베 수상의 거처는 보지 못하고 시부야로 향했다. 한 명의 고독한 미식가가 되어 ‘나가사키 반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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