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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철 Mar 28. 2019

샐러리맨과 삐끼의 생태계, 신바시

검은 슈트의 바다, 도쿄 신바시

도쿄, 2018년 11월

두번째 이야기

도쿄도 미나토구 신바시





일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리타공항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일본 철도의 발상지, 도쿄 신바시역이었다. 1872년 10월 14일, 일본 최초의 열차가 이곳 신바시역(엄밀히 말하면 인접한 시오도메역)을 출발하여 요코하마역을 오가기 시작했다. 최초의 철도역인 만큼 역사 안팎에서 빛나는 증기기관차들과 만날 수 있었다.



증기기관차를 묘사한 신바시역 환승통로의 장식. 빛나는 증기기관차와 함께 일본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막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이 정권을 장악한 메이지정부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근대화였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서양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한 시대에 일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근대화를 통한 부국강병이 절실했다. 그러나 근대화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기에는 메이지 정부의 지지기반이 너무나 약했다. 신정부는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이지 정부가 우선 착수한 일은 눈에 보이는 형태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개혁이었다. 그것이 바로 철도였다.





  신바시역의 남쪽으로는 사무 빌딩들이 늘어서 있었다. 깨끗하고 조용한 거리였다. 차도보다 인도가 넓고 자동차도 많지 않으니 여유롭게 걷기 좋았다. 1층의 상점들은 간결하고 세련된 꾸밈새를 하고 있었다. 고급 잡화점인가 하고 다가가보면 뜻밖의 가게―치과라든지―인 경우가 꽤 있었다.


  이번 여행기간 동안에는 신바시의 사무지구 한복판에 있는 캡슐호텔, 퍼스트캐빈 아타고야마에서 묵었다. 캡슐호텔에서 묵었다가 고생했던 경험이 있지만 도쿄는 숙박비가 워낙 비싸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좀 방의 꼴을 갖춘 곳을 예약했다. 캡슐호텔 치고는 활개를 칠 수 있어서 좋았고, 투숙객이 대부분 출장 온 직장인이라 아주 조용했다. 그래도 새벽 4~5시에는 미닫이문 여닫는 소리에 깰 수밖에 없었지만…… 여행을 다니기에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건물들이 하나같이 단조로운 골목에 있어서 여행기간 내내 헤매지 않고 숙소로 돌아온 적이 손에 꼽았지만, 그건 그냥 여행자가 길치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장님, 퇴근길에 ‘타미야’ 어떻습니까?


  짐 정리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이미 해가 넘어간 뒤였다. 긴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떤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세련된 외관으로 보나, 검은 슈트 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남자들이 드나드는 것으로 보나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간판에 걸린 상호는 의외의 것이었다.







  이런 사무지구 한복판에 타미야 매장이라니. 조립키트부터 공구, 도료, 프라모델 잡지와 군사서적 등 없는 것이 없었다. 드나드는 손님도 많았는데 대부분 정장차림의 회사원이었다. 부장급은 되어 보이는 중년의 신사들이 프라모델을 고르며 정보를 교환하는 광경을 보니, 일본에서 프라모델은 꽤 클래식한 축에 속하는 취미인 모양이었다.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 전차 프라모델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사준 사람은 ‘장난감’이라 생각하고 사준 것이었겠지. 손가락만 접착제 범벅이 되어서 처참히 패배했더랬다. 이렇게 많은 공구들이 필요한 공예인 줄은 전혀 몰랐다. 어쩐지 프라모델에 대한 기억을 안 좋게 끝맺기는 싫어서 하나 집어 들었다. 또 패배하긴 싫어서 점원한테 쉬운 모델을 추천 받았다. 여기에 프라모델 입문서와 좋아하는 삽화가인 우에다 신의 책들을 집어 드니 재정적으로 지고 말았지만…….





신바시의 먹이사슬


  타미야를 나와 다시 신바시 · 긴자 방면으로 북상했다. 역에서 숙소로 내려올 때는 캐리어 때문에 대로로 돌아와서 잘 몰랐으나 숙소와 신바시역 사이는 유흥가였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저렴한 식당부터 가라오케, 주점, 파친코, 캬바쿠라 등의 유흥업소가 신바시역까지 늘어서 있었다. 덕분에 여행기간 내내 일정을 마치고 역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자꾸 ‘형님’, ‘오빠’ 찾는 분들을 피해 다녀야 했다.


  “아, 형. 형, 이런 거 좋아하는 거 내가 다 알어!”

  알긴 뭘 아니…….


  퇴근길 신바시역으로 향하는 샐러리맨을 노리는 사냥꾼들―삐끼들이 골목마다 잠복하고 있었다. 여행 3일차쯤에는 삐끼들이 드문 길을 파악할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가는 길까지 가로막으며 들러붙으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삐끼들을 뚫고 도착한 저녁 6시의 신바시역은 장관이었다. 역 앞 광장에 바글바글한 검은 정장들은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지경이었다. 러시아워의 서울은 차가 막히지만, 러시아워의 도쿄는 사람이 막힐 듯 했다.





  긴자까지 나갔다가 돌아오니 이미 저녁 8시 반이 넘은 시각이었다. 오사카에서 먹었던 쿠시카츠가 생각나서 아무 쿠시카츠 집이나 들어갔다. 쿠시카츠 다나카. 개당 100엔 전후의 저렴한 선술집이었다. 1층은 서서 마시는 곳이고 2층에도 자리가 있었으나, 호객하는 여점원이 밖에서 먹으면 짐볼(Jim Beam 위스키 베이스의 하이볼)이 100엔이라기에 밖에서 먹기로 했다. 산토리 가쿠볼보다 별로인 것 같아서 한잔만 하고 바로 생맥주로 갈아탔지만.


  오사카의 쿠시카츠 다루마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먹어본 것 중에는 츠쿠네(다진 닭고기)가 제일 맛있었다. 레바카츠(간. 돼지?)도 별미였고, 의외로 곤약튀김이나 무 간장조림도 괜찮았다. 무조림은 좀 달긴 했는데 추운 날씨에 따뜻해서 좋았다.





  간반무스메(看板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어떠한 것인지 이날 처음으로 실감했다. 지역하자면 ‘간판아가씨’가 되는데, 식당이나 주점 같은 곳에서 손님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고용하는 매력적인 점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썩 좋은 뉘앙스의 단어는 아니다. 


  영하의 나라에서 온 여행자한테는 하나도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방금 전의 그 여점원은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길가와 홀을 오가며 호객을 하고, 서빙하고 계산하고 단골과 농을 하고. 작은 체구의 아가씨가 바삐 일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역시 먹고 사는 일은 어딜 가나 쉽지 않구나 싶었다.







  며칠 뒤에 찍은 신바시역 광장의 증기기관차 루미나리에. 산타까지 앉혀놓은 모습에 아이처럼 들떠서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옆에서 삐끼가 붙어서 산통을 다 깨어놓았다. 이제 삐끼한테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가 한 말은…… 너무 끔찍해서 옮겨 적지 않기로 한다. 이럴 때면 말을 알아듣는 게 손해인 것만 같다. 스미다 강에 귀라도 씻으러 가야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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