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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철 Apr 14. 2019

어슬렁어슬렁 긴자 산책

모던보이는 문구점 이토야에서 지갑을 털리고 마는데

도쿄, 2018년 11월

세번째 이야기

도쿄도 추오구 긴자



1904년(메이지 37년) 긴자에 개업한 문방구 ‘이토야’의 모습. 문방구와 Stationary. 고풍스러운 한문과 문명개화의 언어인 영문이 병기된 모던의 한 장면.



부라부라 긴부라


 긴자 銀座! 은銀 자가 들어가서 일까. 그 이름은 어쩐지 듣기만 해도 결코 거만하지 않은, 고상한 세련미가 느껴지는 듯하다. 과연,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신바시역과 긴자는 별세계 같았다. 저 편에는 굴다리 밑의 선술집과 한 그릇 600엔이 안 되는 밥집과 손을 까불거리는 공기인형을 세워둔 파친코와 오빠, 형님 호객하는 캬바쿠라들이 뒤엉켜 뒹굴고 있었는데, 이 편에는 잘 차려입은 수입 명품관과 백화점이 점잔하게 시립하고 있었다. 정장의 회사원 일색이던 거리의 행인들도 다양한 인종의 여행객 무리와 패션 잡지에서 걸어 나온 선남선녀들로 바뀌었다. 근래 들어 고급상점가로서의 색깔이 많이 옅어졌다고는 하지만, 나한테는 눈이 핑핑 돌만한 대처였다.


 긴자 銀座는 원래 과거 에도시대에 은화를 주조하던 막부 직할의 관청 이름이다. 바로 그 은화 주조소가 이 곳에 있었다 하여 이 곳의 지명이 긴자가 된 것이다. 당시의 긴자는 창이나 냄비 따위를 만드는 직인들의 거리였다고 한다.


 긴자가 오늘날과 같은 고급상점가로 변모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있었던 두 차례의 대화재(1869, 1872년)였다. (에도시대는 물론이거니와 이후의 관동대지진, 도쿄대공습에 이르기까지, 목조건축이 대부분인 일본에서 이러한 도시화재는 참으로 끔찍한 재난이었다.) 도쿄부는 화재로 초토화가 된 긴자 일대를 문명개화의 상징적인 거리로서 개발하기로 결의했다. 긴자가 곧 일본 최초의 철도가 개통될 신바시와 경제중심지인 니혼바시日本橋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긴자는 가로수와 가스등, 아케이드 그리고 화재에 강한 벽돌 건물들이 늘어선 근대적인―서구적인 거리로 재탄생했다. 당시 이 벽돌 건물들은 아주 고가로 민간에 불하되었는데, 때문에 이 건물들은 부유한 상인들만이 접수할 수 있었다. 자연히 이 건물들은 화족이나 재벌 등의 상류계급을 고객으로 하는 고급 상점가가 되었다.


 제국주의 일본이 전시체제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까지의 긴자에선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이 거닐며 숱한 낭만극을 연기했나니…… 일찍이 긴자와 ‘어슬렁어슬렁’이라는 뜻의 ‘부라부라ぶらぶら’가 합쳐져서, 별다른 목적 없이 긴자를 배회한다는 ‘긴부라銀ぶら’라는 조어가 생길 정도였다. 과연 예나 지금이나 긴자는 아무 목적없이 거닐어도 볼 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긴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복합쇼핑몰 긴자 식스 GINZA SIX의 디올. 기와지붕의 처마를 연상케 하는 긴자 식스와 동양화풍의 소나무 그림이 아주 잘 어울려서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다. 해외 브랜드의 점포들이 늘어선 거리들은 자칫하면 단지 화려하기만 할 뿐인 무국적의 진공으로 전락하기 십상이지만 긴자는 특유의 매력을 가진 거리였다.



간판이 귀여워서 찍은 소프트뱅크 매장. 간판의 중산모자를 쓴 모던 도그는 소프트뱅크의 마스코트인 홋카이도 이누(북해도견) 되시겠다. 소프트뱅크는 2007년부터 시라토 가족白戸家 시리즈를 광고로 내고 있다. 이 광고는 어느 날 갑자기 개가 된 아버지와 흑인이 된 장남으로 구성된 가족이라는 특이한 설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초대 아버지를 연기했던 개 ‘카이’는 안타깝게도 2018년 6월 작고. 지금은 그 아들들인 ‘카이토’, ‘카이키’가 아버지 역을 연기하고 있다. 뒷편으로 보이는 붉은 로고는 미쓰코시 백화점



매니아에겐 치명적인 도시, 도쿄


 갓 상경한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던 여행자는 불현 듯 어느 ‘노포’가 생각나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11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구전문점 ‘이토야伊東屋’, 그 본점인 ‘G. 이토야’였다. 여행기간 내내 느꼈던 것이지만, 취미분야에 있어 도쿄는 다른 도시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압도적인 다양성은 지갑에 치명적이다. 이토야도 그런 매장 중 하나였다.



문명개화의 상징 중 하나였던 이토야. 지금은 빨간 클립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지하 1층, 지상 12층이라니. 문구점이 있다고만 알고 있었을 뿐, 이렇게 큰 문구점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G. 이토야의 뒤편 골목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6층의 ‘K. 이토야’까지 합하면 더욱 큰 규모였다. G. 이토야만 구경했을 뿐인데 폐점시간이 되어버려서 K. 이토야는 둘러보지도 못했다.



 연말을 맞이하는 문구점에서 다이어리가 좋은 매대를 차지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은 여기에 연하장과 붓펜과 오토시다마お年玉 ― 세뱃돈 봉투가 추가되었다. 문구에서도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셈이다. 나도 덩달아 붓펜으로 멋들어지게 연하장을 보내고 싶어졌다.


 한편, 손바닥 위에 올라갈 크기의 아기자기한 오토시다마 봉투도 우리에게 없는 문화여서 인상적이었다. 노골적으로 돈을 주고받기보다는 축복의 마음을 담는다는 일본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세뱃돈을 받는 아이들도 더욱 기뻐하지 않을까.


 3층은 만년필 매장이었는데 정장을 갖춰 입은 점원들이 매우 친절했고, 만년필에 대해서도 빠삭했다. 생산년도로 치자면 불혹은 족히 되었을 내 파이롯트 엘리트S 만년필을 들고, 맞는 컨버터를 찾겠다고 낑낑거리는 점원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결국 맞는 컨버터를 찾지 못하고 카트리지를 써야한다는 결론이 났지만)



폐점시간이 다 되어 ‘어쩔 수 없이’ 이토야를 나설 때 내 손에 들려있던 물건들. 이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던 물건은은 고베 잉크모노가타리 시리즈의 긴자 골드세피아 잉크. 금빛이 조금 도는 어두운 갈색이 참으로 곱다. (사진 우상단. 이토야의 옛 모습으로 장식한 상자) 



 점원의 친절에 마음을 놓고 말았기 때문이었을까. 여행자는 문구점에서 이렇게 큰돈을 쓰게 될 줄 전혀 몰랐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나면 좀 더 친구들은 많이 데려올 걸 하고 후회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이토야만으로도 도쿄에 다시 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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