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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strong Dec 14. 2018

우리 아이 목욕시키기

아이가 조리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온 뒤 목욕은 줄곧 장모님 몫이었다. 두 아이(아내와 처제)를 키워본 경험을 믿었고 나와 아내가 서투른 솜씨로 목욕을 하다 자칫 사고가 날 수 있어서 함부로 아이 몸에 손을 댈 수도 없었다.


장모님이 부산에 있는 집에 잠시 내려가셨을 때마다 우리 부부가 목욕을 시켜야했는데 숨이 넘어갈 것처럼 아이가 울어서 공포에 질렸던 경험이 있다. 머리를 감기거나 얼굴을 닦일 때 물을 먹고 나서 겁에 질려 운 것이다. 아이는 ‘꾸에에에엑’이라는 소리를 내며 울었고 온 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 후로 목욕을 시키는 게 부담이 됐다. 장모님은 2017년 8월부터 우리 가족이 독일에 정착하는 것을 도와주시기 위해 한 달 간 함께 계셨는데 하루하루가 지나 장모님의 귀국일이 다가올 때마다 ‘내가 목욕을 시켜야 하는 날이 오는구나’ 싶어서 우울했다.


장모님을 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온 날 저녁. 어떻게 하면 목욕을 잘 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봤다. 생각해보니 아이는 얼굴을 닦거나 머리를 감길 때 울었다. 욕조에 몸을 담그면 재미있게 놀았다. 결국 얼굴을 닦고 머리만 잘 감기면 아이는 즐겁게 목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방법을 생각해봤다. 사실 장모님이 목욕을 시킬 때도 아이가 운 적이 여러번이다. 아이가 싫어하는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반추했다. 어느 포인트에서 아이가 불쾌한 것인지 알아야 했다.


답은 세안이었다. 기존에 아이를 씻길 때는 옷을 벗기고 기저귀만 남겨둔 채 마치 분유를 먹이는 자세처럼 품에 안았다. 그러니까 아이 얼굴을 천장을 향하게 되는 자세다. 그리고 부드러운 면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 얼굴을 닦는다. 세안이 끝나면 머리도 감긴다. 역시 면 수건을 물에 적셔 머리에 물을 묻힌 뒤 샴푸를 하고 행궈내는 과정이다.


그동안 이 과정을 소화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울고불고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통에 제대로 얼굴을 닦이지도, 머리에 남은 샴푸를 닦아내지도 못했다. 아이는 분명 같은 자세로 닦였을 때 물을 먹었던 기억을 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새로운 기억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목욕을 하는 건 아빠와 함께 하는 즐거운 놀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아주 작은 변화를 줬다. 10개월째 였던 아이는 물건을 잡고 설 수 있었다. 화장실에 있는 욕조 테두리를 잡고 서게 했다. 그리고 욕조 안에는 아이 목욕용 노란 욕조를 넣고 물을 받았다. 그럼 아이는 욕조를 두손으로 잡고 깨금발을 한 뒤 노란 욕조에 물이 담기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아이가 집중하는 사이 나는 아이 옷을 벗겼다. 기저귀만 남겨둔 채 부드러운 면 수건을 물에 적셔 아이 얼굴을 닦았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큰 효과를 얻었다. 아이는 그렇게 얼굴을 닦는 걸 놀이로 느꼈는지 한 번 닦일 때마다 혀를 내밀곤 소리내어 웃었다.


남은 건 머리 감는 일이었다. 머리 감을 땐 역시 분유 먹이는 자세를 취했다. 아이를 안고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면 수건으로 머리를 적셨다. 그동안에는 우는 아이 때문에 빨리 머리를 감겨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 허둥지둥했던 게 사실이다. 아이도 사람이니 허둥지둥하는 부모의 손놀림을 느끼며 불안하고 무서워서 더 울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침착하게 눈을 마주치고 얘기를 건네며 목욕을 시키니 아이는 울지 않았다. 때론 발장난을 치며 이 순간을 즐기기도 했다. 이제 아빠 품을 편안하게, 믿음직하게 느끼고 있는 게 확실해보였다. 그 다음은 너무나 쉽다. 기저귀 벗기고 욕조에 받아놓은 물에 담그면 된다. 물에 뜨는 오리 장난감 한 개, 온도계 하나, 비누 받침 하나 정도 넣어주면 20분 이상 열심히 논다. 가만히 지켜보면 된다.


처음엔 아내와 나 둘이 붙어서도 진을 뺐던 목욕은 이제 나혼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목욕을 시키는 일 때문에 겁이 나지 않는다.


우리 아이도 목욕을 하러 가기 위해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가면 이내 까르르 웃으며 따라온다. 그 다음은 우리 부자가 정해진 순서대로 목욕을 하면 그뿐이다. 목욕을 즐겁게 하면 아이는 밤잠도 잘 잔다.

 

‘침착하게 아이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


이렇게 나만의 육아 대원칙을 세워놓고 각 부분에 적용을 하니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렸다. 평정심을 잃으면 될 일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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