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책을 거르지 않고 고르기로 했다

은유 <쓰기의 말들>

by 아코더

<출판하는 마음>을 빌려 읽고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는 은유 작가님에게 홀딱 반했다.

<쓰기의 말들>을 읽고 '쓰기의 세계'에 들어오겠다고 한 글밥님의 평을 읽고 북킷리스트에 넣어둔 책이었다. 검색해보니 효리네 민박에서 무려 ★박보검★이 읽은 책이라 하니 안 읽어 볼 수 없겠다 싶어 도서관에서 급히 찾아 냉큼 대출해 왔다.



p 33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뒹굴더라도 연꽃 같은 언어를 피워 올린다면...


어... 어... 어...??

작가님, 벌써부터 클라이막스를 주시면 어떡하나요.







p 91 소설가랑 시인이 술을 마시면 소설가는 자정쯤 귀가하고 시인들은 동틀 때까지 있다고 한다.

공감이 가는 문장이었다.

방황기였던 20대 중반, 시집을 많이 사고 알콜로 적셔진 뇌로 읽었다. 그 시집들은 자취방을 이사 다니며 버렸는지 어디 갔는지 찾을 수도 기억 속에도 없다. 올해는 철 들어(?) 시집을 읽고 필사도 해 봐야지.

2021년 첫 시집으로 정소민 배우가 북유럽에서 추천한 정현종 님의 <섬>을 점찍어 뒀다.


p 107 나는 일부러 어두운 정조의 책을 고른다.

'고'른다 가 아니라 '거'른다 라고 생각해 왔다. 뒷내용을 이어서 읽다 보니 그 이유가 콕 와 닿았다.


p 107 왜 슬픈 책을 읽느냐는 항의는 나는 슬프다는 인정이고 슬픈 사람은 할 말이 많게 마련이며 거기서부터 글쓰기는 시작된다.


회사에서 괴로울 때 글이 잘 써진다. 집안에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오랜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고 한참을 통화했다. 글 속 문장이 주는 의미를 삶에서 깨닫는다. 글과 삶이 연결됨을 느끼는 짜릿함이랄까. 어두운 정조의 책을 거르지 않고 고르겠다.



더블캐스팅 차지연 호프

슬픈 곡을 듣고 울렁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글을 쓸 때도 잘 써진다. 특히 더블캐스팅 이라는 예능 프로를 통해 들은 곡 차지연 님이 부르는 호프, 김지훈 님이 부르는 '내가 술래가 되어'를 들으며 비공개 일기를 쓰기도 했다. 종종 다시 들어도 눈물이 나는 이 곡을 들으면 시가 쓰고 싶어진다.



'마감'이라는'시간의 감옥'
p.129 마감이라는 시간의 감옥이다. 오도 가도 못하고 한 글자씩 심어 나갈 때 열리는 글 숲이다.

아바매글을 하며 '마감'이라는'시간의 감옥'에 들어왔다.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또 한 번 허벅지를 탁! 때렸다.



p 165 댓글 달기가 감응 근육 형성, 순발력 향상에 일조하더라는 임상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배우는 학인에게 당부한다. 과제하기는 기본이고 후기 쓰기와 댓글 달기가 의외로 중요하다고.

브런치 글, 블로그 글에 댓글 달아 주는 글벗들이 반갑고 소중하다.



"제가 고양이 세 마리 반을 키워요."


애묘인의 길냥이 이야기를 보고는 피드에 길냥이 사진이 생각나 길냥이 관련 꼭지를 찍어 글벗 만보언니에게 인스타 메시지로 보냈다. 책을 읽으며 한 사람이 생각날 때 괜스레 뭉클하다.


p 173 관계의 가난은 경험의 가난이며 언어의 가난이다.

작년 독서모임을 할 때 아바매글 글벗 한 분이 '독서 모임은 사실 조금 수단이고 좋은 친구 만들고 싶어요. 사심 가득.'이라고 얘기했다. 공감했다. 코로나 탓에 지긋지긋한 '관계의 가난'을 겪었지만 아바매글이 있었기에 '관계의 가난'을 면하고 '언어의 가난'을 면해 쓰는 삶을 살 수 있었다.



p 207 내가 상추를 먹으면 아기가 초록색 똥을 싸고 내가 김치를 먹으면 빨간색 똥이 나왔다. 머리도 몸의 일부니까 섭취한 것에서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문장을 두고 같이 사는 반려자 H와 입씨름을 했다. 육아 경험이 없는 나와 H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H는 말이 안 된다고 글 쓴다는 사람이 이런 걸 믿어서 되겠냐고 했는데 정말 그런 건가.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좋은 책 <쓰기의 말들> 서평 마지막 문장이 초록 똥 빨간 똥 이야기로 되어 버렸구먼.






몸-글의 유연함을 되찾기 위한 사유의 체조를 하는 심정으로.

<쓰기의 말들> 104개의 칼럼 중 98번째 칼럼 페이지를 넘길 때 나는 마치 재밌는 드라마가 연장되길 바라는 마음처럼 이 책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사정없이 마음에 드는 문장에 플래그를 붙인 책 옆구리를 보고는 도서관에 반납하지 말고 잃어버렸다고 해버릴까. 싶더라.





<쓰기의 말들> 참 읽기 잘했다.


★★★★★ 별이 다섯 개!



| 필사노트 기록 문구용품 |

펜 : 모나미 FLIP 3 0.5 mm, ZEBRA 사라사 빈티지 클립 진회색 0.5 mm

노트 : 몰스킨 포켓 소프트커버 플레인

형광펜 : 다이소, 프릭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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