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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Jan 24. 2021

회사동료들에게 퇴근 후 책읽고 글쓴다고 왜 말을 못할까

경력직 기혼여성의 쑥스러운 이중생활


퇴근 후 뭐하냐, 주말에 뭐하냐

라는 회사 동료들 물음에 대답하기 쑥스러운 사람, 바로 나다.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 하냐고!


라고 외치는 파리의 연인 드라마 남자 주인공 박신양이 떠오른다.






쑥스럽다고요


퇴근 후 뭐 하냐는 물음에 대충 뭉개 답하는 나,

프로필에는 버젓이 '퇴근 후 집현전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어요.'라고 써 놓고는 '그냥 집안일 하다가 쉬어요.'라고 대답하는 나.

왜 그러냐 물으신다면 '쑥스러워서'라고 답하겠다.  

같은 감정선이라 말하기에는 파리의 연인 드라마의 그것과는 결이 살짝 다르지만.

도대체 왜 나는 글을 쓴다고,책을 읽는다고 말을 못 할까. (간밤에 고민되어 글로 남겨본다.)




문행불일치


스테르담님이 쓴 브런치 글 '글쓰기를 직장 또는 동료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 것'을 읽고 공감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내 비치는 내 글이 혹시 웃음거리가 될까 염려하기도 모자라 직장 동료가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민망하다. 자기계발 성격의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어 놓고는 혹시나 '문행불일치'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저했다. 혹자는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할까 봐. 여전히 퇴근 후 글을 쓴다고 말하는 것이 당당하지 않다. 삶은 당당한데 글을 내어 보이는 건 왜 당당하지 않을까. 정말 쑥스럽다.



직장인은 고3과 다르다


아직도 종종 고3이 된 꿈을 꾼다. 대학 입시를 앞둔 상태에서 불안과 씨름하며 사는 하루하루가 내게는 버거웠나 보다. 지금까지도 꿈에 나오는 걸 보면. 시험날이 임박해서 밤늦게 까지 공부해 놓고는 시험 날 아침 친구들에게는 "나 집에 가서 바로 잤어. 공부 하나도 못했는데 어쩌냐." 라던 연장선이랄까.

이제는 충분히 경쟁에서 자유로운 직장인인데, 월급 들어오면 입에 기름칠도 해 주고 사는데 왜 글 쓴다고 말을 못 할까. 왜 책 읽는다고 말을 못 할까. 왜 유튜브 촬영해 본다고 말을 못 할까. 왜 자기계발 한다고 말을 못 할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내가 뭘 하든 관심도 없을 텐데 말이다.



회사동료 중에서 동류를 찾을 수 있을까


이직을 하고 1달이 좀 넘었을 때 나는 TFT로 발령이 나서 본사 밖 TFT 조직에 있는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게 되었다. TFT 구성원 중 한 분과 이야기하던 중 그분이 주말에 책을 읽으신다고 해서 반가웠다. 전자책을 주로 읽는다고 하셨다. 그 부장님이 다시 보였다. 그룹사 전자도서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를 알려 드렸다. 그 전자도서관을 접근하기가 영 까다로워 메일로 정리해 알려 드렸다. 그리고 그 내용을 밥을 몇 번 같이 먹었던 TFT 인원 몇몇에게 [비업무] 메일로 공유했다. 메일을 받은 사람 대부분은 그 메일을  빛삭(빛의 속도로 삭제) 했겠지만 그중 한 과장님이 메신저를 걸어왔다. 이 후로 그 과장님과는 친해지고 싶어 종종 메신저로 안부를 전한다.


출근해서 오프라인 공간에는 회사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지만 온라인으로는 끊임없이 글벗들과 소통한다. 글벗들과 함께 하는 세상은 회사와 전혀 다르다. 글벗들은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 즐거움을 카톡방이나 댓글 속에서 나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취미가 '독서'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왕따가 될 것 같다. 혹여 책 읽는다고 했다가 무슨 책을 읽냐는 추가 질문을 받기라도 한다면 더욱 뒷걸음질을 칠 것 같다.


8할 이상이 30-50대 아저씨들로 바글거리는 내가 속한 직군은 더욱 그렇다. 대표적으로 집에 같이 살고 있는 반려자도 나와 같은 직군인데 참 다르다. 책 읽는 사람이랑 같이 살면 반려자도 책을 읽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

집 바깥에서 만나는 아저씨들에게 책 읽고 글 쓴다고 말해봐야 나를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보진 않을까 싶다. 어휴. 순순히 책 읽고 글 쓴다고 대답했다가 집에 가는 지하철 내내 후회하고 잠 못 자며 이불킥할 모습이 상상된다.





1250원의 행복


종로3가에서 광화문까지 1정거장 이지만 사무실부터 광화문까지 걸어가기엔 멀다. 보통 때는 서울 시민의 발 따릉이를 타고 가지만 영하 10도 추운 날씨에는 힘들다. 지하철 1250원을 지불하는 플렉스를 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맞바꾸어 광화문 교보문고에 빠르고 안전하게(?)  수 있다. 교보문고 디퓨저 향을 맡으며 서점에서 산책하며 책등을 보고 이 책 저 책 살펴보는 지적 유희를 즐긴다. 또래로 보이는 직장여성을 보면 괜히 말 걸고 싶어진다. 무슨 책 읽냐고 그 책 좋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멀찍이 안 본 척 애쓰며 책 표지를 훔쳐 본다. 저 언니(언니가 아닐 수도 있음)도 직장인일텐데 퇴근 후 서점까지 와서 무슨 책을 읽을까 하면서 말이다. 서로 말도 안 걸고 눈도 안 마주치지만 동류들 속에 있다는 생각에 서점에 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1250원인가.


코로나로 회식도 없고 친구들 모임도 뜸해졌다. 대신 책을 만나고 글벗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어쩌면 잘 된 셈일까. 경력직 기혼여성인 나로서는 코로나가 끝나 회식이 잦아지거나 하면 지금보다 개인적인 시간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든다.


코로나 전후, 직장인의 여가 시간은 어떻게 달라질까. 코로나가 끝나기 전, 나는 퇴근 후 책 읽고 글 쓴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글을 모아 책도 쓰고 싶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려나.





<청춘의 문장들>에서 읽은 문장이 한동안 마음을 울렁여 이 문장으로 이 조잡한 고민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업무상 만나는 인간이란 참 서로에게 쓸쓸한 존재다.



내일도 또 쓸쓸한 하루가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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