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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Feb 08. 2021

생애 첫 독서모임에서 만난 다단계


여의도에서 근무하던 시절, 아마 한 4-5년 전 쯤 일이다.


'소모임'이라는 어플을 통해 크리스찬 독서모임에 참여 다. 나는 크리스찬이고 독서를 좋아하기에 자연스레 '크리스찬 독서모임'이 관심이 갔다. 독서모임 장소는 사당역 14번 출구 근처 한 카페였다. 카페이름이 '그루나루' 였던가.


독서모임에 크리스찬 형제 자매 10명 쯤 모였다. 그 중 한 자매가 나에게 연락처를 물어봤다. 카톡으로도 충분히 연락이 가능한데 굳이 전화번호를 초면에 물어보는 것이 어색했지만 열린 마인드 였기에 순순히 알려줬다.


며칠 후, 그 자매에게서 계속 연락이 왔다. (나는 여자임) 호감 가는 인상이라는 둥 어쨌는 둥 추파를 던졌다. (거듭 말씀드리지마는 필자는 여자임.) 어째 이상했다.




2 때 나를 벽에 밀치고는 '너, 마음에 든다.' 라고 요상한 멘트를 날린 여자 선배가 머릿속을 스쳤다. (필자는 여성이며 여자중학교를 나왔음) 왜인모르게 홍대 클럽에 가서 춤을 춰도 여자들이 나를 에워쌌다. '왜 나는 동성에게 인기가 많은 걸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이야 이 이야기를 두세문장 정도로 짧막히 남기지만 사실 복잡미묘했고 때로는 죽고 싶은 감정이 뒤엉키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빠져나왔지만.)



아무튼 그녀가 나를 만나러 여의도에 왔다. 여의도역 3번 출구 하나은행 건물 2층에 있는 (지금은 없어진) 할리스커피 였다. 기억이 날 듯 말듯 한데 강력하게 기억나는 건 버건디에 가까운 짙은 빨간색 코트를 입었고 김칫국물색 립스틱을 발랐던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김대리인 나에게 프리랜서 같아 보이는 그녀는 매우 신선했지만 도무지 왜 나를 만나러 여의도까지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크리스찬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이었으니까. 하고 의심의 커튼을 거두려던 찰나에.



그녀가 다단계 냄새를 풍겼다.

강남 어디에 가서 교육을 받자는 둥, 단계 별로 받을 수 있는 교육이 있고 돈도 많이 벌수 있다. 멤버쉽인지 뭔지가 쌓이면 몇 배로 벌 수 있다며 나를 만난 그 짧은 시간안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냈다.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절대 하면 안된다' 는 아버지의 세뇌를 받은 나로서는 단번에 촉이 왔다. 이 사람은 필경 사기꾼이다. 그 때 부터 철판을 깔고는 '알겠고 돌아가시라.'고 했다. 나도 회사에 다시 들어가봐야 한다고.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커피를 내가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빚 기분이 들어 그 사람의 다단계 물건 뭐 하나라도 사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을 거다.

아무튼 그녀는 돌아갔고 나는 회사에 도망치듯 들어갔다. 야근 하고 있는 동료 에게 방금 있었던 이야기를 속사포로 뿜었고 동료는 나를 진정시켜줬다. 나는 애써 진정하며 집으로 가는 5호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늦은 저녁에 마신 아메리카노 때문에 새벽 2시가 넘도록 잠을 못잤던 그 날 밤을 잊지 못한다. 방금 책에서 <독서모임> 키워드를 보고는 불현듯 그 날이 생각나서 이 글을 단숨에 써보았다.


어쨌든 그 후 두번째로 간 독서모임인 <아바매글 독서모임> 은 신선한 기쁨이었고 지적 즐거움의 장 이었다. 2월에는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독서모임을 한다. 2월에도 읽기로 결심한 책 더미 위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꺄아-!




(글 삭제를 잘못 눌러 다시 씁니다...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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