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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Apr 21. 2021

공학을 전공한 여성으로 산다는 것

4월 21일 과학의 날, 오늘도 해결하는 하루 되십시오


과학을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공학도 포함할 수 있을까. '공학의 날' 이란 건 없으니 '과학의 날' 여성 공학자의 주저리를 풀어본다.



유년시절에는 책을 멀리하고 숫자계산을 가까이했다. 3살 터울 오빠가 구구단을 외울 때 요상한 경쟁심리로 구구단 노래를 따라 부르던 내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는 버스 타고 1시간 쯤 가야하는 대형 학원에서 칠판 지우는 아르바이트(사서 고생) 해가며 고등학교 수학강의를 들었다. 수학이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수험시절에 쓰던 스터디 플래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울한 날에는 수학문제를 풀어봐! 신나게!'


엄마는 아직까지도 이것이 이해가지 않음 반 자랑스러움 반 인지 농담처럼 여기저기에서 말씀하신다.




2008년, 대학에 입학해 여성이 몇 없는 공과대학에서 여성들끼리 똘똘 뭉쳐 4년을 살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내가 본 공대여성들은 결이 비슷했다.


강철공대 라는 기상에 맞게 남성 무리 속에서 분투하는 나날을 보내며 다져진 습성이랄까.


호탕함이 한 숟갈 더,

감성은 한 숟갈 덜

그러면서도 전투력은 한 꼬집 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사랑받는, 어쩌면 제3의 존재, 공대여성이 탄생한다.


공학용계산기가 놓여진 책상


벽돌 같은 공학 전공 책에는 외계어가 난무하는데, 기술사를 공부하며 다시 책을 펼쳤을 때 어떻게 이 공부를 했었나 싶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때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기숙사-도서관-공학관을 오갔다.


화학공학 2학년 필수 전공 중에 '물리화학' 이라는 과목이 있다. 중간고사를 4월 중순, 기말고사를 6월 초에 다.

어느 날 교수님이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내 이름과 학번을 부르셨다.


"65점!"


1등이었다. 평균점수가 30점대인 물리도 아니요 화학도 아닌 물리화학은 풀기 어려운 4개의 계산 문제로 중간, 기말고사가 출제된다.


어쩌면 나는 그 재미없는 과목을 사랑했을까. 는 아니고.

납득이 되지 않는 이론을 자연스레 흡수, 아니 세뇌시키기 위해 얄딱구리한 냄새로 공기질이 저하된 공대 도서관(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답을 찾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려 대던 스물한 살 청춘의 시간에 대한 보상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이과를 선택할 당시, 여학생 6개 반 중 2개 반이 이과였고, 공과대학에 진학했을 때는 거의 20% 미만이 여성이었다.


건설회사에 입사하고서는 여성을 만나면 반가울 정도인데, 그마저도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없어지는 추세인지라 더욱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는 신세다.


공학계열 전공자가 모인 건설회사에서 여성 엔지니어로 한자리 차지하려면 왠지 모를 불합리와 차별인지 역차별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구린 상황들을 감내해야 한다.


여자화장실이 없는 불편을 감수함은 물론이요. 어딘가 모르게 무시받는 듯한 느낌에 언제든 드러낼 수 있는 발톱을 티 나지 않게 숨겨두는 것은 필수다. 남자직원들과 점심을 먹을 때는 15분컷으로 폭풍흡입을 하기 위해 토크는 삼간다.


이런 상황에서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가 찾아온다면 여성 엔지니어가 떠안아야 할 숙제는 더 많아질 테다.



대학을 졸업하고 화학공장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링 일을 한 지 10년이 되었다. 칼국수집을 10년 하면 맛이 보장 될 것 같은데, 엔지니어링으로 밥 벌어먹은 지 10년 되어도 어째 모르는 것 투성이다.

 

끓이고 (Boiler)

식히고 (Cooler)

섞고 (Mixer)

옮기고 (Pump)

쏘고 (Compressor)

조절하는 (Valve)


열과 물질 전달로 가득 찬 틈 바구니에서 완성된 화학공장을 상상하며 여전히 분투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전언을 본다.


오늘은 4월 21일 과학의 날이니까요. 찡끗.


대한민국 모든 과학자, 공학자들이여.

오늘도 해결하는 하루 되십시오!



덧.

'세계 공학의 날'이 있다고 하네요.

                                                      

유네스코는 3월 4일 세계 공학의 날에 유네스코 공학보고서를 발간했다. 2010년 첫 발간 이후 10년 만에 두번째로 보고서가 발간된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지역의 저자들의 기여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공학의 혁신 및 조치의 단면을 보여주며,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 각각을 달성하는 데 있어 공학의 역할을 강조하고, 엔지니어의 참여가 왜 중요한 지에 대해 설명한다.


유네스코는 2019년 11월 40차 총회에서 매년 3월 4일을 ‘세계 공학의 날’로 지정하고, 현대 사회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완화하고 지속가능발전을 이행하는 데 있어 공학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특히 공학 분야에서 여성에 대한 장벽들 때문에 여성 엔지니어가 부족함 등에 대해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본부소식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https://www.unesco.or.kr/news/latest/view/63/pag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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