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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May 12. 2021

힙해보이고 싶은 엔지니어의 모닝 루틴

현실적인 오오티디



은행원이나 승무원에게 유니폼이 있듯,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와 운전원들에게도 유니폼이 있다.



전에 수행한 프로젝트 현장은 여수 화학 단지 안에 있었는데 도면이나 안전 관련 회의를 하러가곤 했다. 때로 현장 견학 (Sight Servey라고 한다) 하러 가는 날에는 장에 직접 들어가 물이나 가스가 공급되는 배관, 독성 물질을 저장하는 압력용기와 전기/계장 시설이 모여 있는 실내 설비 등을 둘러 보기 위해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신어야 했다.




현장에서 만난 직원들은 모두 펑퍼짐한 청남방 청바지, 이름하여 청청 차림의 유니폼을 입고 근무한다. 그래서 현장에 출장 갈 때는 괜한 이질감을 유발할 세라 드레스코드에 맞게 현장 스타일로 터프한 여자 사람인 척 입고 가곤 했다.



하지만 내심...


핑크색 쉬폰 원피스를 입고, 길게 내려오는 귀걸이를 끼고, 눈두덩이에는 잔잔한  아이섀도를 얹은, 목소리 톤은 높고, 발음은 소녀같이 귀엽게 하는 나를 꿈꾼다. 그러나 그렇게 여성미를 뿜뿜 했다가는 술자리의 안주거리가 되겠지.


 조차도,


타 부서 여자 후배 짧은 하의를 입었을 때 수군대고, 그녀가 몇 캐럿쯤 되어 보이는 다이아 반지를 손에 꼈을 때 이러쿵저러쿵 어줍잖게 그녀에 대해 떠들어댔다. 나도 여자면서 그런 겉속 다른 묘한 짓을 하는데, 내가 그 대상이 될 순 없지. 청청 패션 까지는 못하더라도 드레스코드는 눈치껏 맞춰주는 거다.


사무실에서는 청바지까지는 아니어도 편안한 비즈니스 캐주얼의 차림으로 꼰대와 꼰대 사이를 넘나들고, 현장에 갈 때는 구두를 신지 않는 정도의 센스.





조승연 작가가 그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는 심쿵한 적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패셔너블한 커리어우먼 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굉장히 멋져 보여서 그 점이 감사하다는 이야기였다.


영상을 보고 나도 그런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훗날 그런 엄마가 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이후로 나에게는 모닝 루틴이 생겼다.



아침마다 오오티디*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다.

*오오티디란? '오늘 입은 옷차림', '오늘의 패션'(Outfit Of The Day의 준말로, 당일 또는 특정 상황에서 입은 자신의 옷차림을 촬영하여 소셜미디어 등에 업로드하는 행위


살짝 timelyphoto 폴더를 열어본다.




행여 후줄근해 보이거나 아니면 지나치진 않은지, 직장인에 걸맞은지, 회의가 있다면 그에 맞는 차림새 인지 거울에 비친 나를 살핀다.



옷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가지고 있는 베이직한 옷과 컬러가 들어간 옷을 믹스매치하고, 몇 가지 악세사리와 신발, 잡화로 드레스업 해본다.



출근길 같은 시간, 같은 거울 앞에서 옷차림만 다른 채 한컷을 남긴다.


 나에게 어울리고 편한 착장을 발견하고 청결한 의복생활을 유지한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봐도 꽤 편하게 어우러지는 착장을 한 날이면 그렇게 기쁠 수 없다.



크롭 티셔츠, 하늘하늘한 쉬폰 원피스까지 입을 용기는 없더라도 내 기준에 힙한 느낌으로 착장한 오늘도, 힘찬 발걸음으로 출근하고, 기쁜 마음으로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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