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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Nov 03. 2021

오랜만에 찾아간 자취시절 그 동네

아무튼 당산동이 될까

재택근무를 하면서 점심시간을 여유롭게 확보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집을 빠져나가 동네를 산책하며 인구 밀도가 적은 평일 오후의 평화를 만끽한다. 5년 전 자취하던 당산동3가가 지근거리에 있어서 오랜만에 그 골목으로 향했다.

당산동에서 살던 시절, 퇴근 후 종종 끼니를 해결하던 분식집이 있었다. 자취방에서 100걸음도 채 되지 않은 거리에 있는 '당산 분식'이었다. 떡튀순을 조금조금씩 사가곤 했는데, 나 같은 1인 가구가 사러 가도 먹기 좋을 양만큼 따로 팔기도 했다. 가격도 착하고 주인 내외분도 서글서글했다.

자취하던 몇 년 전 어느 퇴근길에 떡볶이와 튀김 3개를 주문해서 포장해 가려고 당산분식에 들렀다. 사장님 내외가 운영하셨는데 업무 분담이 잘 됐다. 아내분은 안에서 주문받은 요리를 했고 남편분은 서빙과 계산을 맡았다. 한 손님이 와서 내 옆에 서서 포장을 기다렸다.  그 손님은 여기 오래된 집이냐고 물었고, 사장님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여기서 장사하면서 애들 대학까지 보냈어요~"
귓동냥으로 대화를 들으며 이 집이 참 오래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혼 후, 자취 생활을 청산하면서 건너편 동네로 이사를 갔고, 전처럼 당산분식에서 떡튀순을 사러 가지 않게 되었다.

추억의 당산분식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궁금했다. 당산분식을 향해 가는 길에 있던 닭갈비집은 프랜차이즈 한우집으로 바뀌어 있었고, 종종 물회를 사 먹던 횟집은 순대국밥집으로 바뀌어있었다. 대부분의 상점이 변해 있어서 서운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당산분식이 있던 당산동 성당 앞에는 당산분식도 없었다. 내가 이사를 가고 나서 많은 사람들도 이사를 갔구나, 세월의 흐름 앞에서 왠지 서글픔을 느끼던 찰나에, 웬걸! 당산분식이 건너편에 더 넓은 자리로 확장 이전을 한 것이었다.

심지어 가게 안에는 점심을 먹으러 온 손님도 바글바글 했다. 홀이 좁아서 주로 포장해 가는 손님이 많았는데 확장한 '뉴 당산분식' 에는 테이블도 4개가 넘게 들어차 있었다.

역시! 성공했구나. 당산분식. 그 전에도 10년을 넘게 있던 한 두 평 남짓의 당산분식이 이제는 당산동3가 골목의 센터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샤이 단골이었지만, 몇 해가 지나도 변함없이 있어 준 당산분식이 고마웠다. 앞으로도 당산분식이 그 자리를 오래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너편 카페 디셈버 에서 당산분식을 지긋이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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