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는 안 보이는 방송작가 이야기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by 아코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눈물이 많다.

얼마 전 <너를 만났다2> 라는 다큐를 보면서도 꺼이 꺼이 울었다. 웃기도 잘 웃는다.(왠만한 개그에 잘 웃는(?)편) 그렇게 웃기도 울기도 잘하는 내가 이 책을 단번에 읽지 못했다.

어떤 책은 너무 재미있어서 한번에 읽어버리기 아까울 때가 있다. 그래서 일부러 천천히 읽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그냥 그렇게 음미하면서 읽으면 된다.
<2000자를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에세이는 읽는 내내 재밌어서 깔깔대고 웃으며 단숨에 읽었다면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는 나를 들었다 놨다 해서 한번에 읽을 수 없었다. 콧물까지 흘리며 (비염때문에 콧물이 잘 남) 울다가도 깔깔대며 웃기를 롤러코스터 타듯이 반복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군이 있다. 그 중에서도 글 쓰는 직업군에는 소설작가, 시인, 에세이스트 등 수없이 많은데 방송작가는 새롭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중에서



'14년 차 방송작가 좌충우돌 생존기' 라는 요약이 참으로 절묘하다. 감동과 재미를 주는 그러면서도 공감되는 방송작가 이야기를 담은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서평을 시작한다.




서브작가에서 메인작가가 되기까지

막내작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로 불린 지 벌써 꽤 오래전이다. 어쩌면 공룡과 함께 멸종됐다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89



책에서 재밌게 읽고 태깅한 부분을 다시 한번 훑어 보며 필사했다. 얼마 전 쓴 글 <'본캐'도 못 찾았는데 '부캐'가 웬말인가요.> 에서 신입사원이 안들어 온다는 이야기를 썼다. 같은 사실의 내용인데 '공룡 멸종'이야기를 넣으니 한층 느낌이 살아난다. '글로 밥벌어먹는 여자'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시간에 쫓겨 아침 생방송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잠을 내쫓아야 했고, 굳어 있는 머리를 세 배는 빨리 돌게 해야 했다. 담배가 부스터쯤 되려나, 담배 맛을 모르는 나는 커피로 수혈하며 머리 위로 피를 길어 올렸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127



'아침 생방송'이라 하니 더욱 긴박한데 그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스케쥴과 퀄리티 사이에서 허덕이며 그야말로 밀림에서 '생존'하는 방송작가 생활을 경험하니 어찌 필력이 좋지 않을 수 있을까.



퇴고는 사치였다.혼돈의 카오스로 완성된 원고 다발을 들고 떡진 머리로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 여의도 MBC요!"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128



이런 책은 처음이다.


책 홍수 속에서 '방송작가'만이 내보일 수 있는 문장이 담긴 책이 어디 흔한가. 내가 참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었다. '떡진 머리'라는 묘사가 리얼해서 뒷부분까지 죽 몰입하며 읽었다.



그저 웃어넘기기엔 너무 묵직해서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가슴팍이 욱신거리는 일도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생이 원래 그렇다. 인생은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를 토해내는 자판기가 아니다. 자판기도 가끔은 오류가 나서 발로 뻥 차 줘 야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훌훌 털고 잊어버려라.'는 무성의한 조언이 여전히 유효한 지도 모르겠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153



인생은 정말 동전 넣으면 음료수를 토해내는 자판기가 아니다.

필사 하며 문체를 닮고싶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유튜브는 덕후들의 성지입니다. PD가 출연자를 고용해서 대본을 주고 만드는 콘텐츠가 아닌 출연자가 PD이고 작가인 콘텐츠들이 돋보이죠. 내가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콘텐츠 주제에 내가 덕 질을 하고 있을 때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그뿐만 아니라 방송피디와의 인터뷰를 담은 글이 담긴 별책 부록을 읽는 재미가 있다. 텔레비젼을 통해 보는 세상 속 사람들 간 이야기를 담은 책, 또 있을까.




조무래기 시절 학교 앞 분식집에서 컵볶이 사 먹던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161



학창 시절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조무래기 시절이라니 이 얼마나 귀여운 표현인가.




말로 맞았는데 희한하게 실제로 몸이 아팠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212





곤장을 맞았다라는 도입부 부터 흥미로웠는데 말로 맞고 몸이 아픈 경험을 실제로 나도 해 보았기에 격한 공감이 되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면서 머릿속이 쩌릿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겨우 추스리고 다시 원고의 늪으로 기어 들어갔다. 나는 방 안에서 슬픔을 꼭 끌어안고 콩벌레처럼 웅크렸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215



오케스트라 연주곡이라 치면 클라이막스 부분이었다. '끌어안고' 와 '콩' 사이에서 나는 한참 목이 메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아재들로부터 듣는 말 가운데 상처받을 때면 정말 콩벌레처럼 웅크리게 된다.




남자친구는 반차를 쓰고 경주까지 한달음에 왔다. 나의 진면목을 몰라보는 시피도 피디도 병신이라며 함께 신나게 욕을 했다.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1년 후 우리는 부부가 됐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217



가장 힘들 때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과 정들게 되는 법이다.




퇴사 후 이직한 방송작가의 이야기

오늘도 남들보다 느지막하게 출근한 루팡씨. 컴퓨터 모니터에 여느 때처럼 업무용 창과 심심풀이용 유튜브 창을 동시에 띄워놓고 여유롭게 일을 시작한다. 멀티 테스터의 정석 답게 때론 패키지 여행 예약 화면까지 삼중창을 빠르게 오가는 손놀림.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227



ㅋㅋㅋㅋ회사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삼중창.



복수라도 해야겠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하지 않으리.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228



크크. 이 부분을 읽으며 마음껏 이 책을 추천해 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루팡라이프를 꿈꾸는 직장인 친구들에게.






어떤 책인가 유튜브에서 였던가. 책 한권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책의 첫 문장을 보라고.

그래서 첫 문장을 다시 읽어 봤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느릿느릿 거실로 나간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김선영 p 4


그래. 바로 이 모습이야.

내가 마음대로 상상하는 글밥 작가님의 미라클 모닝 루틴!



이 책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는 도서관 신간 도서 코너에서 보게 되었다. 첫 문장을 다시 읽으니 도서관에서 처음 읽었던 그 날의 설레는 감정이 생생하게 떠 올랐다. 재밌는 책을 만났을 때 두근거림 그런 것이랄까.






저자에 대하여

2020년 11월부터 아바매글을 하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있다. 가장 큰 도움이 된 분이 바로 이 책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저자 글밥 김선영 작가님.




10대에는 초상화를 그려주신 초딩 4학년때 김천우 선생님이 기억에 남고,

20대에는 현 직장에 오는데 동기 부여 해 주신 화공유체역학 교수님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지금 30대에는 글밥 선생님이 기억에 남을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30대를 4년 살아보니 그것도 무리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글밥 김선영 작가의 '글쓰기'책이 올해 3월 경 신간으로 나올 예정이라 하는데 기대가 된다. 그녀가 리드하는 모임 아바매글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쓰기)11기는 절찬 모집중 이라고 하니 글쓰기에 관심 있으신분들은 아래 링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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