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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과 퇴사 면담 후 팀장이 좌천됐다

쿨한 척 발언할 수 있는 기회, 놓치지 않을 거예요

by 아코더


인사고과를 주는 팀장 욕을 실컷 대놓고 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 바로 퇴사 면담 때다. 입사 면접 때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연습해 두듯 퇴사 면담을 대비했다. 임원과 팀장이 읽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에 퇴사 면담을 아련히 추억하며 이 글을 써갈겨본다.



시간을 거슬러 대리 나부랭이 시절, 힘든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업무 강도가 가장 높았던 해 였음에도 고과가 좋지 않았다. 고과는 업무강도 순이 아니라는 걸 아로 새겼다. 이의제기라도 할 요량으로 고과 면담을 한번 더 요청했지만 팀장은 "나 아니야."라고 칼자루 넘기기에 바빴다.



부들부들, 잊지 않으리.




1년 후, 팀장에게 사직서를 들이밀었다.




나의 퇴사 면담 이야기


마음속에 선과 악이 싸웠지만 끝내 악을 택했다. 이 날만을 기다리며 칼날을 갈아왔다는 듯 팀장에게 시니컬한 태도로 응수했다. 팀장과 말꼬리잡기 토크를 이어가다 보니 면담이 길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며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던 무드는 기억이 난다.


팀장면담을 하고나서는 관리자 면담을 했고 그 다음이 임원 면담이었다.


임원 면담을 앞두고 작전을 짰다. 내게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직이니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이전에 퇴사한 동료에게 족보처럼 전해 받은 예상질문은 이런 것 이다.


1. 퇴사하면 돈이 없을 텐데 어떻게 할 거냐?

2. 아쉬운 점이나 바라는 점은 없나?


심장이 마구 나댔다. 흔들림 없는 태도로 답하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약속한 시간에 회의실에 앉아 기다렸고 임원이 회의실로 걸어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총알을 발사하기에 앞서 음성 녹음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살포시 테이블 위에 올렸다. 혹시 해를 입을 수도 있을거란 생각에 둔 방어기재였달까.



예상대로 예상질문을 받았다.


1. 퇴사하면 돈이 없을 텐데 어떻게 할 거냐?


돈을 이용한 못된 회유책에 안알랴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말씀 드리기 곤란합니다."


여기서 눈을 내리깔고 말하는 게 포인트. 눈 똑바로 부라리며 얘기하는 건 임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임원님인지 임금님인지, 가끔 임원님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 보면 웃기다)

임원 아저씨는 흐트러진 머리를 빗어 올리며 "곤란하다..." 라고 했다.


2. 아쉬운 점이나 바라는 점은 없나?


이 질문은 99.9% 퇴사 면담 단골질문이다.묵직하게 한방만 전달하겠다는 작전이었다.

회사에 아쉬운 점이 뭐냐고요? 팀장이라고.



전달만 하는 우체부 같은 팀장,

윗사람 눈치만 보는 팀장,

아랫 사람들에겐 눈치 없이 술먹으러 가자는 팀장,

결정 안하는 팀장,

팀 업무에 관심 없는 팀장,

팀원 같은 팀장이었다.

그러면서도 쓸데 없는 코멘트를 시부리며 팀원들을 귀찮게 하기 까지.


소극적인 태도로 임했던 팀장의 구린 리더쉽을 꼬집었다.

팀장이 밉기도 했지만 친정인 첫 직장이 잘 됐으면 좋겠으니까. 남아 있는 동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고 싶었으니까. 이때 만큼은 소신껏 말할 수 있으니까.



퇴사 면담은 15분 정도로 끝났고 할 말을 다 했으므로 미련 없이 회의실을 나왔다.

내가 퇴사 하던 해, 그 전월에 1명, 그 다음월에 1명이 퇴사를 했고 그 다음 해에 팀장이 좌천됐다.


지나고 보면 미담만 남는다 했던가. 과거는 미화된다고 했던가. 전 직장 동료들로부터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문이 포슬포슬 들려오기 시작한다. (바뀐 팀장도 구리다는 얘기)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했던가.

팀장 아저씨도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아빠이자 남편일거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 팀장도 착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회사에 들어와 오래 회사생활을 하고 팀장이라는 계급장까지 단 사람들은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기에 인성이 쓰레기 같은 사람은 없다. 권선징악을 이야기 하려는 글은 아니다. 나의 퇴사 면담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이유는 <팀장은 '팀장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숱한 임직원 간담회를 해도 바뀌는 것이 없는 건 당연하다. 생업이 걸려 있는데 누가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가. 더 이상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않을 퇴사자 1명과의 면담이 수십명 모아 놓고 하는 임직원 간담회보다 낫다.


잔다르크 같던 그 날과 달리 이직 후 지금은 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플랑크톤 마냥 회사를 다닌다. 더 이상 퇴사와 이직은 없을거라는 굳은 다짐을 하며 오늘도 존재감 없이 존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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