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몰라봐서 미안합니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by 아코더

어린이 여러분, 미안합니다.



사실 나하고는 안 맞는 책이라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바매글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이라 하니 읽기는 해야 겠다만, 책 제목만 보고는 읽기 싫었다. 그런데 '김소영'이라는 렌즈를 통해 쓰여진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 자체가 미안했다.



필사노트와 함께 <어린이의 세계>를 다시 읽고 정리한다.



노트 : 몰스킨 포켓 무선 노트

펜 : 모나미 붓펜 / 유니볼 시그노 / 쥬스업 0.5

형광펜 : 다이소 빈티지 소프트 하이라이터 버밀리온





어린이는 순수하다


책을 다 쓰는 데 몇 시간이 걸렸느냐고 묻는 어린이도 있고, 팔 아팠겠다고 걱정해 주는 어린이도 있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아, 여기서부터 녹았나 보다. 내 마음.

"팔 아팠겠다" 라니...


밖에서 놀다 말고 집에 들어와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기 이름이 적힌 데를 찾아보고 다시 놀러 나가는 어린이도 있다고 한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다시 놀러나가는 어린이


리얼 묘사에 심쿵한다. 꾸며주는 말이 없는 문장에도 이렇게 심쿵할 수 있다니. 실제 상황이 어떤 그림 일지 그려지기에 더 심쿵이다.





어린이는 허세를 부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설 명절 때 유치원 선생님인 시사촌동생을 만나 '어린이들의 허세' 부분을 스마트폰 전자책으로 보여줬다. 역시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진짜 이렇다며, 책에 나온 사례 말고도 엘사 드레스를 입고 오는 남자 어린이(?)의 사례 등 허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이는 '사회구성원' 이다



41 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도 어엿한 사회구성원이므로 존엄한 개인이다. 저자는 여러 사례들을 들려주며 독자들에게 이 점을 심어준다.


58 “원래는 각자 천 원씩 내려고 했는데요, 도박으로 걸려서 경찰서 갈까 봐 그건 안 하기로 했어요.”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이 문장에 밑줄 그은 이유는 어린이가 '도박'이라는 단어를 말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도박 -> 경찰서' 때문에 ' 안 하기로' 결정한 어린이 무리가 퍽 귀엽다.




어린이는 '노느라 바빠야' 한다



놀겠다는 선언이 또 심장을 때린다.

'놀기'를 일과 중 하나로 정하는 어린이의 모습이 꽤나 신선했다. 그렇지, 어린이는 놀면서 푸르게 자라난다.



콤파스로 동그라미를 그려 만든 하루 24시간 시간계획표에 '놀기'가 들어간다. 어린이는 놀아야 한다. 두돌 안된 조카 하린이와 같이 놀 수 있어 행복하다. 사과나 귤 사이로 숨는 놀이, 투명한 베란다 샷시에 부딪히는 척 하는 놀이, 뽀로로 노래 부르기 같은 놀이는 그녀를 웃게하고 웃으며 자라난다.

(BGM :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어린이는 '몽글몽글' 하다.



'드래곤나물' 에서 빵 터졌다. 이렇게 어린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뭐랄까.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러우면서도 엉뚱하면서도. 아무래도 세상을 산 지 10년 된 사람 (=어린이) 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모습 때문일까. 아, 뭘로 표현해야 할까. '몽글몽글' 이라는 단어 말고는 내 짧은 어휘력으로는 도무지 뭐라 표현해야 할 지 알 수 없다.





보고 싶은 어린이 예능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 에 대한 글을 읽고 적잖이 공감했다. 개인적으로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대목은 심장 깊은 곳을 때렸다. 친정 엄마 아부지의 최애 프로그램인데 글쎄... (개인적으로 그 프로그램이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너무 잘 되어서 일요일 오후 예능이 될 정도인 듯. 그건 필시 손주들에 대한 할미 할비 시청자가 많아 그런거라 예상해본다) 지극히 개취(개인취향)라 취소선 긋습니다.



저자가 상상하는 어린이 날 처럼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영화나 콘텐츠가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말고. 어린이는 '감상'하는 존재가 되지 말아야 하니까.




어린이의 생각은 맑다


89 전에 옛 이야기 속 '젊어지는 샘물'을 얻으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은규는 "그런게 있을리 없죠."라고 일축했지만 재준이는 "아내하고 나눠 마셔요"라고, 우찬이는 "사업을 해요"라고 했다.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다.
김소영, 같은 책


젊어지는 샘물 부분을 읽고 반려자에게 물었다. 어벤져스의 타노스 기질을 타고난 반려자는 샘물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다소 탁한 생각인 반면, 어린이들의 생각은 맑다. '이상하게도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다.' 라는 저자의 문장을 읽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내가 사훈이니 뭐니 하며 재는 동안에
사랑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어린이로부터 내 쪽으로.
더 많은 쪽에서 필요한 쪽으로.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와의 대화는 '심쿵'이다


197 어떤 어린이는 내 인사에 야구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네, 안녕하세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절로 얼굴이 분홍색이 되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한다. 절대로 귀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평상시 만나는 남성의 평균 연령은 40세다.


10대 남성, 갓 틴에이지가 된 9세나 10세쯤 된 남자와 위와 같은 대화를 한다면, 나도 얼굴이 분홍색이 되고 입꼬리가 올라갈 테다. 숨길 수 없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글로 풀었다. 그래서 더 와 닿는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아이가 없는 기혼여성

친구는 엄마가 되어 어떤 삶의 순환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 바깥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방향과 속도가 다른 자리에 나와 친구가 있었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나 역시 아이가 없는 기혼여성이기에 저자 관점에서의 이야기가 더욱 공감됐다. 아이가 있는 친구와 대화 내용이라던지 여기저기(특히 별로 친하지도 않는 사람)에서 듣는 고나리라던지 말이다.


저자가 언급한 최지은 님의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도 궁금해진다.






총평


1. 어린이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푸하하하 라고 웃으면 같이 까르르 웃어주는 조카가 고맙다. 조카 하린이는 아직 유아지만 점점 어린이의 세계로 들어간다. 지금도 유명하지만 더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이 읽어서 사회/정책 부분에서도 영향을 주었으면 한다. 조카 하린이와 친구들을 위해서 말이다.



2. 전자책 읽고 서평 쓰기의 재미에 빠졌다.

어린이들의 속성과 어린이들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쓴 이 책,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읽어 보았는데 정말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투리 시간에 책을 더 자주 읽게 되고 무엇보다 스마트폰으로 시간 낭비를 안하게 된다. 책을 읽고 싶으니까.


특히, 처음으로 전자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데 이렇게 편할 수가. 해당 부분을 바로 긁어 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우하하.



3. 한국 에세이를 더 읽고 싶다.


에세이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이런 문체도. 이런 감성도 이끌어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 범위가 확장되는 기분이 들고 독서모임에 앞서 책 뿐만 아니라 에세이집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덮으며


저자의 책 중 '어린이책 이야기' 도 궁금해진다. 문체가 멋진 작가라 믿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믿고 읽는 저자 리스트에 김소영 님을 감히 올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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