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반차' 말고 '오후반차' 주세요.

'오전반차'내면 마음이 바쁘고 '오후반차'내면 설렌다

by 아코더

짜장면 드실래요? 깐쇼새우 드실래요?


라는 답이 꽤 명확한 질문을 드리고 시작합니다.


'오전반차'가 좋으세요? '오후반차'가 좋으세요?




반차는 연차수당의 절반을 하루 중 절반의 시간과 맞바꿔 회사라는 공간에서 구출해 줍니다.


제가 근무 중인 회사는 오전 8시부터 11시 30분까지를 오전 근무로 여기므로, 엄밀히 말하면 오전반차를 내고 쓸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30분인데요.


실제 사내 포털사이트에서 이렇게 관리합니다

하루 8시간 근무 기준, 오전 반차는 3.5/8=0.4375차, 오후 반차는 4.5/8=0.5625차 라고 매깁니다. (엔지니어링 회사 답나요?)


하지만 그냥 4시간으로 쳐보죠. 오전반차로 얻는 오전 4시간, 오후반차로 얻는 오후 4시간 중, 어느 시간을 갖기 위해 연차수당의 절반을 지불하시겠어요?




오후반차를 쓰는 날


오후반차를 쓴 날은 출근길부터 벌써 가볍지요.


'회사 다닐 맛 난다! 캬!'


오전을 버티고 동료들이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가방을 들고 회사를 빠져나올 때면, 도서관에서 하루 4시간씩 알바 하던 학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듭니다.


오후반차는 장점이 아주 많은데 3가지만 꼽아볼게요.

첫째, 4시간 + 알파의 효과

바쁠 적에는, 밤 10시까지 야근하다가 어느 날 7시에 퇴근 하면 근처에 있는 친구라도 만나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오후반차를 내면 야근 걱정 따위는 하지 않으면서 야근시간 까지 번 셈이니 가성비 갑이죠. 더욱이 4시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오전 4시간의 기분은 즐거운 쪽을 향합니다.


둘째, 미용실 할인 혜택

대개 미용실은 오전 11시부터 3시 사이에 평일 할인 이벤트를 많이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연차 수당의 시간만큼 할인을 받는다고 해야겠지요. 이렇듯 평일 오후 시간에는 가게에서도 손님을 끌어야 하는 만큼 혜택을 줍니다.


셋째. 한적한 평일 오후라는 사치

오후반차는 평일 오후의 한가로움을 선물합니다. 이왕이면 평소에 사람이 몰려 안 가던 핫플레이스나 맛집을 찾아 극진히 대접 받는 기회를 누립니다. 주말 같으면 사람이 바글거리는 한옥 카페도 혼자 가서 넓은 공간을 누리고 한적한 무드를 즐깁니다. 아마도 연차수당에는 그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셈일까요.




오후 반차는 을 위해 쓴다면 오전 반차는 주로 을 위해 씁니다.





오전반차를 쓰는 날


만약 제가 미라클 모닝을 즐기는 아침형 인간이라면 오전 반차를 선호할지도 모르겠어요. 새벽시간부터 정오의 애프터눈 티타임까지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허나 제가 오전반차를 쓸 때는 주로 급작스레 쓰는 경우가 많았어요. 오전반차를 내겠다고 상사한테 말할 때 짝꿍으로 따라붙는 부사가 바로 '부득이'였습니다. 웬만해서는 오전반차를 잘 내지 않았지만 주로 여행 갔다 온 다음날에는 '부득이' 쓰곤 했지요.(자매품 : '회식 다음날')



한번은 이탈리아로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아침 비행기로 돌아오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한 겁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인한 피로가 쌓인 몸을 이끌고 공항 터미널에 오니 택시가 간절합니다.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4만원이 넘어가던 미터기 속에서 힘차게 달리는 말이 아직도 생생히 그려집니다. 그리하여 갑작스레 택시비도, 오전반차도 내야 했던 날이었지요.


오전반차를 급작스럽게 쓴 경우와 계획적으로 쓴 경우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요. 계획하에 쓴 날에는 3시간 30분을 알차게 쉬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힌 채, 바삐 움직이는 시계 초침을 붙들겠노라는 심정으로 시계 눈치를 봅니다.


순삭한 오전반차를 뒤로 하고 사무실에 복귀하면 왠지 3시간 30분만큼 못한 일을 해내야 할 것 같은 기분까지 듭니다. 야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은 덤이죠.




수당으로 시간을 산 만큼 날씨, 이동 경로, 할인 혜택, 미세먼지 정도까지 꼼꼼히 챙기며 알차게 보내겠노라 준비합니다. 비행기표를 산 순간 부터 여행의 시작이라 하듯이 반차 결제를 올린 순간 부터 설렘이 가득하지요.

팀원들이 연차를 내면 엑셀에 쫙 정리해 두는 지독한 팀장이 있었습니다. 금요일에 반차 하나, 월요일에 연차 하나를 내면 토,일 까지 포함해서 총 3.5일 연차를 냈다고 어처구니 없는 셈을 했었지요. 어쩌면 금요일 반차를 자유롭게 내는 김 대리가 셈나서 였을테지요.


그나저나, 연차도 많이 남았는데 다가오는 주말, 날씨도 좋다는데 반차쓰고 떠나볼까요?


저는 깐쇼새우를 선호합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내일, 위즈덤 작가님은 '예쁘다'와 '매력있다'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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