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 곳간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by 아코더

부서 곳간의 열쇠를 쥐는 자에게 막강한 권력이 주어진다. 몽쉘을 사느냐 초코파이를 사느냐를 결정할 수 있고, 날이 추워지면 값이 조금 나가는 핫초코 미떼를 장바구니에 과감히 넣을 수 있는 권력이 바로 사원 시절에 자연스레 얻을 수 있는 절대 권력이다.


문구와 식품류를 함께 파는 오피스 디포에 가서 먹고 싶은 간식과 써 보고 싶은 필기구를 카트에 왕창 때려 넣고 내 카드인 양 법인카드로 긁는다.


"일시불이요."


양손 무겁게 들고 가더라도 팔이 아프지 않은 것은 내 돈 쓰지 않고 내 배 채울 때 느끼는 깃털 같은 여유에서 비롯한다.


사 온 간식들을 곳간에 넣어두고 노트와 필기구는 비품함에 넣어둔 다음, 유유히 내 자리로 돌아와 영수증을 반듯하게 접어 서랍 위칸에 고이 보관하며 임무를 완수한다. 그때, 후배들 밥 안 사주기로 유명한 짠돌이 신 차장이 바위 얼굴을 턱에 괴고 내 자리 파티션에 기대어 선다.


"저기, 샤프심 좀 있으면 하나 사다 줘."


500원짜리 샤프심 하나도 나에게 요청해야 살 수 있다. 신 차장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내가 사 와야지만 샤프를 쓸 수 있는 그 상황. 큰 바위 얼굴 신 차장도 몹쓸 귀요미로 납작하게 만드는 이 상황에서 내 파티션은 기름종이만큼 얇지만 견고하게 세워져 법인카드를 손에 쥔 자의 존엄성을 드높인다.


'크, 이 맛에 회사 다니지.'


스캔과 복사 같은 무쓸모 한 일들이 내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할 때마다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해 주는 이 순간, 바로 법인카드로 간식이나 사무용품을 구매할 때다. 한 달에 한번 팀원 모두에게 필요한 비품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메일을 보낸다. 팀장을 참조로 넣고 팀의 2인자가 된 마냥 오묘한 쾌감까지 느낀다. 지극히 공적인 업무이며 절대 사적인 개입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야무진 선언이다. 이런 일을 잔심부름쯤이라 여기기보다는 귀여운 비리와 횡령이 가능한 시간으로 바꿔 생각하니 좀 우쭐해 진다.


부장님 들이 좋아하는 맥심 커피믹스를 넉넉히 채워두는 것은 기본이요. 현미녹차나 메밀차로 시작하여 오미자차, 자스민차, 우엉차, 히비스커스, 루이보스티에 이르기까지 신제품으로 나와서 궁금하지만 값이 나가서 주저하게 되는 각종 티백들로 구비해 가득가득 진열한다.


오후 세시, 뜨거운 정수기 물을 따라 신상으로 들어온 얼그레이 티를 우려넣는다. 코끝에 스치는 알싸한 향과 심심하던 혀끝을 자극하는 차의 질감으로 배가 되는 차 한잔의 여유는 오후를 살게 한다. 좋은 것은 나눌 때 배가 되니, 구입한 차와 간식 목록을 잘 아는 만큼 친한 동료들에게 메신저로 알려주는 인심으로 팍팍한 회사생활에 다정함 한 스푼을 첨가한다.


작은 일도 도맡아 하는 열심을 보여 주는 것뿐 아니라 애프터눈티를 나누는 온정으로 자칫 노잼 시기가 될 수 있는 사원 시절을 묵묵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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