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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Nov 06. 2021

책 안 읽는 남편, 책 읽게 만드는 방법

1년에 최소 50권의 책을 읽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1권을 읽을까 말까 한다. 주말에 서점이나 도서관을 갈 때면, 남편은 나 혼자 갔다 오라고 한다. 타임스퀘어를 갈 때 교보문고에서 짱 박혀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루해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말한다.


"딱 2시까지만 있다가 가자."


이렇게 시간을 정해놓으면 부담이 덜하다. 내가 분주히 보고 싶던 책을 살피는 동안 그는 어슬렁어슬렁 서가를 옮겨 다닌다. 어울리지 않은 공간에 온 듯한  그 생경한 뒤태가 때로는 귀여워 보인다. 책으로 둘러 쌓인 숲에 들어오니 본인도 별 수 없이 책들을 하나 둘 집어 든다. 어떤 책은 자세히 읽지도 않고 책에 대한 비평을 이러쿵저러쿵 늘어놓기도 한다. 또 어떤 책은 갑자기 빠져 들어서 정했던 시간이 지났는데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서 있는.  책을 손에 든 모습을 볼 때면 남편보다는 아이에게 어울리는 단어를 쓰게 된다. 우리 남편 책 읽어서 참 '대견' 하다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가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 지를 알게 된다. 비문학보다는 문학을 좋아하는 것 같고, 특히 기괴한 소설을 좋아한다. 한 번은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책을 들었는데 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양을 읽고 있었다.

 


연남동에 있는 '서점, 리스본'에서 하는 '수수께끼 독서실'이라는 2주짜리 독서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회비 2만원을 내고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독서 인증을 하면 2만원 내의 도서를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책은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었다.


책도 공간을 많이 차지하니 내가 꼭 소장하고 싶은 것들만 갖고 있는 편이라 이번에 책을 고를 때도 고심 끝에 정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남편도 나도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면 다.


허나 남편에게  노잼, 노관심의 영역이었다. 단 한 권을 어떻게 고를까. 서점 어플에서 베스트셀러 순위를 훑어보다가 정유정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 작가는 특이하거나 미스터리 한(?) 소설을 많이 써 온 작가였다. 종의 기원, 28, 완전한 행복... 마침 신간 <완전한 행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두께가 꽤나 두껍다.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두꺼운 책은 잘 못 + 안 읽는다. 금방 싫증을 내기도 하고 무거워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평을 읽어보니 페이지 터너라는 호평이 일색이었다. 속는 셈 치고 <완전한 행복>을 골랐다.


'수수께끼 독서실' 2주간의 독서인증을 완료하고 <완전한 행복>을 받았다. 배 언박싱을 하며 남편에게 다가갔다.


"선물로 받은 새 책! 이거 완전 베스트셀러래!"


물욕이 강한 그를 자극하는 키워드를 넣어 말했다.


#선물 #새책 #베스트셀러


3개의 키워드는 그의 관심을 사는데 충분했다. 결과는 성공적. 9시 반에 <완전한 행복>을 집어 든 남편은 밤 12시가 되어서 까지 책을 놓지 않았고 기어이 새벽 3시까지 토끼눈이 된 채 책을 완독 했다. 너무 놀랐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심지어 그는 도서관에 가서 <종의 기원>을 빌려 오라고 했다. 본인이 직접 도서관에 가서 빌리는 장면을 본다면 더 없는 감동이겠지만 책에 대한 관심에 싹이 텄다는 자체로도 소기의 성과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다. 사람을 변화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그의 성향을 면밀히 파악해서 타이밍에 맞게 단계적으로 작전을 짜니, 남편에게 독서생활을 전도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가 책을 읽는 '대견'한 순간을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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