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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Nov 07. 2021

아버님의 폐암 치료 과정을 지켜보며

한뼘 더 끈끈한 가족이 되었다


시댁에 갈 때어머님과 아버님의 말투를 면밀하게 관찰한다. 아버님은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아버님 특유의 말투가 있다.


"크크 (눈은 반달, 입꼬리는 싱긋 올라간 순한 미소와 함께), 코오맙다~"


시댁에 다녀오면 아버님 성대모사 실력이 늘었고 남편과 둘이 밥을 먹다가도 돌연 성대모사를 하며 깔깔 웃었다.



이번 추석에 저녁먹던 중 아버님은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셨다. 혈압약을 타기 위해 1년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으시는데, 검사 중 폐에 이상 소견이 있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1.2센치 가량의 종양이 있는데 펫시티 검사를 해서 암 인지 진단해야 했다. 어머님은 암 보험이 들어져 있다고 보험 서류를 꺼내 보여주셨는데 나는 속으로 설마 암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중 남편에게 아버님 조직검사 결과 소식을 들었다. 암이라고. 순간 머리가 찌릿해서 벌떡 일어났다. 청천벽력 같은 단어, 폐암 이었다.


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받고 수술 날짜를 잡으러 어머님과 아버님이 우리 집으로 오셨다. 일 때문에 밤 11시가 넘어 귀가한 날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아버님은 괜찮다 건강하다며 순한 미소로 나를 반겨 주셨다. 눈물이 왈칵 차 올라 화장실로 들어가서 세수를 하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진정시다.

 

아버님은 이후로도 몇 차례 서울에 오셨는데 그때마다 자식에게 짐이 될까 하는 마음이셨는지 혼자 병원에 다니셨다. 서울역에서 신촌 세브란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실 때 길이 복잡해서 혼자 가시는 건 무리라고 말렸지만 용산 고등학교로 유학 와서 생활한 시절도 있다며 한사코 혼자 가시겠다고 하셨다. 이후 아버님은 수술을 받고 1주일 동안 입원을 하셨다. 외동아들인 남편은 3박 4일 휴가를 내고 아버님 병간호를 해서 3일 동안 따로 지냈다. 하루는 세탁물을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긴병에 효자 없다.'며 남편이 우스개 소리를 했다. 그제야 나도 긴장이 풀렸고, 잘 지내시는가 보다 싶었다.



퇴원을 하시고 기차를 타러 가시기 전 우리 집에 잠시 들르셨고 나는 아버님을 위한 점심상을 준비했다. 멸치 육수에 양배추와 두부를 넣고 된장국을 끓였다. 다행히 집에 쭈꾸미와 호박잎이 있어서 내었는데, 아버님이 맛있게 드셔서 뿌듯했다.



얼마 후 수술 결과를 확인하고 항암치료 여부를 알기 위해 아버님이 서울에 오셨다. 검사 결과가 날 때쯤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다행히 항암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이도 되지 않아서 추적검사만 받으면 된다는 좋은 결과였다. 종종 며느리가 처음 끓여 준 된장국 맛이 생각난다며 껄껄 웃으시는 목소리에 또 한 번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들한테는 따로 연락 안 하겠다고 잘 전해 달라는 쿨한 말씀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아버님의 검사, 수술, 입원 과정을 지켜보며 한 달 넘게 마음이 널뛰다가 이제 다시 안정적인 생활을 맞이하고 보니 새삼 가족들의 건강이 감사하다. 아버님 성대모사의 달인이 되는 그날까지 오래오래 아버님의 순한 미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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