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복도식 아파트였다. 이름은 태산 아파트. 거기서 갓난아이 시절부터 유년시절을 보냈다. 물론 너무나 어린 시절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우리집은 이사를 자주 했기 때문에 어느 나이 때에 이사를 했는지는 엄마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복도식 아파트 사이로 주고받은 김치 부침개나 짜장 떡볶이 같은 것이다. 현관문 너머로 빼꼼히 접시를 들이미는 옆집 아주머니의 모습이 사진 한 장처럼 뇌리에 박혀 있다.
요즘 우리 세대에서 사람 간의 정을 찾기란 힘들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우리 엄마를 보고 배운 것은 비 오는 날 파전을 부쳐 옆집으로 심부름을 가서 한 접시 내어 드리면, 어느 날엔가 그보다 더 맛있는 (예를 들어 짜장 떡볶이 같은) 것이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바로, 사람 간의 정이었다.
얼마 전, 옆집에서 갓난아이가 태어나 많이 울어대던 시기가 있었다. 아이 울음소리에 내심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쯤, 아이 엄마가 현관문을 두드려 빵 한봉다리를 주었다. 근 30년 만에 느낀 정이었다. 축하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괜히 고마운 마음에 며칠 뒤 두유 한 박스를 선물했다.
그때, 거의 30년 만에 어린 시절 짜장 떡볶이 접시를 받아 들었던 장면이 소환되었다.
"소금 간이 잘 맞는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생각나서 드려요."
우리엄마는 꼭 그렇게 겸손한 말을 덧붙였다. 두 손으로 건네는 접시 아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의 요리실력은 어설펐지만 손으로 빚어낸 정성이 이웃을 감동시킨다는 걸 배웠다. 그 접시에 다시 짜장 떡볶이가 담겨 왔으니 말이다. 그림도 그렇다.
요즘 내가 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사우디, 이탈리아, 네덜란드, 중국인 등 각국의 엔지니어와 어울려 바디 랭귀지를 곁들인 영어를 사용하며 일을 한다. 그중, 가장 최근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 이탈리아인 마우로 씨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Mr. Mauro에게 내가 그린 그림을 Whasapp (카톡 같은 메신저 어플)으로 보냈다. 그는
'This is amazing!'
이라고 답했다.
퇴근 후 보낸 사진이었지만 어쩌면 그에게 이 사진은 짜장 떡볶이 같은 한국인의 정이 되었기를 바라본다.
사우디, 이탈리아, 중국인 그 사이에서 이 프로젝트를 한다면, 어쩌면 월드컵에 나간 국가대표 선수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외국인에게 더욱 한국인의 정을 선물하고 싶다. 그것은 단연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손으로 빚은 정성 담긴 무언가 여야 할 테다.
마우로가 훗날가족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며 한국인 엔지니어가 그려준 그림이라며, 타지인 한국에서 일하면서 추억한 조각을만들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