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이 집에 오더니 평소와 달리 기침을 해댔다. 콜록 콜록 하다 못해 곧 토할 것만 같은 기침 소리였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많이 먹었나 보다 하고 잠들었다. 그게코로나 인 줄은 모르고.
2022.3.4 : 불편한 동거의 서막
남편은 두 줄, 나는 한 줄
새벽 6시, 이상한 낌새에 눈을 떠 보니 반려인이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하고 있었다. 빨간 두 줄 이었다. 일일 확진자 수가 10만을 넘어가는 것이 우스워질 지경이 되었을 무렵, 우리집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생긴 것이다.
재택치료약을 병원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약국에서 한 껏 Flex.
남편이 PCR 검사로 확진을 받으면서, 회사 규정상 동거인인 나도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썼고, 양팔 간격의 거-리-두-기 를 유지했으며 식사는 절대 겸상을 하지 않았다.
2022.3.5 : 이쯤 되면 걸리겠구나
재택근무로 반려인과 집에 갇혀지낸(?) 지 3일째, 억지로 내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잔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이후 몸 상태가 극도로 안 좋아져서 PCR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확진자인 남편보다 더 상태가 안 좋은 건데 내가 음성이라니?
2022.3.6 : 바이러스가 인간을 무너뜨리다
열이 펄펄 났다가 다시 또 오한이 들었다가 잠옷이 땀에 절어서 찝찝해지기 까지 했다. 코로나에 걸린 남편이 나에게 브로콜리와 김가루가 잔뜩 들어간 흰 죽을 만들어 주었다.
'사람이 이렇게 아플 수도 있구나.
갱년기에 접어들면 이런 증세가 난다던데 정말 고생이겠다.
이렇게 아픈데도 코로나가 아니라니.
지금 내 몸에 있는 바이러스는 신종 변이 '감마' 쯤 되는 게 아닐까. '
하는 생각이 들었다.마음의 안정을 위해 자가진단키트를 다시 써 보기로 했다. 두 줄이었다. 잠복기를 거두고 놈이 그제야 본 모습을 드러냈다.
2022.3.8 : 오미크론이란 무엇인가
신속항원검사 결과
PCR에서도 양성 판정을 받고, 유급휴가가 시작되었다.
독감 접종도 맞고, 백신도 3차까지 맞았는데, 왜 코로나에 걸린걸까?그리고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람들이 코로나에 많이 걸리는 걸까?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남편이 내게 코로나가 어떻게 생겼냐고 물었다. 나는 초등학생처럼동그랗고 삐죽삐죽 돌기가 나 있는 병균이라고 했다. 남편은 똑같은 눈높이로 대답했다. 코로나는 구형이라 몸속에 들어가면 데굴데굴 굴러내려가 결국 폐까지 이르게 되는데, 우둘투둘한 브로콜리 모양의 폐는 돌기가 나 있는 코로나가 붙기 좋은 구조라고 했다. 그런데 오미크론 이라는 변이 바이러스는 코로나보다 더 돌기가 많아서 폐까지 가기 전 목에 탁 걸려인후통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려 1차, 2차에 3차 부스터샷까지 맞은 백신이 혈액 감염만을 예방하는 것이니 오미크론에는 소용이 없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오미크론 = 적군
인간의 몸통 = 우리나라
백신 = 덫
강물 = 혈액
라고 생각해 본다. 오미크론은 우리 몸을 점령하려고 남쪽 끝을 향해 내려가려다가 내륙인 천안 쯤에서 멈춘다. 예상치 못한 오미크론족들이 천안에 오자 무기가 없는 아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서해로 향하는 강가(혈액)에 풀어놓은 덫, 즉 백신이라는 무기는 소용이 없어진 것이다.
2022.3.9: 확진자만 투표할 수 있는 시간
오후 6시, 레드카펫 깔아진 런웨이를 홀로 걷듯이 파워 당당하게 선거투표소로 입장했다. 투표소로 가는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얼마 전만해도 뉴스에서 난리가 났는데 이렇게 사람도 없고 조용하단 말이야? 마치 1인 미용실에 온 듯한 안내를 홀로 만끽(?)했다. 도장으로 빨간 한 표를 투표지에 꾸욱 눌러 찍고 파워 퇴장을 했다.
2022.3.12: 진정한 2022 새해의 시작
새 학기를 축하하는 입학식 행사가 있는 3월이야말로 신정이 있는 1월, 구정이 있는 2월 만큼이나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다. 그런 3월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이 작은 크기의 바이러스가 집어 삼켰다는 점이 아쉽지만 이 또한 지나갔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코로나에 한번 걸리고 나니 이제, 진짜 새해가 시작한 기분이다. 세계 어디든 가리라는 희망이 솟아나고, 모두 이겨내리라 믿기에 솟구치는 확진자 수가 이제는 두렵지 않다.
코로나에 걸렸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행사했고, 배달의 민족인 우리는 야무지게 먹었으며, 병원에서는 약을 무료로 받았고, 유급휴가 기간 동안 충분히 휴식을 갖고 병마와 싸워 이겼다.
지나고보니 별게 아니라는 걸 느꼈고, 인간은 그 작고 고약한 바이러스를 어떻게든 이겨내고야 마는 훨씬 큰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코로나도 없어지고, 정권도 바뀌면서 우리가 소망하는 많은 것들이 새롭게 시작 되고, 이전에는 없었던 더 놀라운 역사들이 우리나라에 가득 하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