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8'라는 카카오톡 단체카톡방에는 나를 포함 친구 G와 친구 Y까지 총 3명이 들어와 있다. 우리 셋 중한명은 빠른 년생이라 '89년생모임'이라 할 수는 없었고, 마침 94년도와97년도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응사' 나 '응칠'에서 힌트를 얻어 이름 짓게 되었다. 우리셋은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잊을만하면 안부를 묻고 또 서로의 인생 행사를 챙기는 내게 남은 둘도 없는 중학교 때 친구들이다.
생일로 치면 우리 셋중 가장 어린 친구 G가 최근에 결혼을 했다. G는 5년 전 내 결혼식 때 부케를 받았는데, 나는 G가 비혼을 선언했기에 오히려 부담 없이(?) 부케를 던질 수 있었다. G의 자취방에서 삶의 넋두리를 하던 20대 날들이 선명히 기억난다. 그중에서도 좌식 테이블에 체리콕 음료와 배달시켜 온 피자를 올려놓고 찍은 사진을 G의 어머님께 보내 드린 날이 있었다. 그때 어머님의 답변은 간결했다.
'노처녀 될 사람들'
아무래도 늦은 밤에 여자 둘이 앉아 피자를 와구와구 먹을 그 모습이 어머님 보시기에 딱 그러했던 모양이다. 20대를 통과하며 우리는 시시껄렁하면서도 우리 시절에 겪을 나름 진지하고 중요한 대화 (예를 들어 연애이야기나 연애 이야기 그리고 연애 이야기 등...)를 나누며 늦은 밤까지 토크를 이어나가곤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가끔 G가 결혼을 하는 꿈을 꿨다. 그랬던 친구가 10년 만난 남자친구와의 결혼소식을 전해왔다. 두둑한 축의금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만은, 그보다는 기억에 남을 큰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축사'였다. 신촌 소재 여자대학교 국문과 출신인 G는 우리 중에 언어영역 점수가 가장 높았으므로 G 앞에서 우리가 직접 쓴 글을 읽어 줄 생각을 하니 약간 부담이 되긴 했다. 왜냐면 대학교 친구들이 죄다 국문과 친구들 일 테니 말이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초고를 빨리 써야 하는데...
글을 선물한다는 건 생각보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었다. 도입부부터 뭐라 풀어나가야 할지 깜빡거리는 커서에 박자를 맞춰 눈을 깜빡였다. 차라리 그림을 선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G의 모바일 청첩장에 있는 사진 중 하나를 골라 A5 사이즈 캔버스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사진을 확대해 보며 펜으로 선을 따고 마카로 색을 칠하면서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사진 속에 밝게 웃는 신랑 신부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고 친구의 결혼이 더 이상 꿈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결혼 D-30일. 우리는 G의 브라이덜 샤워를 해주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4시에 스튜디오에서 보기로 했는데 G는 그때까지 단톡방에서 묵묵부답이었다. G의 성정을 잘 알기에 살짝 염려스럽긴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4시 2분 전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해!!!! 나 지금 일어났어!! 어떻게~~~~ ㅠㅠㅠㅠ"
그래그래. 그나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기에 우리는 스튜디오 1시간을 연장하기로 결정하고 오늘의 주인공인 예비 신부의 마음을 달래었다. 나는 준비해 온 그림선물을 친구 Y에게 보여주었다. Y도 서프라이즈 선물에 감탄했고, 우리끼리 사진을 찍다가 타이밍 봐서 건네기로 했다. G가 가뿐 숨을 내쉬며 스튜디오에 도착했고 우리는 완전체가 되었다. 아이섀도와 립틴트로 서로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며 꽃단장을 하고 하얀색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사진을 몇 장 찍다가 한쪽 귀퉁이 벽에 숨겨둔 캔버스를 G에게 건넸다. G는 울었고 나도 울었고 그 사이 Y는 울보가 된 우리를 촬영했다. 눈물로 번진 화장과 울컥한 마음을 정리하고 그림의 감동을 나누었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신랑 신부 그림은 결혼식 때만 선물할 수 있는 그림이지 않던가. 나 또한 일생에 한번 나오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적시에 줄 수 있어 뿌듯했고, 생각보다 친구들이 격한 반응을 보내주어 고마웠다.
서로에게 '인생샷'을 선물하고 브라이덜 샤워를 끝내고 곧장 택시를 타고 스튜디오와 가까운 우리 집 주변으로 이동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G는 우리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고 우리는 저녁 9시가 되어 만찬을 갖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