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코더 Aug 07. 2023

결혼을 앞둔 20년 친구에게 준 선물 (2)

그대를 처음 본 그 순간 난 움직일 수가 없었지


브라이덜 샤워를 마치고 우리집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회포를 풀었다. 대화의 주된 내용은 '결혼생활'이었는데, 특히 친구 Y는 출산과 육아를 먼저 겪은 인생 선배로써 육아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했다. 가끔 딸과 함께 집에서 뉴진스의 하입보이와 슈퍼샤이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면서. 자정이 넘어서까지 우리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친구 Y가 축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내심 움찔했다. '축사'말고 '축무'로 바꾸는 게 어떻겠냐는 Y의 말에 G의 눈빛은 반짝였다. 결국 박진영의 '허니'에 맞춰 축무를 하기로 했고, G의 결혼식을 축제분위기로 만들어주자면서 결의에 찼다. 텐션이 한참 오른 우리는 기어코 새벽 첫차 시간까지 우리집에서 수다를 떨었다.


얼마 후, '축무'란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 앞에서만 추는 춤이 아니라 하객도 보는 무대라는 사실도 잊은 채, 마치 '우리 셋만 간직할 댄스영상 만들기' 수준이라 생각하며, 아주 호탕한 사람처럼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지난밤을 떠올렸다. 축무를 하자는 우리의 결의는 우정의 힘에서 비롯한 것일까, 늦은 밤 분위기에 취해 벌어진 것일까. 우리 셋은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말았다.

'Impossible is nothing!'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나는 몹시 초조해졌다. 차라리 축사를 빨리 써서 G에게 보여줄걸 그랬나 싶은 생각에 심드렁했다. 그 마음을 뒤로 하고 '허니 축무'라고 검색해 찾은 유튜브 영상을 보며 춤을 춰봤는데 비루한 내 몸뚱이는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영상 속 안무가의 춤선을 애써 따라 해 보았지만 거울에 친 내 율동선은 안무가의 그것과 하늘과 땅 차이였다.


결혼식 7일 전. 신도림에 있는 연습실에 모여 2시간 동안 춤 연습을 하기로 했다. 전면 거울인 연습실에서 '허니' 노래에 맞춰 각자 연습한 대로 춤을 췄다. 마음만은 아이돌이었으나 내 몸은 좀처럼 따라 주지 않았다. 주인공인 신부야 생글생글 웃으며 손동작만 귀엽게 해 주면 되었고, 친구 Y와 나는 양옆에서 백댄서 역할을 해야 했다. Y는 이미 안무를 완벽 마스터 했고 G도 나름 신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동작을 숙지한 상태였으며 나는 그 옆에서 무대의 빌런을 맡은 모양새였다. 그리하여 Y를 스우파(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의 모니카처럼 축무팀의 리더이자 댄스선생님으로 모셨고, '유니카'라는 닉네임을 선사했다.

춤 동작 하나하나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을 구체적으로 알려준 '유니카' 덕분에 2시간 만에 춤 동작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내 평생 2시간 동안 거울 앞에서 춤춰 본 적 있던가. 에어컨을 최대로 틀었음에도 땀이 어찌나 나던지, 평소 운동량이 거의 없는 저질체력인 나는 완전히 넉다운 되었다. 빵과 음료를 먹으며 연습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남은 일주일간 나날이 좋아지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공유하겠노라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옛날(?) 예능프로그램인 '특명, 아빠의 도전'처럼 나는 결혼식 전날까지 매일 1시간씩 벼락치기로 영상을 찍으며 춤 연습을 했는데 그 중 제일 잘 춘 영상을 '응답하라 2008' 단톡방에 올렸다. 결혼식 전까지 한번 더 모여 연습해 봐야 했는데 여건이 되지 않아 카카오톡 단체 영상통화로 만났다. 이런 기능이 있다는 게 신기하재밌다면서 결혼식 후에 이렇게도 만나자고 깔깔거렸. 




결혼식 당일. 보증인원을 250명에서 400명으로 늘렸다는 G의 말이 불현듯 떠오르며 무대공포증이 점점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혼주 대기실에서 연습을 하고 파이널 무대인 축무 자리에 섰다. 버진로드에서 신랑 신부를 바라보며 짧은 축사를 하고 축무를 시작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G의 중학교 친구 K와 Y입니다. Y대 존박인 신랑과 E대 아이유인 신부....'


그 순간 메모지를 보던 고개를 들고 신랑 신부를 바라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 결혼식 때 눈물 나는 그 이름 모를 감정'은 서른 전에 뗀 줄 알았는데, 신랑 신부 앞에 니 기어이 터져 나온 것이다. 당황한 기색 없이 오히려 밝은 신부를 보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축사를 이어갔고 우리의 무대는 시작되었다.


'나는 춤추는 로봇이다'라고 되뇌며 외운 대로 추려고 노력했다. 팔동작은 오른쪽부터, 발동작은 팔동작과 같은 방향으로, 어느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지 등등을 기억하며...


우리가 그토록 땀 흘리며 준비한 축무는 하객들이 찍은 2분짜리 영상에 담겼고 예식이 끝난 후 신부인 G가 여러 각도로 찍은 축무 영상들을 보내주었다. 유니카의 코칭으로  연습 때와는 다르게 큰 실수 없이 축무가 완성된 것을 영상으로 확인하며 안도했다. Y와 맞춰 입고 간 검정 원피스를 벗고 잠옷으로 갈아입으며 일찍 잠들었다.


내 친한 친구들 중 마지막차를 탄 G의 결혼식을 마치니 막내딸 시집보내는 건 이런 기분일까, 하고.



한 회로 마무리 하려니 줄여도 줄여도 긴 분량이 나오네요. 글을 마치며 결혼한 친구 G와, 함께 축무라는 추억을 만든 유니카 Y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G야, 다시 한번 결혼 축하해! ♥︎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을 앞둔 20년 친구에게 준 선물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